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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㉞ ‘오향장육’과 ‘동파육’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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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㉞ ‘오향장육’과 ‘동파육’ 이야기
  • 손영한
  • 승인 2023.03.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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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향장육
오향장육

 

오향장육과 동파육은 재료의 공통점과 맛의 다른 점이 흥미롭다. 모두 돼지고기를 재료로 하고 여러 향신료를 첨가하여 특별한 향과 맛이 있으며 간장으로 조리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중국요리이다. 오향장육은 차갑게 먹는 음식으로 쫄깃한 식감을, 동파육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맛을 가지고 있어 서로 다르다.

모든 음식은 첫 만남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계속 그 음식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이번이 끝인가! 하는 운명적 순간인 것이다. 이때의 자세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다. 눈으로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입에 넣을 때도 천천히 혀끝으로 맛을 보는 것이 일반적으로 첫 음식을 대하는 자세이다. 무엇을 발견하려는 탐색의 눈빛을 굴리며...

오향장육은 기름기가 적은 돼지고기의 안심 부위나 쇠고기의 사태, 우둔살을 사용하며 향신료와 간장으로 조려낸 음식으로 5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엄선된 팔각, 회향 등 다섯 가지(오향) 향신료를 사용하여 독특한 향을 내는 고급 요리이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들어 차갑게 먹는 음식으로, 사태 등 고기의 근막은 식었을 때 쫄깃한 식감이 제일 좋고 맛있으며 소스(짠슬)와 함께 먹으면 맛을 더한다.

내가 오향장육을 처음 맛본 것은 80년대 초, 첫 직장(여의도)에서 회사 동료들과 함께 영등포에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였다. 얇게 썰어낸 돼지고기에 검은색 묵같이 생긴 소스와 파채가 놓여있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하얀 접시 위에 향신료를 배합하여 간장과 함께 잘 쪄낸 고기 편육에 네모 모양으로 썰어놓은 소스를 같이 올려 먹으니 파채의 절묘한 맛과 함께 처음 맛보는 별 천지 같은 식감과 향에 취해 버렸다. 특히 오향장육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묵처럼 생긴 ‘짠슬’은 처음 맛보는 환상의 소스였다. 첫 맛의 경험이 중요하듯 지금도 나는 중국요리 먹을 때 전채요리로 오향장육을 시키곤 하는 데 짠슬의 맛이 그 집의 오향장육 맛을 좌우하는 것으로 나는 생각된다.

 

‘대문점’
‘대문점’

 

이 식당이 50년째 아직도 그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대문점’이다. 그 당시 직장 동료인 송범님의 소개로 같이 자주 다녔던 오향장육 전문점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노포 식당이다. 모양 없이 썰어놓은 듯한 차가운 냉채 장육의 찰기가, 탱탱한 식감과 고소함이 좋으며 특히 짠슬의 맛과 향이 매우 독특하여 고급스러운 맛을 만들어 주어 지금도 그때의 향을 잊지 못한다. 또 다른 대표 메뉴는 촉촉한 육수에 알도 좀 크면서 만두피가 엄청 부드러운 쫄깃한 식감의 물만두이다. 최고의 맛이다. 차가운 오향장육과 따뜻한 물만두의 조합이 환상적이며, 메뉴도 장육과 만두뿐이며 나의 첫 오향장육 맛을 보게 해준 고마운 식당이다. 아직도 손님이 줄을 이어 성업 중이다.

 

‘산동교자관’
‘산동교자관’

 

압구정역 근처에 ‘산동교자관’이 있다. 화상이 운영하는 탁자 몇 개 없는 소규모 중식 전문점으로 오향장육이 특별하다. 접시 위에 양배추를 깔고 그 위에 오향장육, 대파채, 마늘소스를 얹은 모습의 비주얼이 좋다. 옆에 놓여있는 깍두기 같은 모양의 짠슬은 젓가락을 대면 부서지듯 아주 부드러우며 별도의 오향 껍데기도 있어서 특별하다. 숟가락 위에 장육과 파, 짠슬을 올려놓고 먹으니 담백하니 좋다. 역시 수준급이다. 이곳도 만두가 특화된 식당으로 주인장이 직접 만두를 빚는 공간이 있을 정도로 여러 만두 중 한 가지는 꼭 먹어야 될 것 같은 식당이다.

‘동파육’은 오향장육과 달리 뜨겁게 먹는 요리로 상하이 대표 음식이다. 향, 식감, 색깔이 모두 뛰어나서 일반 중국집에서는 취급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요리로 유명하다. 비곗살과 살코기가 섞여있는 부위를 정육면체 덩어리째 사용하며 갖가지 향신료를 넣어 향기가 깊고 진하며, 진간장을 넣어 졸여서 부드러운 식감과 색감이 좋아 먹음직스럽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인 ‘소동파’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소동파가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네모 정사각형 모양의 돼지고기를 요리하여 나누어 주었다고 하여 ‘동파육’으로 이름을 붙여 불리었다고 한다. 특별한 사연이 있고 사람 이름을 붙인 스토리텔링이 있는 음식이다.

동파육은 아들(준오)과 특별한 추억이 있는 음식이다. 나이 어린 준오와 함께 기분 좋은 날, 애틋한 날에는 의미를 갖고 먹은 음식이 동파육이었다. 우리가 만난 동파육은 제법 큰 정육각형 모양의 찰랑거리는 푸딩 형태로 색깔과 형태가 매우 품위 있어 보였으며, 행복한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다. 광풍이 불어도 흔들거리기만 할 뿐 넘어지지 않는 탄력이 눈에 들어온다. 두툼한 껍질의 매끄러움과 겹겹이 쌓아 올린 시루떡처럼 살코기가 층층이 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경이롭다. 준오와 나는 이 모습 그대로 흐트러지지 않도록 수직 방향으로 세 토막을 내어 청경채와 함께 한 조각 입에 넣으면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솜사탕처럼 눈이 감긴다. 청경채의 아삭함과 깔끔한 맛이 돼지고기와 너무 잘 어울려서 입속을 즐겁게 해준다. 내가 자를 때는 자꾸 흐트러져서 모양대로 자르는 것은 아들 몫이 되어버렸다. 청경채도 한 접시 더 시켜서... 어떤 음식점은 두툼한 삼겹살처럼 썰어서 조리하는 식당도 있으나 볼품이 없다.

 

‘팔선생’
‘팔선생’

 

이렇게 아들과 함께 즐겨 먹던 곳이 이수역 근처 ‘팔선생’이었다. 이 집의 동파육은 가위로 모양을 유지하며 자를 수 있을 정도로 탄력이 놀랍고 입에서 사라지는 부드러움과 식욕을 돋우는 향, 보는 색감마저도 어찌나 우아한지 소동파가 울고 갈 정도의 동파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을 닫아 평촌역 부근의 팔선생을 찾곤 한다. 이 식당의 찹쌀 탕수육과 새우볶음밥도 유명하다.

추억과 이야기가 있는 두 음식은 첫 만남에 누구와 함께 어떤 인연으로 먹었는지의 경험과 기억이 맛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동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옛 추억을 찾아 송범님과 함께 영등포로, 이야기를 따라 준오와 함께 동파육을 만나고 싶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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