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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㉜ '전 (煎)'-한국인의 사계절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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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㉜ '전 (煎)'-한국인의 사계절 음식
  • 손영한
  • 승인 2023.01.30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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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만 되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이 전이다. 차례나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으로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라 하겠다. 사전적 의미는 ‘생선이나 고기, 채소 따위를 얇게 썰거나 다져 양념을 한 뒤,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지진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잔칫날이나 평소에도 즐겨먹는 전은 집집마다 가풍에 따라 개성 있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며, 차림상에 올리는 종류도 다양하다. 지금도 명절이 되면 전 부치는 냄새가 진동하여 며느리의 고단함을 떠올리곤 한다

사용되는 재료에 따라 생선전(동태전, 대구전, 민어전, 굴전, 홍어전...)과 고기전(육전, 동그랑땡, 쇠간전, 허파전...), 채소전(녹두전, 빈대떡, 호박전, 김치전, 파전, 부추전, 고추전, 메밀전...)이 있으며 내용물이 비슷하여도 가정마다 부르는 이름(장떡, 행적, 부침개, 지짐이 등)을 달리하는 것도 있다.

 

 

우리 집 명절 때는 녹두빈대떡, 민어전, 쇠간전과 부수적으로 동그랑땡전, 호박전을 마련한다. 육·해·공(?)의 재료가 다 사용된다. ‘녹두빈대떡’은 하루 전부터 녹두를 불려 맷돌에 갈아서 김치와 숙주나물, 고사리, 돼지고기 등을 넣어 손바닥만 하게 만들었다. 녹두의 구수한 맛과 함께 돼지비계 기름에 부쳐서 고소하고 멋진 빈대떡이 만들어진다. 비계 기름은 빈대떡을 코팅하는 듯하여 부드러우며 며칠 후에 먹어도 그 식감이 그대로 유지되어 그 맛이 도망가지 않는다. 차례에 쓸 것은 따로 부쳐 놓듯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며,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고 맷돌을 돌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또한 생간을 결 따라 포 뜨듯하여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를 입혀서 조각조각 부쳐내는 ‘간전’은 우리 집 전 중에서 왕으로 생각된다. 잡내가 없는 그윽한 향, 폭신한 식감 그리고 고소한 맛을 음미하려고 여러 번에 나누어 아껴먹었던 음식으로 영양도 풍부하여 명절 때 오시는 손님마다 제일 인기가 좋았던 것 같다. 아쉬운 것은 빈대떡처럼 많은 양이 아니라 눈치 보며 먹은 기억이 난다. 포 뜨기 전 몇 점의 생간을 참기름 소금에 찍어 먹는 호사스러운 기회가 나에게는 꼭 주어졌다. 어머니의 손으로부터...

간전은 재료 자체가 물컹거려서 손질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며 집에서 쓰는 식칼로는 모양이 잘 떠지지 않아 손이 많이 가는 정성스러운 음식이다. 지금도 간전을 하는 식당은 꼭 찾아서 맛을 보곤 하지만 그때 어머니 손맛은 잊을 수가 없다. 가끔 해주는 집사람이 고맙다.

차림상에 올리는 생선전은 민어를 사용하였다. 그 당시 민어는 호남 일부 지역과 서울에서 소비되었으며 귀한 생선은 아니었다. 여름에는 큰 민어가 잡히지만 계절에 관계없이 어획되는 어종이었다. ‘민어전’은 비린내가 없고 부드럽고 깔끔함이 좋으며 다른 생선에 비해 육즙이 풍부하여 식감이 뛰어나다. 조금 두껍게 손질된 민어를 밀가루와 계란 흰자를 입혀 부치면 그 영롱한 흰색의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비교가 안 되는 생선전 중에 으뜸이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었다.

김장김치가 시어질 무렵 어머니는 ‘장떡’을 만드셨다. 장떡은 김치전과 흡사하나 신 김치에 약간의 고추장을 풀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늦은 봄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마루에 앉아서 장떡을 먹고 있노라면 새콤 매콤한 맛과 불그스레한 모양이 집 나간 입맛을 불러오는 데 충분하다. 한여름 비 오는 날에는 애호박을 채 썰어서 밀가루와 물을 풀어 만드는 ‘호박 부침개’는 반바지에 러닝셔츠만 입고 양파 섞인 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 별미 아니던가! 노릇노릇하며 바삭하게 부쳐진 부침개는 표면에 일부 튀어나온 호박 채가 은연중에 친근하고 달콤하다. 또한 애호박을 같은 굵기로 썰어, 풀어놓은 계란에 옷을 입혀 부치면 아삭하고 달콤하며 호박즙과 함께 상큼한 ‘호박전’이 된다. 애호박으로 만드는 호박 부침개와 호박전은 한여름에 먹어야 제맛이다.

결혼 후 처갓집에서 통김치로 만드는 ‘행적’을 만났다. 겨울 김장 김치와 대파, 양념된 쇠고기 등을 꼬치로 연결하여 밀가루와 계란을 입혀 부치는 것으로 네모반듯한 모양이 두툼하며 제법 크다. 행적은 양념이 적은 배추 줄기 부분만 사용하여 김치의 아삭함과 시원한 맛, 대파의 향긋하고 달큼한 맛이 고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풍미가 뛰어나며 황해도 지방에서는 정월 차례상에 올린다. 행적을 만들고 남은 것은 왕만두의 속 재료가 되어 또 다른 겨울 별미 음식이 된다.

우리나라 대표 전은 녹두전이라 부르기도 하는 녹두빈대떡 일 것이다. 서울 시내에도 ‘종로 빈대떡’이라는 상호로 많은 식당이 성업 중이다. 원조 종로빈대떡은 아마도 종로의 피맛골에서 시작된 것으로 짐작되며 빈대떡의 대명사가 되었고 식당마다 고기나 김치 등을 넣어 제공되고 있다. 이제는 ‘전’ 전문점이 많이 생겨서 여러 가지 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모둠전’이 입을 즐겁게 한다.

포이동의 ‘소호정’은 허파전을 하는 국시 집이다. 생선전에 허파전을 함께 내는 데, 고소한 허파의 맛과 식감이 간결하고 깔끔함이 입에 와닿는다. 조금 얇아 씹는 맛이 섭섭하나 모양이 예쁘고 정성이 있다. 생선전도 촉촉하고 계란이 예쁘게 입혀있어 양념깻잎에 싸서 먹으니 향이 입안에서 맴돈다. 허파전이 별미이다.

압구정동 ‘한일관’의 사이드 메뉴인 녹두빈대떡과 해물파전도 정성이 가득하다. 밑간도 적당하고 구워진 정도도 알맞으나 분위기 탓인지 가격대가 높다. 빈대떡은 씹히는 녹두의 향이 느껴지고 슴슴하여 옛날 어머니의 녹두빈대떡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손바닥만 하게 부쳐 나오는 해물파전은 바삭하게 구워져 식감이 좋으며 내용물도 알차고 좋아 훌륭하지만 양이 좀 적은 듯 아쉽다. 종로 시절 한일관의 두툼하고 큰 해물파전 맛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봉화전2’
‘봉화전2’
'열차집'
'열차집'

 

육전을 잘하는 ‘봉화전2’가 삼성동에 있다. 평양음식 전문점으로 소고기 육전, 대구살전이 곁들이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입에 짝 붙는 식감의 쇠고기 육전과 처음 대하는 돼지고기 육전이 도시 사람들의 입맛을 이끌고 있으며, 대구전도 두툼하고 부드러운 살에 잘 입혀진 계란 막과 함께 입에서 살살 녹는다.

이외에도 봉은사역 삼성칼국수의 모둠전, 봉산옥의 쇠고기전·빈대떡, 혜화칼국수의 생선튀김, 종각 열차 집의 녹두빈대떡, 샘밭 막국수의 감자전, 육개옥의 수제 동그랑땡·모둠전이 맛이 있어서 친구와 함께 자주 가는 식당들이다. 서울에서 드물게 간전을 하는 노포인 혜화동의 손칼국수 집이 있으나 식단이 단출하다.

마음속 음식으로 어머님의 ‘간전’과 장모님의 ‘행적’은 나의 소울푸드처럼 간직하고 있는 전(煎)으로, 누룩향이 짙은 막걸리와 함께 그 맛을 머릿속으로 느껴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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