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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㉗ 한국인의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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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㉗ 한국인의 ‘육개장’
  • 손영한
  • 승인 2022.11.2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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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가정식 보양음식 중 하나이다. 쇠고기 부위 중 양지머리를 삶아서 가늘게 뜯어 넣고, 각종 나물과 고춧가루를 넣어서 얼큰하게 끓여 낸 국이다. 소고기의 풍부한 맛과 고추의 향이 배어든 국물은 술과 밥을 저절로 부르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는 음식이다. 일반적인 육개장은 소고기, 고사리, 토란대, 숙주, 대파 등 여러 종류의 채소를 넣어 건더기가 제법 많아 잘 차려진 음식처럼 느껴지는 든든한 국이다. 이에 비해 서울ㆍ경기지역 육개장은 간단하고 내용물이 단조롭다. 사골을 우려낸 육수에 소고기, 대파, 고춧가루가 전부이고 나물보다는 파 위주의 육개장으로 경우에 따라 고사리나 숙주를 첨가하는 정도이다. 이것이 한국전통 기반의 육개장이고 위로와 전환이 필요할 때 특유의 얼큰한 국물은 그걸 받아들인다.

고사리는 명절 등 관혼상제에 많이 쓰이는 나물이며 육개장이나 비빔밥 등에 들어가는 필수 재료이다. 섬유질이 많고 비타민, 칼슘이 풍부하여 성장기 어린아이와 어르신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어린아이들의 작고 부드러우며 앙증스러운 손을 말할 때 ‘고사리손’이라 표현하듯이 우리에게 친숙하며, 소고기 양지머리와 비슷한 맛과 식감이 나는 나물로서 창선, 제주도 고사리가 유명하다. 토란대는 채소 중에서도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식감이 좋으며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비슷한 크기로 손질된 모양이 고사리, 소고기와 잘 어울리고 색깔도 비슷하며 먹는 맛 또한 깔끔하고 고소하여 육개장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식당마다 재료의 선택이 다 다르다.

육개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식재료들이 한결같이 모양, 결, 색이 비슷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가늘게 찢어진 양지머리 고기, 고사리, 손질된 토란대, 대파 등의 길쭉한 모양이 비슷하며, 모든 재료가 긴 방향으로 찢어지는 결이 있어 씹는 식감이 같아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며, 끓여놓은 색감이 모두 갈색으로 ‘깔맞춤’이 된 듯한 느낌이 있어 참 재미있다. 이렇듯 우리 음식은 미적 감각과 동질성, 형태까지도 생각하는 음식 철학(?)이 스며있다는 것이 놀랍다.

육개장에 대한 나의 기억은 계절에 관계없이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어머니는 가늘고 길게 뜯어 놓은 소고기와 고사리, 대파를 넣어 만드셨으며 특히 대파와 고춧가루의 풍미가 이 음식의 중심에 있으며 나는 대파의 맛에 빠져 연탄불에 구워 먹기도 한 기억이 있다. 벌써 생각만 해도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어머니의 육개장 특징은 소고기와 고사리의 긴 모양과 색깔이 비슷하여 잘 구별이 되지 않을뿐더러 같이 엉켜 있어, 먹을 때 소고기의 맛과 고사리의 구수한 향이 같이 혼재되어 입에서의 식감이 쫄깃, 담백함의 조화가 무척 좋은 느낌이었다. 정말 어느 것이 고기인지 고사리인지 잘 구별이 어려웠다.

여기에 대파의 달짝지근한 맛은 육수의 시원한 맛을 더해 주어 찰떡 맛궁합이며 고춧가루를 넣었지만 맵지 않고 슴슴하여 그냥 먹어도 좋은 국이다. 한 솥을 끓여 두고두고 먹어도 변하지 않는 맛의 비결을 어머니는 알고 있는 듯하다. 가끔 숙주나물이나 당면 몇 가닥을 넣어 특별한 별미를 만드셨으며 토란대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된다. 이렇듯 고사리의 구수한 맛과 향, 소고기의 풍미, 대파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녹아있는 국물의, 시원하고 매콤한 맛은 아직도 나의 맛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양지살, 고사리, 대파를 ‘육개장 3인방’이라 부른다. 여기에 숙주나 토란대를 넣어 식감을 좋게 하고 건더기가 있는 풍성한 육개장을 만들기도 하며 이때 고사리ㆍ토란대ㆍ숙주를 ‘야채 3인방’이라고 나는 부르고 싶다. 계란을 풀어 넣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논쟁거리이기는 하나 계란을 넣으면 국물 맛이 텁텁해져 나는 싫어한다. 어느 집은 계란 지단을 만들어 고명으로 쓰는 곳도 있으며 하얗고 노란색의 고명은 보는 색감이 좋고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으로 느껴져 대접받는 듯하여 기분이 좋다. 또한 지역(대구ㆍ경북)에 따라 육개장에 밥 대신 칼국수 사리를 사용하는 집이 있으며 일명 ‘육칼’이라는 이름으로 은근히 유명세를 타고 있다.

 

‘동경 전통 육개장’
‘동경 전통 육개장’

 

역삼동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동경 전통 육개장’ 집이 있다. 여러 메뉴가 있으나 전통적으로 어머니 손맛인 육개장을 대표 메뉴로 하고 있으며 고사리 없는 육개장이다. 사골육수를 사용하는 진한 맛의 육개장으로 소고기와 대파로 구성되어 있으며 칼칼하고 얼큰한 맛이 일품이다. 고사리나 토란대, 숙주 같은 것이 없고 오직 파밖에 없는데도 땀을 쏙 빼게 만든다. 달걀의 노란 지단이 고명으로 올려져 있어 보기도 좋고 맛의 느낌을 더하는 것 같다. 건더기가 없어 처음에는 불만이 있을 수 있으나 국물 맛이 좋아 입꼬리가 올라간다. 서울식 육개장 느낌이 든다.

토란대를 넣은 육개장으로 ‘육개옥’이 논현동 언주역 부근에 있다. 이 집은 시골 잔칫날 기분 그대로 양지살, 고사리, 토란대, 대파를 넣은 육개장이다. 보들보들 연한 고사리와 약간 쫄깃한 식감의 토란대, 잘 뜯어진 양지머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쟁터 같은 묵직한 육수와 함께 잘 어울리는 육개장이다. 주인장의 공덕이 보이는 육개장은 내용물도 충실하여 건더기파들에게도 만족감을 주며 특히 토란대를 넣은 몇 안 되는 식당으로 인기가 높다.

곁들이는 음식인 수육도 육질이 살아있고 질 좋은 소고기임에 틀림없다는 신뢰가 든다. 이런 고기로 육수를 만드니 당연히 육개장 맛이 좋을 수밖에...

 

‘문배동 육칼’
‘문배동 육칼’

 

용산 삼각지역 근처에 있는 ‘문배동 육칼’은 육개장만 하는 전문식당이다. 얼큰한 국물 맛과 푸짐한 양으로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투박하게 썰린 대파가 듬뿍 들어간 매콤한 국물의 육개장은 칼국수면도 같이 곁들릴 수 있어 ‘육칼’로도 유명한 집이다.

사골을 기본으로 하는 진한 국물과 양지살, 고사리, 대파 등이 잘 어우러져 맛이 훌륭하다. 내가 좋아하는 ‘육개장 3인방’만 딱 들어있어 추억의 육개장으로 여겨도 좋을 듯하다. 국물은 대파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그대로 느껴져 인위적이지 않으며, 공기밥과 칼국수를 같이 주는데 잘 삶아진 칼국수 면을 담가 먹으니 기름기 없는 순수한 맛이 느껴져 그냥 호로록 입으로 넘어간다. 짜지도 맵지도 않은 슴슴한 육칼이 되어 버린다. 밑반찬으로 김치, 깍두기 그리고 한 그릇에 3가지 채소가 담아 나오는데 늘 변함이 없다. 우리 집 육개장과 거의 비슷하여 느낌이 좋고 혼자 먹어도 눈치가 안 보인다.

고사리 육개장으로 빼놓을 수가 없는 곳이 제주도의 ‘우진 해장국’이다. 오래전 제주도 가족여행 때 딸 주연이가 소개해 처음 간 곳으로 정말 놀랄만한 맛을 보고 경이로움에 정신이 없었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보기에는 정말 볼품없고 꼭 죽처럼 생긴 육개장을 우습게 봤다가는 큰코다치는 제주도 향토음식 맛집이다. 뜨거운 뚝배기에 나오는 육개장은 가늘게 찢어진 돼지고기와 제주도 특유의 부드러운 고사리, 사골 육수가 어우러진 육개장으로 고사리가 잘게 잘려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첫 숟가락을 무심코 먹다가는 입이 다 데인다. 색깔도 짙은 갈색이고 꾸덕꾸덕한 국 같은 느낌인데, 흐물흐물한 고사리와 고기가 밥알과 함께 넘어가는 식감이 너무 좋아 제주도에서 불편(?)한 것들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그때는 주연이 덕분에 편하게 먹었는데 이제는 웨이팅이 너무 길어 맛볼 수 없을 것 같다.

요즘도 한 솥 끓여내어 언제 어디서 먹어도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육개장. 맛있는 제주도 고사리를 잘 말려 두었다가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한 솥 끓여내어 식구들과 오붓하게 먹으면 좋을 듯하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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