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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㉕ 국민 국밥 - ‘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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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㉕ 국민 국밥 - ‘순대국’
  • 손영한
  • 승인 2022.10.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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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왠지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내게 다가오는 음식이 순대국이다. 순대국은 육수에 순대, 머리고기, 내장을 넣어 바글바글 끓여 만든 음식으로 따뜻하고 구수한 맛을 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음식이다.

순대와 순대국은 한국 사람이면 한 번 이상 먹었음직한 음식으로 과거 어려운 시절 허기를 채워주던 시장국밥부터 지금의 별미국밥까지 한국 정서가 스며들어 있는 흔한 음식이다. 전국시장 어디에 가든 순대국 집은 꼭 있으며 혼자 가서 식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혼자라서 더욱 순대국인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이 꿀꿀하거나 딱히 먹을 만한 것이 없을 때 혼잣말로 ‘에이, 순대국이나 먹으러 갈까’ 하면서 식당으로 향하게 하는 국민국밥이다.

순대국에는 정성이 들어있다. 돼지 부속물들을 깨끗이 손질하고, 삶고, 순대 속 만들고, 육수 우려내고, 양념을 만드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으로 한 그릇 만들어 내는 정성이 대단하다. 또한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만 있으면 최고의 밥상이 되어 격식이 필요하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광장시장 중앙부 모퉁이에 있는 노점상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 순대를 즉석에서 쓱쓱 칼로 손질하여 접시에 대충, 가지런히 놓인 순대를 잘 알고 있다. 고춧가루 섞인 소금에 순대를 찍어 먹으면 따뜻한 온기가 혀를 감싸고, 쫄깃한 당면과 소창 껍질이 입속에서 고소한 맛을 내며 입안을 휘두를 때쯤 또 다른 순대가 이미 입술에 다가오고 있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폭풍흡입(?)이 아닌가 생각된다.

큰 대야 그릇에는 순대, 간, 허파, 머리고기, 귀 오돌뼈 등이 가득 들어있고 모시 천으로 덮여 있어 항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찹쌀순대이며 서울의 광장시장이 소창, 대창순대를 만드는 대표적이 곳이었다.

광장시장의 순대는 기름기 없고 탱글탱글한 촉감, 당면과 밥알의 씹히는 식감이 선지의 구수한 맛과 묘하게 어울려 ‘멋진 맛’이 느껴지며, 간은 부드러우면서 야들야들한 얇은 쿠키 같은 느낌으로 고소한 맛과 향이 있고, 허파는 쫀득한 느낌의 몰캉몰캉한 식감으로 매우 연하며, 소주 한잔을 생각나게 하는 돼지 귀 부위의 오돌오돌한 맛은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주전부리로 할 말이 더 필요 없는 음식이다.

비록 시장 노점의 쪽의자에 비좁게 앉아도 어머니와 함께한 그 시절이 행복하기 그지없었던 기억으로 간직되며 지금도 광장시장에 가면 나도 모르게 순대 코너로 발길이 옮겨진다.

지금은 지역마다 순대 파는 식당도 많고 찹쌀순대, 백암순대, 병천순대, 신의주순대,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등 지역과 내용물에 따라 모양과 맛이 다르고 찍어 먹는 양념도 ‘내 경험상’ 서울·경기 지역은 고춧가루소금, 충청·강원도는 새우젓, 호남지역은 초장이나 하얀 소금, 경상도는 막장이나 후추소금, 제주도는 간장 등이 대표적이나 이제는 손님 마음대로다.

나는 개인적으로 돼지고기를 넣은 것보다는 내장을 넣은 담백하고 깔끔한 순대국을 더 좋아한다.

 

‘박서방 순대국밥’
‘박서방 순대국밥’

 

이런 순대국을 하는 식당으로 삼성동 포스코 사거리 근처에 ‘박서방 순대국밥’이 있다. 선친으로부터 대를 이어 아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오래된 식당으로 준오(아들)하고 어린 시절부터 자주 가는 추억이 많은 곳이다. 순대국에 머리고기 한 접시를 먹고 나중에 한 접시 더 주문하여 먹는데 아들과 나의 먹성이 대단한 집이다. 순대국에는 순대와 내장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다른 집과는 결을 달리한다. 둥둥 뜨는 기름이 없으며 순대국의 내장은 질기지 않고 쫄깃한 식감이 좋으며 모양도 토막토막 썰어내어 먹기도 좋다. 밥은 토렴하여 말아 주는데 밥알이 육수에 코팅되어 톡톡 살아 있는 식감이 좋은 순대국이다.

머리고기 한 접시에는 손으로 듬성듬성 뜯어서 내는 솜씨가 불균형 속에 균형을 이룬 듯 손맛이 느껴지며, 저녁 7시 전·후 새롭게 찐 머리고기가 나오는 시간에 먹는 맛은 정말 살살 녹는다. 그중 귀 오돌뼈는 씹을수록 단맛이 나며 살에 붙은 비계는 어찌나 쫀득쫀득한지 콜라겐을 통째로 먹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매형 두 분을 모신 적이 있는데 ‘분당에서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칭찬이 자자했던 기억이 있다. 밑반찬으로는 깻잎, 풋고추, 양파, 깍두기 등이 있으며 특히 깍두기와 풋고추가 예사롭지 않다. 싱싱하고 아삭하며 맵지 않은 기다란 풋고추는 순대국과 아주 잘 어울리는 파트너로 언제 방문해도 신기할 정도로 그 맛이 한결같다. 쌈장 또한 구수하고 품질이 좋다. 순대국에 넣는 부추와 들깨는 ‘맛 궁합’이 좋은 재료들이다. 나와 단짝친구인 중우, 지원이의 단골집이기도 하다.

 

‘청와옥’
‘청와옥’

 

송파 방이동에 있는 ‘청와옥’은 색다른 아이디어로 순대와 순대국을 만드는 집이다. 편백찜이라 하여 순대와 머리고기를 편백나무 상자에 쪄서 내놓는데 왠지 품위 있는 순대로 변신한 듯한 느낌이 든다. 모둠수육은 편백나무 그릇에 순대, 머리고기 등이 숙주나물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어 차원이 다른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다. 깔끔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순대국 집으로 특이하게 가마솥밥도 메뉴에 있다. 순대국에 돼지고기가 있고 국물에 기름이 떠 있어 선호도가 엇갈릴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깍두기와 새우젓도 수준급이다.

일산시장의 ‘중앙식당’도 내장 순대국을 잘하는 집이다. 국물이 진하고 순대에 야채가 들어있는 찹쌀순대이다. 일산시장을 평정한 듯한 시장 속 맛집으로 유명하다. 모둠수육의 야채 순대, 머리고기, 허파, 간, 오돌뼈 등이 한 접시에 우아하게 배치되어 기어코 소주 한잔!

일산에 사는 친구 황박사와 함께한 시장에서의 순대국은 맛과 정을 느끼게 해주어 기분이 좋다.

용인 백암에는 백암순대의 지존 ‘제일식당’이 있다. 순대국의 머리고기와 내장이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이 있어 기분이 좋다. 맑고 깔끔한 국물이 진하고 고소하며 토렴한 밥도 맛있는 순대국이다. 뽀얀 순대국은 뚝배기가 아닌 냉면그릇(?)에 담겨 나와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나 맛은 진국이다. 백암순대의 특징은 손질된 창자 속에 야채가 가득 들어 있어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선지의 비중이 적고 소 선지를 사용해서 비교적 색상이 밝으며 터질 듯한 모습이 다른 순대와 차별된다. 기호에 따라서는 채소를 많이 넣어 뭔가 밍밍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순대 껍질과 함께 야채 씹히는 맛이 고소하여 순대만 한 접시 더 시키고 만다. 역시 순대국 집답게 김치와 깍두기가 맛있고 새우젓이 신선해서 좋다.

나에게 순대·순대국이란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한 짧은 시간의 기억과 아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갖고 있는, 시·공간을 넘어 감성의 음식으로 간직되어 있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순대국은 따뜻한 마음과 애환을 느끼고, 정리·다짐하는 그 이상의 것을 갖고 있는 듯하다. 칼럼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벌써 삼성동으로 향하고 있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 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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