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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55)] 비빔 회냉면 - ‘함흥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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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55)] 비빔 회냉면 - ‘함흥냉면’
  • 손영한
  • 승인 2024.02.14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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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 회냉면 - ‘함흥냉면’
비빔 회냉면 - ‘함흥냉면’

 

햇볕이 유난히 눈부시고 바람 없는 쾌청한 겨울날에는 괜스레 냉면이 생각나며 특히 매콤·달콤한 함흥식 비빔회냉면이 당긴다. 우리 가족은 모두 냉면을 좋아한다. 어릴 적 동네 주위에 냉면집이 많아서인지 어머니부터 누나, 형들도 함흥냉면을 즐겨 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기념될 만한 일이 있으면 냉면 먹으러 자주 간 기억이 있으며 종로 4가 광장시장 주변, 오장동 냉면 골목 등이 자주 가던 곳이다.

함흥냉면은 감자·고구마로 만든 ‘전분 국수’로 함흥 지방의 향토 음식이며 ‘회냉면’이라고도 한다.

오래 전부터 감자 전분을 주원료로 하여 쫄깃한 면발을 만들고 여기에 신선한 가자미회를 얹고 고춧가루, 마늘 등으로 양념을 한 ‘회국수’로 시작된 듯하며 주로 흥남지역에서 많이 먹었다. 1.4후퇴 이후 함경도 사람들은 서울의 중부시장과 청계천 오장동 부근에 자리 잡았다. 50년대 초 오장동에서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함흥냉면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전성기에는 오장동에만 20여 개의 냉면집이 있어 냉면 골목을 형성하였다.

나름대로 함경도식 비빔회냉면의 계보(?)를 살펴보면 함경도 사람들은 서울, 속초, 부산에서 터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회냉면이 이 지역에서 발달해왔다. 서울은 오장동과 광장시장을 중심으로 정착되었으며 초기에는 홍어회를 사용한 회냉면이 손님들의 입맛을 오래전부터 사로잡았으며 지금은 귀한 홍어 대신 가자미(간재미)를 사용하여 회냉면의 지존을 지키고 있다.

속초지역은 가자미가 많이 잡히는 지역 특성상 가자미를 사용한 회국수가 있다. 흥남지역에서 먹던 그 스타일 그대로 정착된 함흥식 냉면은 같은 동해안 지역인 것이 한몫 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속초·양양 지역은 메밀 막국수와 더불어 회국수가 유명하여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바다향 짙은 회국수는 가자미 세꼬시를 넣어 새콤달콤한 맛이 모든 사람들을 만족스럽게 해준다.

부산은 피난지에 정착한 함흥 출신 사람들이 냉면을 밀면으로 변화시킨 특별한 곳이다. 냉면과 다른 점은 메밀 대신 밀가루와 감자녹말을 섞어 면을 만들었다. 밋밋한 맛에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지역 특성상 양념이 많이 들어간 새콤·달콤·매콤한 맛이 특이하다. 밀가루를 사용하여 가격의 부담을 덜고 고명도 계란과 돼지고기 수육을 사용하고 지금은 부산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유명해졌으며 비빔밀면은 과거 함흥식 냉면과 매우 흡사하다.

나의 함흥냉면은 어머니 손잡고 다닌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자주 가셨던 곳은 오장동과 광장시장의 냉면집으로 양은주전자의 따뜻한 육수만으로도 나는 들떠 있었다. 몇 잔씩 먹었는지... 그 시절 냉면집은 큰 온돌방에 길게 식탁이 놓여있었고 손님 구분 없이 오는 순서대로 옆·앞으로 섞여 앉아 먹었으며, 신발은 비닐봉지에 넣어 각자 보관하던 그때 그 시절 냉면집이 그립다. 그래도 방석은 꼭(?) 깔고 앉았다.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에 가면 노포 함흥냉면집이 두 군데 있다. ‘오장동 함흥냉면’ 집과 ‘오장동 흥남집’이 골목 사이를 마주하고 있다. 오장동은 서울에서 함흥냉면의 성지로 두 집의 맛이 약간 다르다. 면발, 양념, 가자미회 등 조리 방법이 틀려 미식가들의 평판도 각각 달라 흥미롭다. 양념이 강하지 않고 구수한 감칠맛과 탄력 있는 면발의 식감이 좋은 ‘흥남집’이 나의 단골집이다. 특히 면은 전분이 더 들어있는지 쫄깃하고 찰진 맛이 너무 좋아 사리를 추가해야 직성이 풀린다. 고명의 간재미(가자미) 회는 기본적으로 양념이 맛있고 간도 좋으며, 간장 빛의 자작한 국물에 담겨 나오는 회냉면은 딱히 뭘 추가하지 않아도 맛있다. 양념은 있으되 결코 매콤하지 않은 오묘한 맛이랄까... 식탁 위에는 양념장, 설탕, 참기름, 식초가 놓여 있어 각자 입맛에 맞게 첨가하여 먹는 배려가 돋보인다. 나는 설탕 한 스푼과 참기름을 황금비율로 배합하면서 나만의 묘한 맛을 즐긴다. 음식에 설탕을 넣는 것은 이 집 회냉면이 유일하고 참기름도 퀄리티가 좋아 맛을 풍성하게 한다. 옛날 주인 할머니가 가르쳐 준 비법(?)이다.

광장시장 옆 종로 4가에는 ‘함흥 곰보냉면’이 있다. 어머니의 계모임에 자주 갔던 곳으로 시계 골목에 있었으나 지금은 종묘 옆 보석상가 건물에서 성업 중이다. 이 집의 회냉면은 면발이 가늘면서도 찰진 식감이 특징이다. 흥남집에 비해 굵기가 절반 이상 가늘어 입에 닿는 촉감이 부드럽다. 명주 실타래가 뭉쳐 있는 듯하다. 회, 오이, 배 등의 고명과 양념된 빨간 국물이 오장동과 달라 먹고 나면 땀이 나는 회냉면으로, 과거 시계 골목에서 이전하고 세월이 흘러 맛도 변했다는 사람도 있으나 무수한 단골이 지키는 냉면집으로 손색이 없다. 이 집의 별식으로 만두가 기가 막히다.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 그날 파는 만두는 냉면보다 더 맛있다는 손님이 있는 곳으로, 몇 년 전 누이·형들과 식사하고 종묘를 산책한 곳도 이 곰보냉면집이다.

지금도 복잡한 시내를 비켜가는 주말이나 연휴에 찾아가는 흥남집! 아이들이 공항에 도착하면 집에 오는 길에 오장동에 들려 외국에서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회냉면은 우리 가족에게는 의미 있는 음식이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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