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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52) 겨울 손님 -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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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52) 겨울 손님 - ‘굴’
  • 손영한
  • 승인 2023.12.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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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굴
생굴
굴떡국
굴떡국

 

첫 추위가 오면 이즈음 큰 통을 들고 이모와 사촌 동생이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온다. 인천에 사시는 이모가 이때쯤 갖고 오시는 것은 ‘굴’이다. 서해안의 바닷물이 들고나면서 자연스럽게 자라는 ‘자연굴’로서 그 맛과 영양이 뛰어나 명품 굴로 유명하나 작은 굴이어서 껍질 손질이 어렵고, 손질할 때 손의 온도가 전달되면 쉬 무르는 경우가 있어 취급이 쉽지 않다. 그래서 먹을 때 껍질이 붙어있어 조심스럽게 먹어야 한다. 사촌 동생도 같이 들고 올 정도로 양이 많아 무거울 텐데 그 당시 경인선을 타고 서울까지 갖고 오신걸 지금 생각하니 지극정성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사촌들은 인천에 살고 있다.

이런 굴을 나는 한 사발씩 먹었다. 생굴을 초간장에 찍어 먹으면 오동통하고 식감이 좋아 입속에서 머무를 것 없이 그냥 넘어갔으며 잔잔한 굴이어서 젓가락보다는 숟가락으로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굴을 어머니는 어리굴젓을 담가 밑반찬으로 만드셨으며 하얀 쌀밥 위에 짭짤한 어리굴젓을 쓱쓱 비벼 먹으면 겨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봄에 먹으면 곰삭은 맛이 더욱 좋다. 빈대떡하고 같이 곁들이면 와우~ 멋진 음식 궁합(?)으로 지금도 ‘종로빈대떡’집에 가면 어리굴젓과 같이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메뉴가 있다. 그릇에 소복이 쌓인 굴 위에 양념간장을 얹어 숟가락으로 먹는 것은 아마 우리 식구들밖에 없을 듯하다. 지금도 서해안 굴을 찾는 것은 이모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굴은 뽀얀 상앗빛 색깔을 띠고 끝부분이 거뭇거뭇하며 바다 향과 짭조름한 단맛이 난다. 양념을 안 해도 간이 딱 맞아 한 접시 후루룩 뚝딱(?)... 회로 먹을 때는 작은 굴이 맛있다. 자연 굴은 알이 작고, 양식 굴은 대체적으로 크지만 야무진 맛이 없다. 싱싱한 굴은 살이 오들오들하고 통통하며 유백색이고 광택이 나며 탄력이 있다. 살 가장자리에 검은 테가 또렷하다. 굴은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 하여 영양적으로 완전식품에 가깝다. 아미노산이 많고 소화 흡수가 잘되어 나이에 관계없이 두루 좋으며 철분, 아연, 칼슘이 많아 빈혈치료에도 아주 좋아 성인병 예방에 유익하다고 전해진다.

굴은 생굴, 무침, 달걀을 씌워서 지지는 굴전, 찜이나 구이, 굴밥·떡국·국 등의 고명, 어리굴젓, 튀김, 파스타 등 다양한 굴 요리로 변신한다. 소굴은 생굴·물회로, 중굴은 무침이나 고명으로 대굴은 전·찜·구이로 먹으면 각각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으나 어느 굴이든 간에 굴 자체의 신선도에 의존하는 음식이라 맛의 큰 차이는 없다. 그래서 계절 음식 특성상 특히 잘하는 집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열차집'
'열차집'
'전망대횟집'
'전망대횟집'

 

오래전 평택·안중지역 도로 설계할 때 찾은 ’전망대횟집‘이 있다. 옛날에는 바닷가 전망 좋은 집이었으나 서해안 매립으로 지금은 육지가 되었고 거기에 평택항과 수출입 단지 등 국가산단이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간판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다. 인근에 있는 평택항 전망대가 그 기능을 대신하는 것 같다. 이 식당은 서해안 굴이 있는 굴 전문점이다. 간장을 살짝 둘러 먹거나 숭늉 마시듯 먹으면 입 안 가득 향긋한 향이 퍼져나간다. 또한 ‘굴탕’은 잘게 썬 파, 배, 참깨와 함께 시원한 국물에 말아 들이키면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쾌감이 드는, 이 집의 겨울철에만 있는 시그니처 메뉴이다.

가격이 비싸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추운 갯벌 바람에 할매들이 긴 호미로 캐는 걸 보면 전혀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들걸”이라는 말로 일침을 놓는다. 그래서 그런지 제철임에도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아는 한 서울에서는 이런 굴을 찾기 힘들며 행여나 시장에서 운 좋게 자연산 굴을 산다고 쳐도 손질하기 여간 어려워 아내들에게 꾸지람 듣기 딱 좋은 굴이다. 굴 중에 제일 맛있다.

수십 년 전에 가덕도의 천성-눌차 간 도로 설계를 하였는데, 그때는 부산 강서구와 가덕도를 연결하는 가덕대교가 가설되지 않아 부산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다 보면, 가덕도 눌차만 일대의 어마어마한 굴 양식장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선착장 근처에 매우 큰 굴 생산공장이 있었으며 그곳 야적장에서 아주머니들이 갓 수확한 굴을 손질하고 있고, 폐굴 껍데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우리 일행은 옆에 앉아 한 접시 먹었는데 싱싱하고 짭조름하면서 달큼한 특별한 맛에 매료되었다. 막 출발하려는 여객선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지금도 내가 설계한 도로를 달리며 거가대교를 거쳐 해저터널로 거제도까지 가는 길이, 멋진 풍경이 어우러지는 부산 명품도로가 되어 그때 먹은 굴처럼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가덕도 굴’이다.

우리나라 양식 굴의 지존인 ‘통영 굴’이 있다. 크기가 제일 크고 육질이 단단하여 국, 찌개, 부침용으로 인기가 좋고 손질이 편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 대굴을 보며 느끼는 것은 외국(특히 유럽, 미국)에서는 아주 비싼 고급 요리가 굴이다. 외국인이 한국에서는 굴을 아무 곳에서나 편히 먹는 것을 보고 첫 번째 놀라고, 굴이 밑반찬으로 제공되며 특히 석화를 사이드 메뉴로 주는 것에 두 번 놀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석화는 식당에 가면 5~6개는 그냥 준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굴이 가장 싼 나라로 한국 사람은 외국에서 비싼 굴 요리를 사 먹지 않는다. 이탈리아, 파리의 유명한 식당이라도... 이런 굴이 바로 통영 굴이다. 생으로, 쪄서, 구워서, 무쳐서, 부쳐서, 튀겨서 먹는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

며칠 전 중간 굴 정도 크기의 굴을 집에서 먹으니 겨울 바닷가에 산책 나온 듯, 신선하고 깔끔한 맛과 향을 느끼고 나중에 무채와 함께 고춧가루 양념하여 조물조물 무쳐서 먹으니 새콤달콤한 맛이 막걸리 한 잔과 잘 어울리는 깔 맞춤이 되어 입을 즐겁게 한다. 여기에 따뜻한 ‘굴 떡국’으로 마무리하니 올겨울이 춥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날은 온통 굴 잔치였다.

뽀얀 우윳빛의 영양 보고인 굴! 서양 사람들은 “R”자가 들어가지 않는 달은 굴을 먹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특별한 계절음식이다. 어릴 적 이모 덕분으로 굴과 친숙한 나의 어린 시절, 이제는 종로에 있는 ‘열차집’에서 빈대떡과 어리굴젓, 굴전의 맛을 찾아본다.

글 사진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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