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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51) - ‘잡채(밥)’ 설레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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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51) - ‘잡채(밥)’ 설레는 마음
  • 손영한
  • 승인 2023.11.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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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먼저 반응하고 사람들 정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음식. 듣기만 해도 편안한 고향 집의 대청마루와 느티나무가 생각나며 어머니와 가족들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우리 음식이다. 떠들썩한 잔칫날이나 명절상, 생일상에는 꼭 한자리를 차지하는 잡채!

원래는 어원 그대로 여러 가지 야채와 꿩고기를 가늘게 찢어서 만들던 요리로 상당히 고급스러운 반찬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지금은 당면에 여러 야채와 쇠고기, 버섯 등과 함께 여러 색상의 조화와 영양의 균형을 중시하는 요리로 스토리가 있고 설레는 음식이다. 얇고 길게 썬 야채(부추, 시금치, 양파, 당근 등)에 버섯(표고, 목이, 느타리 등)과 부드러운 쇠고기를 함께 버무리면 끝! 여기에 고소한 참기름과 깨소금을 첨가하고 계란지단을 부쳐서 컬러감을 더하면 황금 레시피의 잡채가 된다. 쫄깃한 당면의 식감과 부재료들의 어울림이 자극적이지 않아 많은 사랑을 받는 한국 대표 요리이다.

여러 종류의 버섯을 넣으면 맛과 향이 더욱 좋아 듬뿍 넣어도 좋으며, 야채는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조리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부추 대신 시금치를 더 좋아하며 재료들은 각각 삶거나 볶은 다음에 당면과 함께 섞어주는 것이 순서이다. 여기에 약간의 설탕은 맛을 더하는 요정과 같은 존재이다. 지역에 따라 어묵을 길게 썰어 사용하는 곳이 있으며 특히 재래시장에서 자주 보곤 한다. 버섯을 많이 넣으면 ‘버섯잡채’, 야채가 주된 재료이면 ‘야채잡채’ 등 다양한 잡채가 선보이고 있으며 요즈음 파프리카 등 새로운 재료를 첨가하여 맛을 더한다.

우리 집은 목이버섯, 시금치, 고기를 넣어 볶은 다음 충분히 불린 당면을 삶아 큰 대아에 넣어 간장으로 간을 맞추며 버무린다. 나중에 참기름과 설탕을 넣어, 부드럽고 향이 그윽하며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잡채가 된다. 찰지고 탱탱한 당면발과 슴슴하고 고소한 고명과 함께 밥 대신 몇 그릇을 먹던 우리 집 잡채! 목이버섯은 입에서 느끼는 감촉이 좋아 지금도 잡채에 목이버섯이 빠지면 섭섭하다. 무슨 고집(?)인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간단한 잡채도 만들 수 있다. 당면에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만 넣은 ‘간장잡채’는 간식에 가까운 요리이다. 옛날 아침 출근 준비로 허둥지둥하던 때, 당면을 좋아하는 나에게 습습하게 만들어 주신 ‘후루룩 잡채’이다. 그냥 당면만 있으면 되는 요리다. 또 다른 하나는 당면과 콩나물을 같이 버무려 만든 ‘콩나물 잡채’이다. 콩나물은 머리를 떼고 줄기만 사용하여 다른 고명 없이 간장과 함께 버무리면 당면의 쫄깃한 식감과 콩나물 줄기의 아삭함이 어우러져 색다른 맛을 낸다. 어머니의 간단한 당면 요리이다.

지금도 가끔 간장 잡채는 서울 ‘광장시장’ 먹거리 중 하나로 조그만 양푼에 담아 쪽의자에 앉아 먹을 수 있는 노점상이 있어 옛 생각에 잠기곤 한다. 부산 남포동 ‘부평깡통시장’에 가면 당면에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장과 길게 다듬어진 어묵, 단무지, 실파(부추)와 김 부스러기, 깨소금으로 비벼 먹는 ‘비빔당면’이 있다. 양념이 적당하고 당면도 탱글탱글하여 호로록 먹기 편한 시장 별미 음식이다. 참 독특한 당면 국수이나 양이 너무 적어 참 궁색(?) 하다. 광장시장은 간장, 깡통시장은 고추장 베이스인 게 참 재미있다.

이러한 잡채는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하여 만든 반찬이기 때문에 특별한 날 먹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한국식 잡채를 응용한 중국집 잡채밥이 인기 있는 훌륭한 메인메뉴가 되었다.

‘안동반점’
‘안동반점’

 

보문동에 ‘안동반점’이 있다. 오랫동안 연세 드신 주인장이 직접 요리하는 곳으로 레트로 감성이 있는 지역 명소 노포 중국집이다. 이 집의 압권은 ‘잡채밥’이다. 우선 밥이 그냥 밥이 아니고 볶음밥으로 하여 그 위에 잡채를 올려내는 곳으로, 옛날 품위 있고 고급스럽게 느껴졌던 잡채밥이다. 다른 중식당은 맨밥 위에 잡채를 얹어주는 요리이나 이곳은 볶음밥의 꼬들꼬들하고 구수한 맛이 촉촉한 잡채와 만나 맛을 더욱 고급스럽게 한다.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기름이 적고 촉촉한 느낌이, 후추와 불향이 잡채 위에 엎어져 있어 독특한 맛을 내고 있다. 고기도 길게 손질하였고 양배추만으로 이런 깔끔한 맛을 낼 수 있을까? 계란과 파, 약간의 당근으로 담백함과 최상의 꼬실꼬실한 볶음 기술...” 주인장의 내공이 특별함을 나타내는 식당이다. 잡채는 목이버섯, 당근, 고기, 양파와 후추의 조화가 뛰어나며 서로 붙지 않고 쫄깃한 식감이 감미롭다. 볶음밥인 것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 굳이 좋은 이름을 붙이자면 ‘볶음밥잡채밥’이 더 어울릴 듯하다.

향긋한 불향 잡채에 밥알이 코팅되어 있는 느낌이 있는 노릇노릇 누른 듯 고소하다. 잡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곳이 인생(?) 잡채밥의 극강으로 여겨진다. 잡채밥의 정석이고 가격도 양도 너무 착하다. 할 말이 없다....

지극히 손맛으로 맛을 내는 잡채는 나에게는 폭풍 흡입의 음식 중 하나로, 당면 속의 목이버섯처럼 꼬실꼬실하고 정다운 동그란 모양이 마음에 드리운다. 오늘처럼 흐리고 쌀쌀한 날씨에는 약간 달콤한 잡채 한 그릇이 그리워진다...

글 사진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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