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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㊿ 오동통한 ‘오징어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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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㊿ 오동통한 ‘오징어불고기’
  • 손영한
  • 승인 2023.11.07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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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불고기
오징어불고기

 

오징어불고기의 자작자작한 국물의 맛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 좋을까? 깊고 구수한 맛이 짜지도 달지도 또 새콤한 듯, 어떤 느낌의 단어가 어울리는지... 오징어를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손질하고 겉에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칼집을 넣어 갖은양념과 함께 차곡차곡 쌓아 숙성시킨 후 불판에 구워 먹으면 그 맛과 향이 뛰어나 오징어의 새로운 변신을 보는 듯하다. 이것이 ‘오징어불고기’이다.

팬에 올리자마자 살짝 둥글게 말리면서 자그마한 원통 모양이 되어 먹기가 좋고 칼집 덕분에 부드러우면서 오동통하여 입에 짝 붙는 감촉과 쫄깃한 식감이 폼 난다. 칼집 속으로 양념이 잘 배어 있어 맛이 풍요롭다. 어릴 적 이런 ‘오불’을 자주 먹었다. 여러 마리의 오징어를 잘 손질하고 특히 껍질을 다 벗기는 수고를 어머니는 하셨다. 부드러운 식감을 위해서... 양념으로는 양파, 참깨, 설탕,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사용하였으며 이런 소스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모르겠으나 구워 먹고 남은 양념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은 또 다른 별미이다. 굽고 난 오징어의 구수한 육즙이 스며든 양념 덕분일 것이다.

흔히 ‘오불’을 먹고 난 후 후식으로 밥을 비비거나 볶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데, 습습한 느낌의 비벼 먹는 것과 고슬고슬하게 볶아먹는 것은 처음부터 오불의 요리방법에 따라 다르다. 우리 집은 재어놓고 먹는 방식의 레시피로 구수한 양념 국물이 좋아 비벼 먹는 스타일이다. 때로는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신 적도 꽤 있으며 오불에 육즙이 머물러 있어 도시락밥을 적신 적이 많다. 거버 이유식(?) 병에 따로 담아주신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 제품의 작은 병으로 뚜껑의 밀착력이 좋아 김치, 깍두기 등을 담아 다녔다. 그 병도 구하기 쉽지 않던 시절로 그때는 그랬다...

건오징어를 물에 불려 만든 오불 또한 어머니의 명품요리이다. 하루 내내 담가놓은 오징어는 꾸덕꾸덕하게 되어 양념과 함께 팬에 구우면 쫀득쫀득한 식감이 남다르다. 몸통은 불고기로, 다리는 밀가루를 입혀 오징어튀김을 만들어 주셨다. 캬~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지금은 반건 오징어가 있어 수고스러움이 덜하고 식감도 더 쫄깃하고 구수하다. 우리 집 오징어불고기이다. 콩나물, 양배추 등 야채 없이 양파와 오징어로만 만든 너무 맛있는 오불! 어느덧 추억의 음식이 되어 버렸다. 가끔은 작은누나 손에서도 만날 수 있다. 보물과 같은 우리 집 두 가지 소울 푸드인 ‘오불과 북어찜’을 잘 재워서 찬합에 넣어주곤 한다. 솜씨가 좋아 재료의 구수한 맛이 배어있고 옛 맛을 느끼게 하는 참기름도 코와 입을 즐겁게 한다.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난다...

약 30년 전 영동고속도로 확장 설계를 위해 강원도 횡계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오징어불고기를 만났다. 그때만 해도 아주 먼 산지 지역으로 이런 음식이 있을 줄 몰랐다. 황태덕장이 있어 북엇국, 산채비빔밥, 감자전 등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며, 용평스키장이 근처에 있어 겨울철에는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지만 평상시에는 한적한 읍내 마을이다. 그때도 단풍이 지고 낙엽이 떨어지는 늦은 가을 호젓한 계절에 동료들과 현장조사 후 횡계읍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첫눈에 들어오는 메뉴가 오징어불고기! 옛 맛을 느낄 수 있겠다는 예감이 번뜩 스쳤다. 주문을 하자마자 주인 할머니는 즉석에서 손질된 오징어를 양념에 버무린 뒤 양푼째 들고 와서 손으로 불판에 척 올리는 모습에, 순간 모두 불판으로 눈길이 쏠리고 할머니의 익숙한 손놀림과 오동통 부풀어 오르는 오징어에 얼음 땡(?)이 되어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이거다!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양파와 약간의 콩나물이 있는 횡계식 오불은 푸짐해 보인다. 주문진 오징어의 싱싱함과 감칠맛이 풍부하고 콩나물과 궁합도 잘 맞는다. 고추장불고기도 따로 있어 식객들을 즐겁게 한다. 이렇듯 대관령 횡계 마을에서의 구수한 맛이 늦가을 저녁만큼이나 깊어만 간다. 지금도 횡계에는 ‘오불’을 하는 식당들이 많이 있으며 어느 집이 특히 잘한다는 구별이 어렵다. 그래도 할머니의 손맛이 있는 오래된 집으로 마음이 끌린다.

시대에 따라 음식은 변한다고 요즈음은 ‘오삼불고기’가 대세이다. ‘오삼’은 싱싱한 오징어와 돼지 삼겹살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또 다른 맛을 주어 고객층이 두껍다. 서울에서의 대부분 식당들이 오삼을 취급하고 있고 그러면서 은근히 가격이 높아졌다. 오삼은 조리 중에 돼지기름이 생겨 오징어의 깔끔하고 구수한 맛을 돼지고기가 점령하는 것 같아 호불호가 있다. 오삼은 나중에 밥을 비벼 먹기보다는 노릇노릇 볶아 먹어야 하는 요리로 김 부스러기는 매력 포인트! 개인적으로 오삼보다는 오불의 무겁지 않은 맛을 더 좋아한다.

'달의 식당'
'달의 식당'

 

주변에 오불식당이 꽤 있으나 딱히 ‘이 맛이다’라고 하는 집이 별로 없다. 예전에 ‘한남동 해남갈비’ 집에서 먹은 오징어불고기가 슴슴 하면서 재료(오징어, 당면, 파채 등)의 조합이 탁월한 식당이었으나 지금은 폐업되어 아쉽다. 많은 식당들이 좀 달달하고 진한 양념으로 매콤하게 만들어 낸다. 종로 YMCA 골목길에 ‘달의 식당’이 있다. 주점 같은 느낌의 식당으로 오불의 오동통한 오징어가 식감이 좋다. 달콤 매콤한 오불은 밥과 함께 비벼 먹기 딱 좋고 술안주로도 안성맞춤이다. 비벼먹는 오불이어서 기분이 좋다.

'오징어 풍경'
'오징어 풍경'

 

강남 대치동에 ‘오징어 풍경’이 있다. 오징어와 돼지불고기의 조합이 좋은 식당으로 일석이조의 맛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간판에 오징어불고기라고 쓰여 있지만 오삼이 대표 메뉴로서 돼지불고기를 먼저 볶은 다음, 그 위에 오징어를 고명처럼 올려 먹는 조합이 그럴듯하다. 남은 양념에 볶아먹는 볶음밥은 밥도둑이다.

과거 추억의 맛처럼 최고의 맛은 또 없겠지만, 도시락 반찬으로 싸온 슴슴 하고 구수한 오징어불고기의 오동통하고 쫄깃쫄깃한 식감은 지금도 입속에서 맴돈다...

덧붙이는 말 ; 2년 전 이즈음(2021.11.9) ‘도루묵, 초겨울 밥상의 손님’으로 첫 칼럼을 시작한 지 50회를 맞았습니다. 미숙한 글 솜씨로 독자분들과 많은 시간 만난 것에 감사드리며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는 맛 칼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손영한 올림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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