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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㊾ 초가을 ‘버섯지왕’-자연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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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㊾ 초가을 ‘버섯지왕’-자연 송이
  • 손영한
  • 승인 2023.10.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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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능이, 이표고, 삼송이! 버섯의 서열을 굳이 매긴 개인적 생각이다. 가을의 버섯치고 맛없는 버섯이 있겠냐마는 이 세 종류의 버섯은 다른 버섯에 비해 맛과 향이 좋아 인기가 많다. 각각에 어울리는 재료와 함께 요리하면 더욱 멋진 음식이 된다. 쇠고기, 전복, 새우, 전골, 탕 등과 궁합이 맞는 버섯들이며 특히 능이는 백숙이나 전골에 아주 특징되는 버섯이며, 표고는 궁중요리·혼례음식에도 등장하는 격조 높은 버섯이다. 맛에 대해서는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있지만 모양에 대해서는 송이를 따를 버섯이 없을 것 같으며, 버섯의 표준이고 온화한 모습이 예쁘며, 자태가 빛이 나고 멋있다. “보기에도 좋은 떡이 맛도 있다”라는 속담처럼 식도락가 중에는 송이를 최고로 치고 혹자는 ‘버섯지왕’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송이는 초가을 꾸준히 비가 온 뒤,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서 잘 자라며 이때 송이를 채취한다. 비가 많이 오거나 햇볕이 강하거나 통기성이 없으면 송이는 자라지 않는다. 이쯤 되면 송이가 자라는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채취시기, 기후조건, 장소 등의 영양을 받아 다른 버섯에 비해 몇 배가 비싸다. 양식 재배가 안 되고 자연에서만 채취하므로 가을철에 사치를 누릴 만큼 최고급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백두대간의 소나무가 울창한 양양, 봉화, 영덕, 울진 송이가 유명하다. 역설적으로 너무 고가의 가격으로 판매되어 일송이가 아닌 삼송이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생으로 먹는 송이는 아작아작한 식감을, 익히면 말캉말캉한 탄력이 있는 식감이 좋다. 소나무가 있는 토양에서 자라니 은은한 솔 향과 선명한(?) 향이 나며 약한 불에 살짝 익혀서 소금에 찍어 먹으면 송이의 식감과 향을 더욱 즐길 수 있다. 쇠고기와 같이 구워서 먹어도 좋으나 불판 위에 쇠고기와 송이의 두 가지 향이 충돌해서 서로의 매력이 반감되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조리방법이다.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송이에 환장(?) 하는 일본에서는 주로 국물요리에 많이 곁들인다. 독특한 향과 씹는 식감이 좋아 한국, 일본인들이 제일 좋아한다.

중국요리 중에는 ‘불도장’이 송이의 향을 제법 느낄 수 있는 요리이다. 각종 산해진미에 육수를 푹 끓여 내는 중국 탕요리로, 들어가는 재료의 내용이 호사스럽기 때문에 중국집에서 가장 비싸고 진귀한 요리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하며 기름기 없는 살코기, 비둘기 알, 죽순, 전복, 건해삼, 상어 지느러미, 인삼, 은행 등의 수십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것으로 여기에 자연 송이를 넣어 최고의 향을 자랑한다. 국물요리에 매우 적합한 송이를 극대화하는 요리이다.

나는 송이를 생으로 그냥 쪽쪽 찢어서 소금에 찍어 먹는다. 입속에서 우물우물 거리면 향이 코로 전달되어 몸이 반응한다. 탱탱하게 튀는 식감과 씹을 때마다 느끼는 향에 눈이 스르르 감긴다. 손으로 찢어 먹는 탓에 손끝에 묻어나는 향도 내 코를 자극하며 향으로 시작해서 향으로 끝나, 먹고 난 후 손 씻기(?)가 싫어진다. 그다음은 팬에 참기름을 두른 후 살짝 구워 소금을 조금 가미하여 먹으면 향이 더욱 돋아나는 것 같다. 식감도 쫀득쫀득하여 식도락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방법이다. 너무 귀한 음식이라 오로지 송이로만...

'들풀'
'들풀'

 

2000년대 초, 서울-양양 고속도로 기본 설계를 수행하던 중 인제 산골에서 자연송이를 만난 적이 있다. 초겨울이라 갓 채취한 송이는 없고 처음 보는 냉동 자연송이로 3등급 송이였다. 주인장 이야기로는 철 지난 다 핀 등급 외 자연송이를 냉동시켜 필요시 꺼내 사용한다고 하며 사시사철 언제 먹어도 그 향이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감은 떨어지나 국물요리에는 최고의 레시피(?)를 보여준다. 하나씩 해동하여 라면에 넣어 먹으니 캬~ 신선이 부럽지 않다. 처음으로 맛본 자연송이 라면이다. 밥 지을 때, 된장찌개, 전골 등에 넣어 먹으면 또 다른 별미가 된다. 지금도 가끔 양양에서 냉동 송이를 저렴한 가격에 사 와서 지난가을이나 돌아올 가을을 맛본다. 냉동 보관으로 오랫동안 생각날 때마다 먹을 수 있고 가성비도 좋다.

몇 년 전 가을에 친구 부부와 함께 양양에서 자연송이 정식으로 송이의 향에 흠뻑 취한 적이 있다. 그때 먹은 맛 그대로 ‘들풀’이라는 한정식집이 있다. 광화문 청와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현지 자연송이 향과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자연송이 솥밥’이 있다. 송이, 시래기와 밤 등이 한데 조화스럽게 어우러진 솥밥으로, 간장 양념에 솔솔 비벼 몇 숟갈 먹으면 정신없이 바닥이 드러나 보인다. 과하지 않은 양념만으로 풍미를 살리는 사찰음식 같은 밑반찬이 흠잡을 것이 없어 배불리 먹어도 속이 편하고 기분이 좋다. 주변의 조용한 경관과 잘 어울리는 수수한 집으로 방문할 때마다 항상 싹싹 비운 그릇들이 덩그렇게 남는다.

오늘도 냉장고에 보관된 해동시킨 자연송이를 쫙쫙(?) 찢어서, 파를 송송 썰어 넣어 너구리와 함께 먹는 나만의 호사스러움을 가져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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