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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㊽ 촉촉한 ‘북어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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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㊽ 촉촉한 ‘북어찜’
  • 손영한
  • 승인 2023.10.10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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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기인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시인 [백석의 시]로 대롱대롱 걸려있는 명태에 비유되는 시구가 가슴으로 들어온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오현명의 노래 가곡 ‘명태’중에서) 바로 명태에 대한 시와 노래이다.

명태 새끼는 노가리, 싱싱한 생물은 생태, 꾸덕꾸덕 말린 것은 코다리, 완전히 얼린 것은 동태, 바짝 말린 것은 북어, 봄의 춘태, 산란 후의 꺽태, 작은 것은 아기태,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는 강태, 망태, 백태, 왜태, 조태, 진태, 흑태... 내장은 창난젓, 알은 명란젓을 담근다. 겨우내 덕장에서 수십 번 얼렸다 녹였다 하여 만든 황태는 속살이 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자태를 갖추어간다. 덕장에서는 머리가 떨어진 것을 무두태, 몸이 부서진 파태, 속이 딱딱한 녀석은 골태, 검은빛을 띤 흑태... 생소한 이름도 참 많고 왠지 마음이 서러운 정서가 든다.

어머니의 방망이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북어를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방망이질을 하여 배를 갈라 굵은 뼈를 추스르고 큰 대아에 한참을 물에 불린 후 손질을 다시 하여 잔가시들을 바른다. 딱딱한 북어가 뽀송뽀송하고 푹신한 이불솜처럼 되어 밝은 색이 감도는 노르스름한 황금색으로 변신한다. 여기에 양념간장, 참깨, 실고추, 대파, 다진 마늘, 참기름 등을 잘 펴진 북어 위에 얹어 적당히 숙성된 후 쪄내면, 와우~ 멋진 북어찜이 된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북어의 고소함과 쫄깃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북어찜은 아무 때나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며 하루 전부터 준비하는 시간과 정성이 함께하는 계획된 작품과 같은 요리이다. 또한 방망이질을 과하게 하면 다 부서져 못쓰게 되어 힘으로 하는 음식이 아니다. 어머니의 북어찜은 과하지 않은 간장 양념과 잘 불린 두툼한 살이 젓가락으로도 잘 분리되면서 탱탱하고 부들부들한 살집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바싹 마른 북어이지만 조리된 찜은 육즙이 살아있는 ‘촉촉한 북어찜’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자칫 잘못 만들면 살이 푸석푸석하게 되어 종잇장(?) 씹는 듯한 느낌을 주는 요리가 된다.

작은 누나도 북어찜을 참 잘하는 데 어머니처럼 만들기 때문에 맛있다고 느껴진다. 가끔 찜과 잡채를 해주시는 데 둘 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서 받을 때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요즈음은 북어가 폭신하니 더욱 맛 좋다. 슴슴한 양념에 뽀송뽀송한 식감, 그리고 촉촉한 북어찜이 어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촉촉함’이라는 말이 북어찜에 대한 적절한 표현으로 생각된다.

잘 재어진 북어는 구이로도 일품이다. 어머니는 연탄불 석쇠에 집사람은 오븐에, 예전에는 밥반찬으로 지금은 술안주라는 것이 다를 뿐... 현관에 들어설 때 고소한 북어구이(찜) 냄새는 달콤한 웃음을 짓게 한다.
 

‘안성또순이’
‘안성또순이’

 

광화문에 ‘안성또순이’ 식당이 있다. 40년 넘는 광화문 지킴이 식당으로 입구부터 고즈넉한 범상치 않은 단독주택으로, 특히 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생태찌개 전문점이다. 고추장 양념으로 숙성된 북어찜은 부드러운 맛과 양념이 과하지 않고 달지 않으며 하나하나 씹히는 오들오들한 식감이 좋아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여기에 육즙 가득 머금은 부드럽고 고소한 수제 동그랑땡과 같이 먹으니 바다와 육지의 조화가 입을 즐겁게 한다.
 

‘역삼동북어집’
‘역삼동북어집’

 

역삼동에 ‘역삼동북어집’이 있다. 북어찜과 구이만 하는 소박한 밥집으로 단일 메뉴 기사식당 맛집으로 유명하다. 오래 끓인 북어찜은 양념이 잘 배어있어 얼큰하고 깊은 북어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양배추가 식감을 더해준다. 양파도 흐물흐물한 게 양념이 제대로 배어있으며, 국물이 자작하게 있어 너무 짜지도 너무 진하지도 않은 시원한 느낌이 좋고 나중에는 얼큰한 맛이 별미이다. 뼈와 살이 쉽게 분리되며 살은 약간 찰진 듯하여 코다리같이 씹는 식감이 좋다. 백반으로 먹다 보면 어느덧 북어찜을 추가하여 먹을 정도로 묘한 밥도둑 맛에 빠져든다. 연륜이 말해주듯 겉은 소박하지만 감동을 주는 무엇인가가 있는 곳으로 국물도 더 달라 하여 먹을 수 있는 편안한 집이다.

한양대 근처에 ‘이모네 북어찜’집이 있다. 추억의 감성이 있는 왕십리 한양대 먹자골목에 있는 식당으로 매콤 달콤한 양념이 자작하게 들어있는 북어찜이 최고의 인기 메뉴이다. 반 건조된 명태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살코기가 실하고 양념이 맛있어서 밥과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수십 년 전부터 명물로 자리 잡은 곳으로 잠시나마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감성이 있는 집이다. 학생들이 과 잠바를 입고 들락거리며 퀄리티와 가성비가 아주 만족스럽다.

지금은 북어를 방망이질해서 요리를 하는 집은 드물지만, 다듬잇돌에 빨래한 광목천을 다듬는 방망이 소리는 지금 들어도 시인의 시구처럼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방망이에 두들겨 맞으면서 생기는 북어의 보풀보풀거리는 보푸라기가, 마루에 깊게 들어온 햇빛에 이는 것이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아른거린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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