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7:10 (토)
실시간뉴스
[혜윰뜰에서 온 편지] 가장 약한 순간 우리는 성장한다
상태바
[혜윰뜰에서 온 편지] 가장 약한 순간 우리는 성장한다
  • 채동균
  • 승인 2023.10.01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해인가 여름철 매미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두 마리 여름 새벽 울음소리는 정겨운 멋이 있을지 모르지만, 빼곡하게 창밖을 매미 소리가 채우는 날이면 새벽 단잠을 빼앗긴 아쉬움에 한숨 소리가 나기도 한다.

월요일 아침 새로운 한 주를 숙면 뒤에 힘차게 맞이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앗아가는 매미가 예쁘게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마냥 매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데, 매미의 생주기가 애처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힘찬 울음소리로 단잠을 깨우는 미운 짓 하는 매미이지만, 성충인 매미는 고작해야 여름 한 철 한 달 정도의 짧은 생을 살기에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이다.

매미의 생주기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매미는 생주기가 짧은 것뿐 아니라 생존방식 자체가 많이 낯설다. 우선 말하자면 매미는 수컷만 운다. 그리고 흔히 생각하는 운치 있는 매미 소리를 내는 녀석들은 참매미류이다. 도시에서는 나무가 줄어들고, 도심의 소음으로 운치 있는 소리를 내던 녀석들이 퇴화하고, 목청 큰 말매미가 득세한 것이 도시에서 매미가 소음 덩어리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큰 매미 소리에 불평하기에는 사람이 그 소음의 원인인 것이다. 큰 소리로 짝짓기 상대를 찾아야 하는 매미에게 도심의 소음은 더 큰 소리로 생존을 갈구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매미의 울음소리에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말매미의 거대한 울음소리를 옆에서 계속 듣다 보면 귀가 멍할 지경이다. 아마 귀에 매미가 붙어서 운다면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정도면 매미 자신에게도 무척 괴로운 생존의 방식이다 싶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매미는 다른 곤충과 달리 자신의 청력을 끄고 켤 수 있는 용한 재주가 있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짝을 찾아 높은 소리로 우는 매미는 자신의 소리는 정작 듣지 못한다. 청각을 끄고 울어대기 때문에 들리는 것이 없다. 매미 소리에 지친 어느 날 낮에 창문 방충망에 붙어 소리 질러대는 매미에게, 소음에는 소음으로 갚아준다는 심정으로 ‘제발 딴 데 가서 울어라.’라고 목청 높여본 일이 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무척 무시당하고 있구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귀를 꼭 막고 사이렌 소리 같은 소리를 내지르는 매미이지만, 생주기를 보면 마냥 화낼 수만은 없다. 암컷 매미가 나무껍질 사이에 알을 낳는 것으로 시작하는 매미의 생주기는 1년을 알로 지내고, 다음 해 여름이 되면 부화하여 유충이 된다. 유충이 된 매미는 즉시 땅속으로 들어가는데, 주로 나무뿌리의 즙을 생존수단으로 삼으며, 5년에서 7년 정도를 땅속에서 살아간다. 그 뒤 지상으로 올라와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는 우화의 시간을 거치는데, 우연히 이 과정을 온전히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땅속에서 갓 올라온 꽤나 큰 생명이 껍질을 벗는 과정을 두 시간 정도 하염없이 지켜보았는데, 여간 힘겨운 모습이 아니었다.

아마도 우화하는 동안이 매미에게는 가장 약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천적이 들이닥쳐도 땅속으로 다시 도망갈 수 없고, 날아오를 날개는 채 마르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우화의 시간이라고 느껴졌다. 7년의 세월을 땅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창조를 위해 성충의 생애를 살아갈 준비를 해왔을 매미에게 몇 시간의 우화 과정은 참으로 고된 과정이다 싶었다. 다행히 내가 그날 지켜본 매미는 우화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날개가 잘 마른 뒤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과정이 꽤나 긴 시간이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았던 가장 큰 이유는 생존을 향한 생명의 의지가 보여주는 강렬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미에게 있어 우화라는 과정은 전체 생주기 중에서 가장 약한 순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생을 위해 가장 크게 성장하는 시간이다. 이는 비단 매미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데, 허물을 벗는 생명 중에는 가재와 같은 갑각류도 있다. 갑각류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외골격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단단한 녀석들이다. 단단한 껍질을 가진 갑각류도 해를 거듭하면서 성장을 하는데 그 과정에도 자연의 묘한 매력이 담겨 있다. 갑각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주던 껍질을 탈피해야만 한다. 탈피하는 순간 그동안 자신을 지켜준 단단한 껍질은 허물처럼 벗어던지고 그 속에서 부드럽고 연약한 새로운 몸이 모습을 드러낸다. 땅 위에서 7년 만에 세상 빛을 보기 위해 매미가 우화로 위기를 겪는 동안, 물속에서 가재는 외골격을 탈피하면서 똑같은 위기의 과정을 겪게 된다. 그리고 위기의 시간 동안 주어지는 시련을 극복하고 나면 매미는 날개를 얻고, 가재는 더 크게 성장하는 보상의 시간이 주어진다.

 

 

껍질을 벗어 던지면서 새로운 생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은 세상 모든 씨앗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씨앗은 적당한 기온, 수분, 산소라는 환경을 주면 발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껍질을 벗어 던지고 본연의 모습을 찾아간다. 씨앗도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여 발아 과정이 제각각인데, 어떤 특이한 씨앗은 불에 타야 발아를 시작하는 씨앗도 있다. 주로 건조하고 기온이 높은 곳에서 자연발화 현상이 자주 있는 곳에 서식하는 식물의 씨앗이 그러하다. 같은 씨앗이라도 다음 해 바로 발아하기도 하고 몇 해가 지난 뒤에 발아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마도 한꺼번에 발아하면 한정된 양분을 서로 나누다가 성장 어려움을 겪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그러고 보면 자연의 이치는 매미에게나 가재에게나 씨앗에게나, 그리고 사람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십수 년 전에 중병으로 일상생활이 완전히 멈춘 일이 있었는데, 별로 길지 않은 생애이지만, 그 시간이 살아온 날 중에 가장 약했던 시간이었다. 사회인으로서 역할도 멈추고, 신체는 중병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도 힘겨운 날들이 이어졌다. 치료의 과정은 고통스러웠고, 언제 끝날지 모를 고난의 시간에 두려움을 가득 안고 지나가는 날이 늘어갔다. 더는 고통을 감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그동안의 모든 계획을 내려놓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만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 것은 걷기였고 걷기가 덜 힘들어지면서 조금씩 산책의 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리고 그 산책하는 기간 동안 나는 자신을 들여다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뒤돌아보면 그 순간이 나에게는 우화의 시간, 탈피의 순간, 발아의 경험이었지 않았나 싶다.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었고, 병을 얻고서 함께 찾아온 두려움을 서서히 벗어던지고 있는 스스로의 변화를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이전에 비해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생을 두려움으로만 살아가지 않아도 됨을 알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병과 싸우는 시간 동안 나는 가장 약한 나를 만났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나를 찾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마치 가재가 자신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을 벗고 더 큰 자신을 만나게 된 것처럼, 하나의 씨앗이 발아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된 것처럼.

 

가장 약해진 순간부터 우리는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약해진 자신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기를. 변화의 시간 앞에 기쁘고 당당하기를. 희망으로 앞을 바라볼 수 있기를, 이 마음이 변화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을 이웃에게 전해지기를 조용히 소망해 본다.

글·사진 채동균(혜윰뜰도시농업공동체)

 

채동균…

영국의 시인 William Wordsworth를 동경하여 영어영문학
을 전공하였으나, 사회 생활을 IT 기업에서 시작하는 비운
을 겪으며, 평생 생업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로 활동해오고 
있다. 마을에서 우연한 계기로 주민대표를 4년간 맡은 인연
으로 혜윰뜰 도시농업공동체 대표가 되었다. 생업과는 별
개로 마을에서는 주민공동체 활동, 문화강좌 프로그램 기
획 등으로 이웃과 함께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