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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㊺ 화이트 와인과 ‘참가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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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㊺ 화이트 와인과 ‘참가자미’
  • 손영한
  • 승인 2023.08.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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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씨 저녁 무렵, 나의 퇴근길은 서쪽을 바라보며 운전하는 데 해가 막 지기 시작되는 이 시간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라디오 음악과 함께 감성에 젖어들 즈음 노을이 슬그머니 자태를 드러낸다. 늦여름 붉은 노을과 분홍색 구름, 짙은 청색 하늘은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다워서 감성을 흔들곤 한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와인 한 잔의 궁금함을 가득 안고 현관을 들어서는 데,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후각을 자극하는 노릇노릇한 참가자미가 오롯이 내 눈에 들어온다. 여름 참가자미는 튀기 듯 구우면 쫀득하고 담백한 맛이 화이트 와인과 함께 미각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참가자미는 흰색 속살의 납작한 생선으로 모양이 넙치와 비슷하나 크기가 작고 눈이 있는 등 쪽은 황갈색, 반대쪽은 백색이며 제철에는 지느러미 기저 부근이 황색을 띤다.(노랑 참가자미) 가자미의 종류 중에 참가자미가 살의 탄력과 고소한 맛이 으뜸이고 어획되는 양도 적어 가장 고급스러운 가자미이다. 수심 깊은 곳에 살며 특히 속초 앞바다는 한난류의 영향으로 봄철만 되면 연안으로 몰려온다. 속초 지방의 참가자미가 맛있는 이유이다.

참가자미에 대한 추억도 속초에서 시작되었다. 지인이 소개한 식당은 갯배 선착장 앞에 있어 잠시 갯배를 타고 청호동 아바이 마을을 둘러보았다. 갯배는 무동력 어선으로 손님들이 직접 줄을 끌어당겨 움직이는 배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추억으로 기억된다. 선착장 앞에 있는 ‘송도 물회’ 식당은 세꼬시와 물회를 잘 하는 집으로 나에게 참가자미 맛을 느끼게 해준 곳이다. 막 썰어 나무 채반에 담겨 나오는 세꼬시는 하얗고 반짝반짝 윤기가 있어 먹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참가자미회에 대한 첫 대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특히 이 집은 노랑 참가자미로 첫 맛은 달고 생선 살은 쫄깃쫄깃하며, 잔뼈와 함께 썰어내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하다. 야채 그릇을 따로 주어 물만 부으면 시원한 물회가 된다. 속초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집으로 지금도 상상만 해도 속초 앞바다에 와 있는 느낌이 드는 집이다. 낚시만으로 잡는 자연산으로 콩가루에 야채와 함께 버무려 회무침으로 먹으며 늦게까지 소주잔을 붙들고 있었던 추억이 아른거린다.

바닷바람에 말려두었다가 건어물로도 여러 요리가 가능하다. 겉에 있는 체액을 소금에 씻어주면 냄새가 없어지며 하얀 뱃살이 보이도록 채반에 건조하는 모습은 어촌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살이 통통하고 꾸덕꾸덕 말린 반건조 가자미는 구이가 제격이다. 잘 구워진 가자미는 겉바속촉이 되어 찰진 식감과 고소한 맛이 돋보인다. 비린 냄새가 적어 구이나 튀김요리가 좋고 가시가 적고 억세지 않아 먹기도 좋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맛있는 가자미구이 식당이 많아 나는 즐겁다.

갖은양념의 회무침은 매콤 달콤한 맛과 오돌오돌한 식감이 뛰어나며, 함경도에서는 참가자미를 토막 내어 조밥과 고춧가루, 무채, 엿기름을 넣어 삭혀서 만든 ‘가자미식해’가 유명하다. 술안주나 국수의 고명으로 사용되어 맛을 더한다. 특히 입맛 없을 때 따뜻한 밥에 얹어 먹으면 기운이 나는 듯하다. 회무침과 곁드려 먹는 회국수는 홍어나 간재미가 들어있는 회냉면만큼이나 식도락에도 인기가 많으며 속초에는 회국수집이 많다. 개인적으로 회무침, 구이, 세꼬시 순(?)으로 좋아하며 ‘가자미식해’는 회무침을 오랫동안 맛보려고 만든 음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분당에 오래된 참가자미 세꼬시 전문점인 ‘동해참가자미’ 집이 있다. 속초 바닷가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식당으로 100% 낚시로 잡은 노랑 참가자미가 수조 안에 가득한 곳으로 오랜 단골 식당이다. 세꼬시와 튀김을 잘한다. 세꼬시는 뼈가 느껴지지 않도록 손질을 잘 하였고 깻잎 등 야채와 같이 먹으니 한결 맛이 살아있고 시원한 백김치는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자주 다닌 곳으로 수십 년 동안 맛의 변화가 없어 기분 좋은 식당이며 세꼬시 나오기 전에 잘 부쳐진 김치전 한 조각은 식전 입맛을 돋우는 데 손색이 없다.

 

중구 인현시장 내 ‘진미네’ 식당이 있다. 가자미 구이를 잘하는 집으로 주인 할머니의 지져내는 솜씨가 좋고 정성이 들어 있으며 생선 크기도 작지 않아 매우 만족스러운 식당이다. 구수하고 바삭한 식감이 좋고 첨가되는 양념이 없이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싱거우면 그냥 간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소박하고 정갈한 구이 한 마리이다. 이만한 크기에 가격도 착해 서울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 같은 시장 안 식당으로 여럿이 가면 추억의 이야깃거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가자미회무침은 서울에서 맛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속초에 가야만 회무침도 먹고 회국수를 만날 수 있어 무척 아쉽다. 그래도 막국수 등에 가자미식해를 조금 올려놓는 식당이 있어 위안을 찾는다. 조만간 친구 태선이와 노랑 참가자미를 찾아 분당으로 가야겠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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