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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㊸ 여름 별미 ‘팥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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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㊸ 여름 별미 ‘팥빙수’
  • 손영한
  • 승인 2023.07.20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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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더운 여름날! 땡볕 더위에 축 늘어지고 의욕이 없고 힘들 때면 시원한 얼음에 설탕물을 타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 당시 전기·수도 검침원, 우편배달부 등 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여지없이 얼음이 있는 설탕물을 한 대접씩 타주신 시원하고 상쾌한 어머니표 아이스 설탕물이다.

우리 집 뒷골목에는 얼음가게가 있었다. 나는 연탄 크기만한 얼음덩어리를 새끼줄에 매달아 사가지고 오는 심부름을 자주 하였으며 어린 마음에도 가지고 오는 동안 녹지 않게 하려고 뛰어서 가져오곤 하였다. 그래도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졌는데 그 시절 여름은 왜 그리 더웠었는지.... 양푼에 담아 가느다란 못이나 이불 꿰매는 큰 바늘을 대고 망치로 적당한 크기로 조각내어 아이스박스에 넣어 보관하면서 먹은 생각이 난다. 그 당시 아이스박스는 노란색 원통 모양으로 위에 뚜껑이 있고 옆에 조그마한 주전자 구멍이 있어 차가운 물을 따라 마실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색깔과 모양이 마치 참외처럼 생긴 예쁘고 아담한 모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참외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듯하다.

이렇게 마련된 얼음으로 화채, 미숫가루 등을 만들어 먹으며 삼복더위를 보냈으며 그중 수박화채는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어도 충분할 만큼 양과 맛도 좋은 우리 집 여름나기 음식 중 하나였다. 지금은 뒷골목 얼음가게는 없어지고 종로5가 곱창거리로 변해있는 그 골목에 서서, 새끼줄에 매단 얼음을 들고 총총 뛰어가던 어린 나의 뒷모습을 떠올리니 괜스레 눈이 촉촉해진다. 벌써 50년이 훌쩍 넘은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렇듯 얼음과 인연이 있는 여름철 별미로는 빙수를 빼놓을 수가 없다. 옛 빙수는 얼음을 제빙기에 넣어 갈아낸 얼음 가루에 울긋불긋한 시럽을 뿌려 놓은 것으로 불량식품(?) 같은 빙수가 대부분이었다. 여러 번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국민 여름 간식이 되어버린 달콤하고 시원한 ‘팥빙수’는 더위를 상쾌하게 즐길 수 있는 여름의 단짝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과일, 초콜릿, 과자, 케이크 등 다양한 재료를 넣은 화려한 빙수가 등장하여 더위뿐만 아니라 시선까지 빼앗아간다. 미니어처 우산(?)은 왜 꼽아 놓는 건지...

여름철 삼복더위에 ‘팥’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예부터 수수팥떡(경단)은 복달임 음식으로 여겨져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으면 초복에 액을 물리친다 하여 즐겨먹은 음식이 ‘팥’이었다. 지금도 호남지역에는 초복에 팥으로 음식을 만들어 여러 친척들과 같이 먹는 풍습이 아직도 있다. ‘팥’에는 찬 성분의 성질이 있어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음식으로 붓기를 빼주고 혈압 상승 억제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사포닌도 들어있어서 아토피 피부염과 기미제거에 도움을 주어 예로부터 세안과 미용에 이용되어 왔다.

우리나라 빙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과일을 넣은 빙수를 즐겨 먹는다. 일본은 과일향이 나는 시럽을 뿌려 먹는 방식이 지배적이나 한국은 생과일이나 기타 토핑을 푸짐하게 올리는 방식의 빙수이다. 이것은 화채식 문화와 비슷한 것으로 추측된다. 토핑으로는 파인애플, 복숭아, 수박등 과일과 팥, 찹쌀 떡, 콩가루, 젤리, 시리얼 등 다양한 부재료를 넣어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발전해 왔다. 제주도 빙수는 옥수수가 들어가는 것이 기본이다. 팥 이외에도 떡, 아이스크림, 젤리, 푸르츠칵테일, 생과일, 통조림콘 등 타 지역보다 부재료의 비중이 훨씬 높다. 우유 빙수, 녹차빙수, 과일 빙수 등 파생형이 많이 있으나 그래도 빙수 하면 ‘팥빙수’이다.

빙수는 갈아내는 굵기에 따라 맛을 달리한다. 눈꽃빙수, 슬러시 빙수 등 곱게 간 것이 더 맛있다고 하는 사람과 자잘한 얼음 알갱이가 씹히는 쪽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입에서 바로 사르르 녹는 것보다 입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있는 빙수가 나는 더 좋다. 어쨌든 빙수는 만들자마자 바로 먹어야 제맛이 난다. 빙수 파는 집이 흔치 않았던 시절에 광화문·종로의 덕수, 종로, 독일, 풍차제과와 장충동 태극당이 전통적으로 팥빙수를 잘 하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태극당만 영업을 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강남역 부근의 심플한 팥빙수의 명가 ‘장꼬방’이 있다. 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국산 팥으로만 요리하는 팥 전문점으로 팥빙수, 찹쌀떡, 팥죽만 있다. 얹어주는 팥은 층층이 넣어져 있어 빙수 사이사이에 스며들면서 특별한 맛을 낸다. 맨 위에 ‘통팥’을 올리고 거기에 고명으로 넣은 채 썬 생밤의 노란색과 팥의 붉은색이 잘 어울려 보기 좋고 아삭하게 씹히는 풍미를 더해주는 아주 특별한 팥빙수를 제공한다. 팥의 담백함과 고소함이 입에 짝 달라붙고 찹쌀떡을 여러 등분하여 첨가하면 달콤한 팥앙금이 가득 들어간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한 찹쌀떡 조각의 식감이 빙수와 잘 어울려 찰진 맛을 느낄 수 있어 입을 즐겁게 한다.

고운 입자 빙수이지만 입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부드러우며 팥이 빙수에 이중으로 들어있어 팥과 빙수가 따로 놀지 않으며 밤, 찹쌀 떡이 모두 군더더기 없는 맛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달지 않으면서 탱글탱글한 ‘통팥’의 식감이 뛰어나고 오히려 채 썬 밤이 더 단맛이 날 정도의 순수하고 고소한 맛과 더불어 빨리 녹지 않는 우유 얼음의 사각사각한 식감이 만족스럽다. 그 흔한 과일도 없는 진정한 팥빙수이다. 큰 가마솥에 정성스레 만들어지는 음식은 주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신뢰하며 먹을 수 있는 옛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곳이다.

수제 팥이 듬뿍 올려져 있는 팥빙수! 그저 보기에도 심플하고 단아한 모습의 화려하지 않은 빙수는 눈꽃송이처럼 부드럽고 희다. 인위적인 맛은 하나도 없으며 놋그릇에 담겨 있는 빙수는 왠지 품위마저 느껴진다. 얼음덩어리를 들고 뒷골목을 종종거리며 뛰어가던 소년을 생각하며 강남역 골목길로 발길을 옮겨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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