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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㊷ 옛 ‘갈매기살’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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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㊷ 옛 ‘갈매기살’을 찾아서
  • 손영한
  • 승인 2023.06.27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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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나의 첫 직장은 여의도에 있었다. 낯선 첫 직장 생활이지만 입사 동기들이 꽤 많아서 서로 의지하며 재미있게 생활하였다. 특이하게 ‘성씨”가 다 달랐던 (권, 조, 안, 김, 배, 유, 손...) 동기들은 퇴근 후 여기저기 다니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생각이 난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던지... 그중에 옛 KBS 별관 쪽에 ‘갈매기살’ 식당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원형 식탁에 여러 명이 둘러앉아 숯불 위에 통통하고 기다란 갈매기살을 얹어놓고 소주 한잔 기울이는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름도 생경스러운 ‘갈매기살’. 처음에는 바닷가에 날아다니는 새, 갈매기로 오해하여 저걸 왜 먹나? 하며 꺼려하였으나 여의도 식당을 알고부터는 부추, 양파가 들어있는 간장소스나 소금에 찍어 먹는 맛이 환상적이었으며 가격도 다른 고기보다는 저렴하여 자주 찾던 집으로 ‘찌지~직’ 굽는 소리에 입맛을 다시면서 피곤한 하루 일과를 동료들과 함께 마무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음식이 갈매기살이었다. 지금도 끈끈한 우정(?)을 갖고 있는 동료들이다.

성남 여수동은 오래 전부터 갈매기살로 유명한 곳으로 근처에 도축장이 있어서 신선한 고기를 제공받아 지역 풍물 음식으로 소문났으며 지금도 몇몇 식당이 그때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저녁때만 되면 숯불 냄새와 연기가 자욱할 정도로 성업을 이루었다. 전통 있는 여러 집들이 지금은 야탑동이나 수지 등에서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그 시절 숯불에 구워 먹는 통갈매기살의 쫄깃한 식감은 잊을 수가 없어서 여러 동네의 식당을 찾아다니곤 한다.

갈매기살은 돼지갈비뼈의 안쪽에 있는 기다란 형태의 횡격막 부위로 선홍빛의 색이 진하고 근육이 발달되어 있어 육즙이 풍부하며 씹을수록 향미가 우러나온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분명히 돼지고기인데도 쇠고기 같은 맛이 나는 점이 특이하다. 기름기 없고 부드러운면서 쫄깃한 맛을 내기 때문에 고급 육에 속한다. 또한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이 매우 적어 특수부위로서 인기가 높으며 통으로 굽는 소금구이가 제격이다. 식당에 따라 먹기 좋은 크기로 저며내어 달달한 간장 양념으로 내는 곳은 거의 수입산을 쓰는 경우가 많으며, 국내산은 주로 통으로 제공되며 수급률이 적은 관계로 취급하는 식당이 적은 것이 아쉽다.

종로3가역 근처에 갈매기살을 주메뉴로 하는 돼지고기 전문 노포 식당이 많이 모여 있다. 일명 갈매기살 골목이라 부르며 낮에도 손님들이 붐비는 곳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성지이다. 식당 내부뿐만 아니라 골목길, 길거리에도 포장마차처럼 원형 식탁과 쪽의자에 앉아 연신 구워내는 고기 냄새가 진동한다. 모든 집들이 대기 손님으로 붐비고 정신이 없다. 과거에는 친구들과 편하게 먹던 곳인데 이제는 서두르지 않으면 차례가 오지 않아 종종 헛걸음치곤 한다. 이곳은 옛 여수동 스타일과 같은 기다랗고 통통한 생갈매기살로 달큼하고 깊은 속맛이 느껴지며 잡내가 전혀 없는 품질 좋은 고기이다. 숯불 화력이 좋아 고기의 육즙이 살아있고 적당한 크기로 자를 때 손마디에 자르는 감각을 느낄 정도로 고기 육질이 아주 좋다.
 

갈매기살 골목
갈매기살 골목

 

여러 식당 중에 ‘종삼육’, ‘광주집’, ‘미갈매기살’ 집이 인기가 많다. 어떤 집은 인당 주문을 제안하기도 하여 음식에 대한 자세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 어느 식당이든 고기 맛은 거의 비슷하고 곁들이는 밑반찬도 같으나 유독 손님이 몰리는 가게가 있어 흥미롭다. 고기 골목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손님들로 웨이팅이 장난이 아니며 야장에서 먹는 손님들도 바글바글하다. ‘광주집’의 연탄 숯불에 굽는 갈매기살은 은근하게 익혀 먹는 기다림이 좋으며 지방이 없고 꼬들꼬들하고 살코기의 탱글탱글한 맛이 일품이다.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매우 정신이 없지만 노포 야장 고깃집들이 즐비하여 정취 있는 서울 시내의 매력적인 저녁을 위해 사람들은 여전히 종로3가를 찾는다.
 

'생포집'
'생포집'

 

서울 인근 인덕원에 갈매기살에 대한 자부심이 돋보이는 ‘생포집’이 있다. 인덕원 먹자골목에 있는 전문점으로 길쭉하고 색깔 좋은 생갈매기를 숯불에 구우면 노릇노릇하고 쫄깃한 고기를 소금이나 양념간장과 파무침을 함께 곁들이면 담백한 맛에 눈이 번쩍 뜨인다. 어찌나 신선한지 씹는 맛의 찰진 느낌이 입속에 오래 머무르게 한다. 정성스럽게 지방 부분을 제거하여 쇠고기 한 점을 먹는 듯 고소한 맛과 식감이 느껴진다. 특히 고사리나물을 숯불 판에 얹어 같이 구워 먹으니 구수한 맛이 배가 되면서 깔끔하다. 별미 중에 별미이다. 원형 식탁도 기름때가 없이 깨끗하고 식당이 깔끔하여 주인장 내외분의 정성이 가득한 감동이 식당 내에 퍼져있다. 삼겹생갈비도 잡내 없고 부드러우며 가격도 서울보다 착하다. 지역의 명소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자주 방문하게 되는 이유이다.

돼지갈비로 유명한 마포에 ‘장수갈매기’ 집이 있다. 50년 전통의 최대포집 건너편 공덕동 골목에 마늘 양념이 가득한 갈매기살을 내놓는다. 후추와 비법 양념으로 밑간을 하고 잘 숙성되어 있어서 간도 잘 맞고 육즙이 풍부하여 첫 한입부터 감칠맛이 뛰어나다. 자꾸 손이 간다.

둥그런 불판의 가장자리에 계란을 둘러서 고기와 함께 먹는 것이 특이하고 나중에 파채, 김치와 함께 올려 먹으면 별미이다. 계란은 리필해 준다. 양념 맛에 익숙한 손님들에게 인기 있으며 한 점 한 점 제단된 고기 모양이 보기 좋다. 계란 노른자에 쇠고기를 찍어 먹는 일본 음식이 연상된다. 빙 둘러져 있는 계란이 익어가면 노란색과 고기의 붉은색이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식당이다.

원통 식탁의 숯불과 잘 익어가는 갈매기살의 특별한 맛에 일상생활의 고단함이 풀리고, 매우 복잡하여 자리 잡기가 용이하지 않은 종로3가에서 동료, 친구들과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조우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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