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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㊵ ‘따로국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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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㊵ ‘따로국밥’ 이야기
  • 손영한
  • 승인 2023.05.31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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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허름한 식당에서 닮은 듯 두 청년이 국물을 후~후 불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덜거덕 거리는 선풍기는 별 효과가 없는 듯 땀을 흘려가며 말도 없이 열심히 먹는 모습이 참 푸근해 보인다. 식탁 위에 반찬이라고는 김치, 깍두기가 전부이고 여기에 국물이 있는 질그릇 뚝배기 국밥을 먹고 있다. 이들이 나와 두 살 위 작은형이다. 과거 이야기이지만 둘이 마주 앉아 맛있게 먹은 음식이 바로 ‘따로국밥’이며 우리끼리는 그냥 ‘따로’ 먹으러 가자고 했던 작은형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이곳은 집 근처 뒷골목에 있던 따로국밥 집으로 지금은 종로 5가 닭한마리 골목과 돼지곱창 거리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그때 따로국밥은 굵은 대파와 콩나물, 큼지막한 선지, 덩어리째 들어있는 쇠고기 몇 조각이었고 국물 맛과 고기 맛이 기가 막혔다. 요즈음 식당들도 식재료는 크게 변한 게 없는 듯하다. 주방에는 커다란 솥이 항상 부글부글 끓고 있었으며 뚝배기는 층층이 쌓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이다. 대파와 무의 맛은 은근하게 달큼하고, 선지의 깊고 진한 구수한 맛은 지금도 나의 머릿속을 맴돌 만큼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나의 따로국밥은 시작되었다. 이제 그 집은 오래전에 없어져 작은형과의 추억도 희미(?)해져 간다. 가끔은 냄비에 담아와 어머니와 가족이 같이 먹은 적도 있으며, 냄비 포장하면 조금 더 주는 그런 시절이었다.

시원한 육수와 함께 한 점 먹는 쇠고기는 입에서 살살 녹고, 큼직한 대파는 향과 단맛이 나의 코와 입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며 큼직한 선지는 신선하여 숟가락으로 잘라먹으니 구수한 맛과 포만감은 잊을 수가 없다. 특히 하루 종일 끓여 내는 쇠뼈 국물은 무와 함께 깊고 그윽한 맛의 육수를 만들어내어 다른 재료들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었으며 입안에서 느끼는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풍미는 뚝배기 바닥을 보고서야 숟가락을 내려 놓음으로써 끝이 난다. 큰 솥에서 아주머니가 짐작으로 퍼주는 관계로 어떤 때는 고기 한 점, 아니면 2~3점씩 들어 있을 때도 있어 형하고는 뚝배기를 받자마자 쇠고기가 몇 점 들어있는지 확인하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그립다.

우리나라 식사의 기본은 밥과 국(탕)이며, 이것을 섞으면 국밥이 된다. 보통의 국밥은 밥과 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데 반해 국과 밥이 따로 나와서 ’따로국밥‘이라고 불렸으며, 소뼈와 소 무릎뼈를 반나절 이상 고아 육수를 만들고 여기에 쇠고기와 선지를 넣어 1~2시간 더 끓여 낸다. 특히 무와 대파를 잔뜩 썰어 넣어서 오래 끓이면 육수가 충분히 배어들어가 깊은 진국의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른 국밥과 차별성이다. 대구지방의 향토음식 중 하나이며 원조 격인 ’대구 따로국밥‘은 칼칼한 매운맛 속에 감칠맛이 있는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옛날 양반들이 국과 밥을 말아먹는 것을 천하게 여겨 따로 먹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예부터 따뜻하게 먹기 위해 토렴 하는 요리법이 사대부에서도 있었으니 따로 먹는 것이 양반만의 것은 아닌 듯싶다. 비유적 표현으로 특정 무리 가운데 따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을 우스갯소리로 따로국밥(?)이라고 하기도 하며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음식으로 빗댄 재미있는 표현이다.

 

'강남 따로국밥'
'강남 따로국밥'

 

강남 신사역 근처에 옛 추억의 따로국밥 맛을 연상케 하는 ‘강남 따로국밥’ 집이 있다. 이 집의 국밥은 맑은 육수 국물이 특징이다. 쇠뼈를 오랫동안 삶은 덕분에 잡내와 느끼함이 없는 깔끔하고 시원한 육수 맛이 옛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주문할 때 ‘기름 빼고’를 덧붙여 주문하면 입 주위에 묻는 기름 없이 상쾌하게 먹을 수 있어 좋다. 선지도 빼고 주문할 수 있다. 콩나물은 적당히 통통하고 잘 삶아 부드럽고 아삭하며 대파는 시원하고 달큼한 맛을 보탠다. 선지도 매우 신선하며 크기도 먹기 좋게 예쁘고 앙증맞아 여느 해장국의 크고 듬성듬성한 모양과는 다르며 색깔도 겉은 맑은 자주색이고 속은 암갈색으로 한입 먹으면 탁! 터지는 듯한 식감과 구수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고 잡냄새도 없어 만족스럽다. 전에는 선지가 서비스로 제공되었으나 이제는 추가요금을 받아 조금은 섭섭(?)하다.

국밥에 들어 있는 순 살코기의 커다란 쇠고기는 붉은색 선지와 비슷한 깔 맞춤을 하고 있어 눈으로 보는 맛도 좋아 화룡점정이 아닐 수 없다. 딱 한 점(?)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작은형과 국밥 속을 헤집던 옛 모습이 떠올라 씩~ 미소를 짓곤 한다. 육수가 깊게 밴 무도 입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고 반찬은 김치 한 가지이나 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좋아 별도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역시 국밥에는 주인장 손맛의 김치가 좌우한다.

여의도에서 직장 생활할 때 자주 가던 선지 없는 ‘여의도 따로국밥’ 집이 있다. 커다란 장조림 고기와 콩나물이 많이 들어가 있고 국물에 약간 기름이 떠있어서 진하게 보이나 보기보다는 시원 담백하며 커다란 무가 많아 경상도 쇠고기 뭇국과 비슷한 비주얼로 속이 편안해지는, 해장하기 딱 좋은 국밥이다. 큰 덩어리의 쇠고기는 결 따라 찢어져서 콩나물과 함께 먹는 것이 이 식당만의 맛 비결이며 무에서 우러나오는 시원한 맛과 야들야들한 쇠고기의 조화가 돋보인다. 물론 간장 소스에 찍어서... 벌써 40년이 되는 곳으로 국밥과 수육의 단출한 메뉴로, 내부 분위기가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식당이다. 밑반찬으로 김(?)을 주는 것이 재미있다.

나에게 따로국밥은 작은형과의 추억이 많은 음식으로 먹을 때마다 여지없이 생각나는 ‘따로형 (?)’은 청주대학교 명예교수로 지금은 호찌민시에 있는 베트남 대학에서 후학과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옛 따로국밥집이 떠올라 혼자 추억에 젖어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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