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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㊴ ‘감자탕’ -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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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㊴ ‘감자탕’ -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
  • 손영한
  • 승인 2023.05.15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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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먹어도 맛있고 편한 음식이다. 돼지 등·목뼈를 뚝배기에 끓여 먹는 것으로 뼈에 붙어있는 잔고기와 진하게 우러나온 국물이 밥하고 잘 어울리는 든든한 음식이다. 이전에 감자탕은 ‘감자국’이라 불리었다. 70년대 정부종합청사 뒤 내자시장이나 광장시장, 동대문시장에서 커다란 대야에 뼛국물을 끓이면서 위에 포슬포슬하게 삶은 감자를 한 개씩 얹어 국을 말아주던 것이 원래의 감자국이다.

감자탕의 어원은 돼지의 감자뼈(?)를 사용한다 하여 감자탕이라는 이야기와 감자를 넣어서 감자탕이라는 말이 분분하나 감자뼈라는 어원은 아닌 듯싶다.(감자뼈라는 명칭은 없음) 결국 살이 별로 없는 목뼈로 국물을 내고 감자를 넣어서 만든 것이 감자탕으로 불리었으며, 이제는 국내산 감자 값이 오르면서 감자의 양을 줄이고 살이 많이 붙어있는 수입 돼지 목뼈를 사용하는 식당이 많아졌다. 고기가 뚝배기 위로 넘칠 만큼 많이 주는 곳은 대부분 수입 돼지 목뼈를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뼈에 붙어있는 잔고기는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등뼈에 붙어있는 살은 부드럽고 뼛속의 양념이 밴 골수를 쪽쪽 빨아먹는 맛이 일품이며, 목뼈 부위는 육질이 좋아 쫄깃한 식감과 고소하고 달큼한 맛을 느낄 수 있어서 감자탕 뼈다귀로는 제일로 친다. 오랜 시간 끓여야 고기가 잘 뜯어지고 야들야들 해지며 국물이 잘 배어 있어 맛이 좋아진다. 한번 뜯기 시작하면 손과 입으로 계속 발라가며 코 박고 먹는 모습이 무아지경(?)으로 보여지며, 함께 곁들이는 감자와 시래기는 평범한 감자탕을 푸짐하고 조화롭게 돋보이게 하는 요정들이다. 특히 시래기는 뼈다귀의 텁텁한 식감을 구수한 맛으로 변화시키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감자를 넣지 않고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것을 뼈해장국이라 하여 내놓는 식당도 많다. 뼈해장국은 뼈다귀, 우거지가 전부인 반면 감자탕은 뼈다귀, 감자, 우거지, 깻잎 등이 기본이며 여기에 라면·떡사리, 당면, 수제비 등의 다양한 부재료를 넣어 맛을 더한다. 뼈해장국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국밥이고 감자탕은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어야 제맛이 나는 느낌이 든다. 뼈 잔고기와 잘 어울리는 건더기가 넉넉하게 들어간 푸짐하고 가성비 좋은 뼈 국물 요리이다.

시래기나 우거지는 김장을 담그면서 우수리로 얻어지는 것을 말려 쓴 까닭에 색깔도 그렇고 하찮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달라졌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웰빙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철분이 많아 빈혈에 좋고, 칼슘과 섬유질이 많아 콜레스테롤을 낮추며 동맥경화를 예방하며 무엇보다 다이어트에 좋다. 이런 시래기가 추운 양구 펀치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말린 시래기는 푸른 색깔도 잘 유지되어 명품(?) 시래기로 유명하다. 특히 감자탕에 양념이 잘 배어진 시래기는 돼지뼈의 느끼한 맛을 없애주고 구수한 맛을 더해주는 최고의 파트너이며 맛 궁합이 잘 맞는 재료이다.

‘주은 감자탕’
‘주은 감자탕’

 

이런 시래기를 듬뿍 넣어 맛을 더하는 식당이 송파 삼전동에 ‘주은 감자탕’이 있다. 말이 필요 없는 ‘감자탕’으로 국내산 돼지뼈를 사용하여 깔끔한 사골 육수와 들깨가루, 다진 양념으로 맛을 내는 진한 국물이 으뜸이다. 특히 양구에서 생산되는 시래기로 맛을 내는데, 시래기가 주인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시래기의 참 맛이 돋보이는 식당이다. 한참 끓여서 잡내를 잡아내고 푹 우려낸 국물도 기가 막히게 맛있으며 고소한 들깨가루도 한 몫 하여 구수한 진국의 맛을 만들어낸다. 밑반찬의 깍두기도 아삭아삭하고 새콤한 국물이 감자탕과 잘 어울린다.

양념이 잘 배어진 시래기는 국물만큼이나 깔끔하고 구수하여 동료들과 눈치 보며 먹을 수밖에 없다. 시래기 추가가 안 되어 섭섭(?)한 적이 있다. 이러한 깔끔한 맛도 사리나 수제비를 넣으면 국물이 탁해지므로 우선 공깃밥의 윤기 흐르는 흰밥을 국물에 말아 먹으면 또 다른 환상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고깃살도 잘 분리되어 쫄깃하며 달달한 감자가 맛을 보탠다. 큰 고기는 뜯어 먹고 잔고기는 잘 분리하여 국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퍼먹는 맛이 또 다른 느낌이다. 국물이 처음에는 슴슴하나 시간이 갈수록 간이 적당해지며 나중에 먹는 볶음밥도 맛있다. 이 집의 시래기는 명품이지만 지금은 우거지를 함께 쓰고 있다.

다른 맛의 감자탕 집이 을지로에 있는 ‘동원집’이다. 이 일대의 가게를 돌며 부품을 모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을지로 3가 공구 상가 뒤편의 촘촘한 골목길에 있었으나 재개발로 충무로 쪽으로 옮긴 식당이다. 메뉴에는 감자국으로 쓰여 있으며 다른 집과 달리 우거지가 들어가지 않은 감자탕이다. 보기에는 벌건 국물이 눈에 들어오나 잡티 하나 없는 쨍하고 맑은 느낌이며 뒷맛으로 군더더기 없는 진하고 매운 국물 맛이 명쾌하다. 감자도 한입 베어 물면 부슬부슬한 식감과 혀끝에 느껴지는 단 맛에 감탄스러운 맛의 소리가 저절로 난다. 두툼한 등뼈의 푸짐한 양에 체면 불구하고 살점을 찾아 등뼈를 구부리고 쪼개는 수고가 즐거운 집이다. 위치를 옮겼지만 예전에는 빨간 국물이 끓고 있는 큰 솥이 있었던 오래된 노포 식당이다.

 

'통인감자탕'
'통인감자탕'

 

광화문 서촌 통인동에 있는 ‘통인 감자탕’ 집도 감자탕 단일 메뉴의 전문점으로 1인분 감자탕이 있어 좋다. 손님이 정신없이 몰려드는 통인시장을 비껴난 조용한 골목길 안쪽에 있으며 자리에 앉아 각자 한 그릇씩 감자탕을 시켜 먹는 아늑한 식당이다. 혼자 있어도 전혀 낯설지 않은 곳이다. 순한 매콤한 맛의 국물과 적당히 살이 붙어있는 등뼈와 우거지, 뚝배기 밑에 깔려있는 감자를 조금씩 부셔가면서 하얀 밥과 함께 먹으니 움츠려진 마음이 아늑해지면서 푸근한 기분이 든다. 주위 손님들도 나직하게 말을 하고, 비 오는 오후에 옷의 빗방울을 털고 앉아서 천천히 감자탕을 비워가는 분위기가 갑인 식당이다. 곁들이는 음식으로 해물파전과 계란말이가 특별하다.

뼈째로 요리되어 뼈 사이사이에 붙어있는 잔고기를 쏙쏙 빼어먹는 재미와 감자 한 토막의 아련한 추억이 깃든 감자탕! 왠지 우리 집 이층 장독대와 처마 밑에 걸려있던 초록색 무청시래기 말리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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