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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㊳ ‘호래기’ - 앙증맞은 꼴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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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㊳ ‘호래기’ - 앙증맞은 꼴뚜기
  • 손영한
  • 승인 2023.04.24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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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래기, 한치, 오징어 등은 모두 비슷한 종류의 수산물이다. 이 중 호래기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호래기는 ‘꼴뚜기’의 경상도(남해안) 방언으로 오징어의 사촌(?)쯤 되며 다 자란 것이 어린이 손바닥 크기로 약 1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해산물이며, 전라도에서는 ‘고록’이라고 부른다. 다리는 작고 뭉쳐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으나 오징어와 같은 10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낚시 어종으로 인기가 높다. 쌀쌀한 계절에는 횟감으로 먹고 여름 꼴뚜기는 보통 젓갈로 많이 담근다.

호래기는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서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을 주며 콜레스테롤 감소와 혈압 상승을 막아주고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뇌졸중 등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탄수화물이 낮고 단백질이 풍부하여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좋다고 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이 있다. 꼴뚜기가 얼마나 볼품없는 해산물로 인식되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말이나 이제는 옛말이다. 양식이 안 되는 별미 해산물로 통영, 거제 등 남해안 방파제에서 아는 사람만 즐긴다는 겨울 낚시 중 가장 재미있고 맛있다는 것이 바로 호래기 낚시다. 꼴뚜기라는 이름보다는 호래기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는 말처럼 별 볼일 없는 꼴뚜기도 낚은 즉석에서 회로 먹으면 대 반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손질도 간단해서 미식가들은 그냥 통째로 입안에 털어 넣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깊어지고, 오징어의 단맛까지도 느낄 수 있는 감칠맛이 대단하다. 여기에 찰지고 꼬들꼬들한 식감은 생동감을 느끼게 하고, 한 입에 맞는 앙증스러운 크기에 고소하고 쫄깃한 맛은 별미로서 손색이 없다. 그 맛이 얼마나 매력이 있으면, 겨울철에 낚시꾼들이 방파제에서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낚시를 하겠는가?

과거에는 경남 해안가 횟집들이 서비스로 주던 기본 안주가 요즈음은 숨겨진 맛이 알려지면서 메뉴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맛있다. 또한 고춧가루, 식초, 야채와 함께 조물조물 무쳐서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먹물 맛을 아는 사람은 배를 따지 않고 통째로 넣어 라면과 함께 끓여먹으면 와~~~. 꼴뚜기 젓갈도 창난젓만큼이나 인기가 있다.

내가 호래기를 처음 만난 것은 ‘거제’의 한 횟집 수족관에 살아있는 것을 본 때인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보통 식당들은 수족관에 광어, 우럭, 도미 등 활어를 싱싱하게 저장하여 손님을 맞이하는데, 꼴뚜기가 살아 헤엄치고 있는 모습은 처음 본 것이었다. 호래기란 명칭도 그때 처음 들었다. 어찌 그 궁금한 맛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양푼 그릇에 담아 온 살아있는 호래기를 주인장이 그냥 먹어도 맛있다 하여 함께 간 직장동료가 호기(?)롭게 손으로 호래기를 잡는 순간 탁~ 쏘이고 말았다. 따끔하게 아프면서 점점 부어올라 고통스러워했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꼴뚜기도 방어수단(?)이 있었으며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그때 호래기와의 인상적인 첫 대면과 맛 추억이 아스라이 들어온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단맛이 배어있는 쫄깃한 식감은 한치, 오징어보다 좋은 것 같고 한 마리가 한입에 쏙 들어오니 더욱 고소하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잘 다듬어진 호래기는 간장만 조금 묻혀도 생물의 맛에 눈이 저절로 감긴다. 담백하고 달큼한 맛이 모여 오징어에는 없는 깜찍한(?) 맛이 담겨있고 뽀얀 우윳빛 색깔도 좋아 보인다. 야채, 밥과 함께 호래기 회 무침으로 먹으니 따뜻한 밥 온도에 어울리는 호래기 덮밥이 되었으며 주인장 솜씨의 호래기 초밥도 내주어 온통 호래기 잔치가 되었다. 이렇듯 거제에서의 저녁이 익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꼴뚜기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충무로 인현시장에 ’진미네‘가 있다. 서울에서는 호래기 취급하는 식당이 거의 없어서 활호래기는 아니지만 신선도가 좋아 현지 맛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식당이다. 첫 한 점은 역시 양념 없이 그냥 한입 꾹... 쫄깃하고 고소한 식감 위에 바다내음이 물씬 느껴지는 입안의 호사스러움이 나를 즐겁게 한다. 호래기에 쏘여 손이 부어오른 직장 동료 생각으로 거제의 추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작은 접시에 듬뿍 담겨있는 꼴뚜기는 깻잎과 초장, 마늘에 싸서 먹으니 알싸한 맛과 고소한 맛이 어울려 상쾌하고 개운한 느낌을 주어 좋다. 활꼴뚜기와 마찬가지로 선어 꼴뚜기도 간장을 곁들이는 것이 나는 좋다. 여러 메뉴가 많으나 호래기를 주문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나 혼자 먹고 있을 때가 많다. 나만 아는 특별한 음식인 것 같아 씩 웃는다. 메뉴판에는 꼴뚜기로 쓰여 있으며 식탁에 앉자마자 순대, 간 몇 점을 기본 안주로 주는 것이 정겨운 재래시장을 느끼게 한다. 특히 따뜻한 간이 고소한 게 참 맛있다. 식기 전에 먹어야 제맛이다. 남은 꼴뚜기는 라면에 넣어 먹으면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식당에서 주문해 본 적은 없으나 할머니에게 부탁하면 될 듯한 분위기이다. 이 집의 병어조림은 은색 윤기가 짜르르 흐르는 도톰한 살집이 씹을수록 단맛이 나고 칼칼한 양념이 스며든 감자는 포슬포슬한 식감을 주어 미식가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도 나는 꼴뚜기를 주문한다. 인현시장은 충무로에서 을지로 3가까지 연결되는 인쇄소 지역 좁은 길목 양편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나는 노포 지역이다.

‘장마다 꼴뚜기 날까’라는 옛말에 흔해빠진 꼴뚜기도 정작 먹고 싶어 찾는 장날에는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니 매사 흔한 것이 귀해지기도 하고, 손해 볼 때도 있는 것이지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말일 것이다. 한 입 거리 앙증맞은 크기의 흔한 꼴뚜기도 속담처럼 가끔은 귀한 대접을 받는, 입맛 돌게 하는 별미 음식이 되었다.

글 손영한(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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