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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㉛ - ‘생고기’-쫀득하고 찰진 풍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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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㉛ - ‘생고기’-쫀득하고 찰진 풍미
  • 손영한
  • 승인 2023.01.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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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을 좋아하는 내가 육회를 즐겨먹던 어느 즈음부터 양념하지 않은 생고기가 서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지나 도축장 근처에서 맛볼 수 있는 생고기를 냉장·숙성 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는 서울에서도 즐길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생고기에 대한 명칭도 호남지역에서는 육사시미, 경북지역은 뭉티기 등의 이름으로 한정된 지역에서만 취급되어 지방 여행 시 가끔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나는 주로 익산, 광주, 안동에서 먹을 기회가 있었으며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어 쉽게 권하기 어려운 음식 중의 하나이다. 서울에서는 양념하지 않은 육회를 생고기라 하였으며 얼리지 않은 고기로 혼돈할 수 있어 식당에서 종종 해프닝이 생기기도 하였다.

생고기 요리는 간단하다. 신선한 고기를 적당히 썰어서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도축장과 연계되어 있는 식당에서만 가능하며 물량도 한정적이라 취급하는 식당이 많지 않다. 생고기는 뭉텅뭉텅 썰어서 먹어야 제맛이며 꼬들꼬들하고 찰진 식감에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허벅지의 우둔살로 요리되며 당일 도축한 소고기만 가능하고 약간 짙은 진홍색이나 맑고 투명한 붉은색을 띠며, 좋은 생고기는 육향을 머금고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의 풍미가 느껴진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푹 빠져 버린다. 약간의 마블링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으나 담백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우둔살을 나는 좋아한다. 요리를 좌우하는 것은 솜씨보다는 재료가 80%를 차지하는 데 생고기는 절대적으로 재료의 선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이다.

썰어내는 방식도 뭉티기는 뭉텅뭉텅 불규칙하고 큼직하게 썰어낸다고 하여 뭉티기이고 대구 일부 식당은 큐브 모양의 깍두기처럼 썰어내기도 하며, 남도 지역의 육사시미는 생선회 뜨듯 포 모양으로 손질하여 식감을 풍만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의 생고기 맛은 남도 지역의 육사시미에서 비롯되었으며 쫄깃함과 육향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맛에 취한 경험이 있어 지금까지도 생고기를 즐겨 찾는다. 곁들이는 양념은 식당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참기름장, 마늘을 넣은 양념 고추장 등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나는 굵은(토판) 소금에 찍어 먹으면 소고기 본연의 맛을 살려주고 역설적으로 소금의 달달한 맛까지 느낄 수 있어 소금을 선호한다.

집사람 지인이 살고 있는 담양에 장인을 모시고 처가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지인이 안내하여 담양의 명소인 대나무 테마의 죽녹원, 전통정원의 소쇄원, 힐링 코스인 메타세쿼이아 길 등을 여행하였다. 이중 메타세쿼이아 길은 옛 국도 변에 높이 20m가 넘는 무성한 나무가 양옆으로 끝없이 이어져 사계절 매력적인 거리이며, 여름철의 초록빛은 바라보는 눈이 시원해지고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 좋은 명소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지인이 안내한 ‘대나무골’ 식당은 각종 특수부위 한우 전문점으로 이 집의 생고기는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도마 위에 덩어리째 가져와 즉석에서 채 썰 듯 손질하여 접시 한가득 먹음직스럽게 내온 생고기는 잘 숙성되어 쫄깃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이 집의 묵은 김치와 함께 맛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어찌나 맛있는지 주문 포장하여 지인의 고풍스러운 큰 한옥집에서 또 한잔하며 특별한 여름밤을 지낸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장인과의 즐거운 여행이 마지막 추억이 되었다. 어찌나 맛있게 드시던지...

오랫동안 한결같은 생고기 맛을 내는 식당으로 도곡동에 ‘한국관’이 있다. 이 집의 생고기는 색깔부터가 짙은 선홍색을 띠고 윤기가 있으며 무척 강한 어떤 기(?)를 느낄 수 있어 먹고 나면 왠지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은 의지(?)를 갖게 하는 식당이다. 나만 느끼는 감정일 수 있으나 음식에도 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방장이 직접 도마 위에 우둔살을 가지고 와 즉석에서 손질하는데, 고기 썰 때의 싹~싹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정숙하게 대하며 채나 떡 썰 듯하여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조화를 이루어 재미있고 미술적이어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어찌나 찰진지 찹쌀떡을 먹는 것처럼 입에 쩍쩍 붙는 느낌이 있고, 고소하고 육 향도 있어 아껴먹느라 애꿎은 소주만 즐비하다. 나는 생고기의 식감과 향을 그대로 느끼고 그 감촉과 기분을 오래 갖고 싶어 생고기만으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소고기 구이도 고기 질이 좋으며 대나무 불판을 사용하여 보는 즐거움이 더없이 좋다. 좋은 고기만큼이나 가격이 좀 있어 조금은 아쉽다.

 

 

논현동 영동시장 안에 ‘안동뭉티기’ 식당이 있다. 상호에서 느끼듯 생고기가 전문이고 간, 천엽, 등골 등도 취급하여 손님들이 항상 많다. 신선한 소고기를 안동에서 그날 도축하여 저녁 5시쯤 도착하는 뭉티기는 어찌나 찰지고 신선한지 담은 접시를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접시에 붙어있다. 손질도 뭉티기답게 썰어 놓고 이 집만의 특별 소스인 대구장(?)에 찍어 먹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파채와 미나리를 넣고 간장 양념으로 요리하는 경상도식 육회 맛도 하얀 밥과 함께하니 향긋하다. 뭉티기와 육회 두 가지를 다 먹어야 식성이 풀리는 식당으로 최근 누나들 가족과 함께하여 더없이 만족스러운 식당이다.

 

 

청담동에 육사시미를 잘하는 ‘우천 식육식당’이 있다. 질 좋은 소고기와 분위기가 좋아 젊은 손님이 많고 투뿔 한우가 가격 대비 가성비가 좋은 식당이다. 특히 생고기는 남도식 육사시미로 포 뜨듯 도톰하게 손질하여 씹히는 맛이 풍성하고 입안에 꽉 차는 느낌이 들어 만족감을 더하며 투뿔 고기답게 부드럽고 고소하여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색깔도 투명한 적갈색을 띠고 있어 눈으로 보아도 입가에 군침이 돈다. 구이 종류의 고기도 육향과 육즙이 적당히 스며있어 숯불과 함께 고기 애호가들의 각광을 받고 있으며, 특히 안심구이는 기름기 하나 없는 부드러운 그 자체여서 큰 칭찬을 하고 싶을 정도이다. 자주 가고 싶은 아담한 식당이다.

수서역 근처에 새로 생긴 ‘우공뭉티기’가 있다. 당일 도축된 허벅살(함박살)을 사용한 뭉티기가 메인 메뉴이며 서비스로 선지 해장국을 같이 내어 차가운 성질의 생고기를 먹다가 뜨거운 국물과 선지를 먹으니 속이 편안하다. 양념장은 참기름에 고추장·마늘을 듬뿍 넣어 고소하고, 덜 다진 마늘은 알싸하게 씹히는 식감과 감칠맛을 더해준다. 특유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으며 적당한 두께로 썰어서 쫀득하고 찰진 풍미가 좋다.

기름기가 전혀 없는 우둔 부위를 도톰하게 썰어 날로 내는, 인절미처럼 찰진 뭉티기·육사시미는 서울 음식은 아니지만 서울에서도 좋은 맛을 내는 생고기 전문점이 많이 생겨 미식가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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