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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㉘ 김장과 보쌈 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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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㉘ 김장과 보쌈 수육
  • 손영한
  • 승인 2022.1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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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 돌아왔다. 우리나라 김장은 오래전부터 겨울철 김치를 먹기 위해 저장해 놓은 대표적인 발효 음식이며 장시간 보관하여 먹는 김치이다. 우리 집도 이때쯤 어머니의 김장 걱정 소리가 들리곤 하였다. 그때는 대가족으로 배추도 수백 포기씩 하던 시절로 염두가 안 나는 아주 큰 행사였다. 2~3일 동안 온 집안이 배추와 무가 굴러다니고 쌓여있어 사람이 겨우 비껴가는 그런 형국이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60년대는 서울 시내 여기저기에 임시 특별 김장시장이 열렸으며 우리 집은 청계천 5가에 형성된 시장에서 구입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도로변에 배추·무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장사를 하였으며 밤에는 큰 천으로 덮어 보관하여 추운 날씨에 얼지 않도록 하였다. 상인들이 모닥불을 피워 놓고 경비를 서는 것도 이때쯤이면 항상 있는 일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산처럼 쌓여 있는 배추 더미 사이사이로 뛰어다니며 도시 아이들만의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 친구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배추 실은 리어카가 집 앞에 도착하면 식구들이 2~3개씩 날랐으며 빨리한다고 던지다가 깨져 꾸중을 들으며, 그 추운 날 변변한 장갑 없이 맨손으로 날라 쌓은 기억이 있다. 내가 들은 배추는 유독 큰 배추로 느껴졌으며 아마도 어려서 크게 보였던 것 같다. 배추는 좀 나은 편인데 무는 크고 무거워서 운반하기가 버거웠으며 담아 넣은 양동이마저 무거워 힘이 든 기억이 있다. 집안에 쌓아 놓으면 이제 모든 것은 어머니 혼자 하시는 일만 남았다. 친척, 누나들이 도움을 주었지만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이제는 배추를 다듬고 반으로 쪼개어 소금물에 넣어 절임이 시작된다. 내 기억에 큰 배추는 네 토막으로 나누는 것도 있었다. 어찌나 많은지 큰 대야와 통에 겹겹이 쌓아놓고 소금물을 계속 끼얹기도 하였다. 새벽에는 위, 아래를 바꾸어 놓아 골고루 절여지도록 어머니는 밤새도록 이 일을 반복하셨다. 어마어마한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수시로 소금물도 뿌리고... 어떻게 절이느냐가 김장김치 맛을 좌우하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배추, 적당한 절임, 그리고 김장속의 세 가지 조합이 그 집 김치 맛의 자존심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다음은 큰 무를 잘게 채 썰어 김장속을 만든다. 이때는 어린 나도 채판에 무를 갈아서 채를 만들었으며 그 채판이 참 신기하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칼을 이용하여 무채를 만들었으며 칼로 썰어야 무르지 않고 맛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또 다른 무는 통째로 손질하여 큰 항아리에 넣어 동치미와 짠지를 담그셨다. 이 모든 것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나도 내가 참 이상(?)하다. 여기에 갖은 재료를 넣어 버무려 김치 속을 만든다. 우리 집의 김치 속은 생새우, 황석어젓을 넣고 고춧가루와 함께 버무린다. 다른 집들은 명태, 조기, 낙지 등을 넣기도 하지만 서울·경기도 방식 인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이렇게 김장 김치가 완성되었다.

이때쯤 나는 슬그머니 어머니 옆에 앉으면, 노란 속 배추를 뜯어 김장속과 굴을 넣어 돌돌 말아 내 입에 쏙~ 넣어주신 쌈은, 약간 매콤하면서 상큼한 맛 기억이 남아있고 입이 얼얼해도 계속 먹었던 생각이 난다. 너무 행복했으며 그 풍경이 눈앞에 선하다. 내가 김장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머니가 배추 한 줄기를 뜯어 김장속을 넣어 쌈을 만들어 먹던 모습을 글로 쓰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알싸한 맛에 군침이 돌며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눈이 촉촉해진다.

부엌 한편에는 큰 냄비가 펄펄 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돼지고기 수육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육은 덩어리째 삶아 도마 위에 놓여 있으니, 절인 배추와 상큼한 김장속 그리고 고소한 수육이 한 쌍을 이루어 입에 넣으니 눈이 저절로 감기고 입이 터질 듯한 만족감은 힘든 피로를 확 풀어주는 뒤풀이(?)가 되었다. 김장하는 날의 백미이다. 여기에 인천에 사셨던 이모가 보내 주신 굴은 향기가 좋고 크기가 작은 서해안 최상의 굴로서 맛을 더했으며 이런 작은 굴은 식초 넣은 간장과 함께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제맛이 난다. 크기가 큰 통영굴과는 전혀 다른 향과 뒷맛을 갖고 있어 나는 서해안 잔굴을 지금도 즐겨 먹는다. 그러나 굴 껍데기가 모두 붙어 있어 손질이 까다롭고 먹을 때 조심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김장김치는 그 노력과 정성에 힘입어 2층 장독대에서 이듬해 4월까지도 싱싱하게 맛을 보존하여 우리 집 식탁을 뽐내었다. 김장 때 배추쌈은 수육, 굴과 함께 이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호사스러움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맛의 보쌈과 수육을 찾아 맛집을 전전하곤 한다.

 

'장수보쌈'
'장수보쌈'

 

보쌈김치가 맛있는 식당이 을지로 5가 방산동에 ‘장수보쌈’이 있다. 광장시장 근처 복잡한 도로변에 있는 노포 식당이다. 보쌈김치가 색깔부터 무척 강렬한 색을 띠고 있어 벌써 비주얼로 압도당한다. 고운 고춧가루를 사용한 양념으로 약간 걸쭉하고 고추장 분위기가 있으며 입에 착 달라붙는 맛과 식감이 좋은 김치이다. 단맛이 있으나 설탕을 넣지 않은 비법이 있는 것 같으며 일반 보쌈보다는 독특해 보인다. 여기에 뽀송뽀송한 수육을 한 점 싸서 먹으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사실 이곳의 맛은 고기보다는 김치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되나 그렇다고 수육이 뒷전은 아니다. 수육은 넓적하게 결 따라 썰어내어 시골 수육 분위기로 정답고, 살코기와 비계가 오묘하게 잘 섞여있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부드러운 식감을 앞지른다.

 

'영광보쌈'
'영광보쌈'

 

수육이 맛있는 곳이 만리동 고개 넘어 공덕역 근처에 ‘영광 보쌈’이 있다. 메뉴는 딱 하나 보쌈뿐이다. 수육의 비주얼은 자유스러운 모양(?)으로 다른 집처럼 네모반듯하고 비계와 고기의 비율이 골고루 있는 것이 아니고, 주인장 칼 가는대로 편처럼 썰어낸 모습이 집에서 먹는 수육 같아 정겹다. 그래서 먹을 때마다 다른 식감을 느끼게 한다. 전지살을 사용하여 살코기가 퍽퍽할 만도 한데 상당히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며 같이 싸서 먹는 보쌈도 신선하고 간도 적당히 유지하고 있으며 아삭아삭한 식감이 기가 막힌다. 감칠맛이 나는 김치속도 덩달아 입맛에 딱 맞는다.

회기동에 ‘회기왕족발보쌈’ 식당도 돌돌 말려있는 김치 안에 갖가지 소가 들어 있어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보쌈 위에 뿌려진 빨간 양념장은 또 다른 비주얼이 있고 보쌈만 따로 팔 정도로 자존심이 있는 보쌈김치이다. 삼겹 수육도 잘 삶아져서 안에는 약간 분홍빛, 겉은 갈색으로 비계층과 잘 조화된 두툼한 수육이다.

오장동에 있는 ‘고향집’은 도심 안에 마당이 있는 가정집으로 딱 봐도 연식이 상당해 보이는 식당이다. 삼겹살 수육을 콩가루에 묻혀서 먹거나 무생채와 하얀 새우젓을 노란 알배추에 싸서 먹으면 고소함과 아삭한 식감이 재미있다. 어르신이 반죽하여 면을 만들고 애호박을 고명으로 하는 칼국수도 맛이 좋으며 메뉴는 보쌈과 칼국수뿐이다.

멋들어진 수육을 잘하는 곳이 서대문역 근처에 ‘안춘선’이 있었다. 탱탱하고 부드러워 입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수육과 정갈하게 썰어 나오는 무김치가 압권이었던 식당이다. 얼마 전에 문을 닫아 속상하다.

김장철이 다가오니 옛 시절의 김장 추억이 새록새록 느껴지며 잘 삶은 돼지고기 수육이 생각나는 계절이 왔다. 다가오는 12월 하순에 하는 우리 집 김장 때, 고소한 수육 한 점에 새우젓 두 마리 그리고 잘 만든 보쌈김치와 함께 그리운 사람 생각하며 둘러앉아 회상에 젖어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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