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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㉔ ‘육회’ - 사르르 녹는 황홀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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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㉔ ‘육회’ - 사르르 녹는 황홀한 맛
  • 손영한
  • 승인 2022.10.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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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㉔ ‘육회’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㉔ ‘육회’

소고기는 참 맛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음식이며 요리 방식도 발달되어 구이, 찜, 수육 등 요리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육류 중에서는 가장 비싸다. 그중 나의 입맛에 불을 당긴 요리가 육회이며, 소 부위 중 지방이 없는 부위를 세로 방향으로 가늘게 손질하여 간장과 참기름으로 양념하는 요리이다. 육회는 요리방법이 딱히 정해진 것은 없으나 대체적으로 서울에서는 간장 양념으로, 경상도식은 파, 미나리와 간장 양념으로, 남도식은 고추장 양념으로 밑간을 하였으며 전주지방에서는 이것을 비빔밥용으로 사용하여 전주 육회 비빔밥이 유명하다. 공통적으로 신선한 배를 채로 썰어 같이 곁들이는 것은 똑같다.

과거 어느 날, 어린 나의 콧속으로 고소한 참기름 향이 날아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육회를 만들고 계셨다. 맛있는 조선간장에 참기름과 깨소금만으로 조물조물 만드시는 육회는 감미롭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황홀한 맛으로 기억된다. 냉장시설이 부족했던 시절에 광장시장 정육점에서 소고기 중 싱싱한 육회 감을 사서 만드신 것으로 그때그때 요리하여 바로 먹은 기억이 난다. 육회를 무치고 계실 때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양념한 손으로 조금 떼어 주신 어머니 모습이 생생하다. 어리지만 그 맛이 너무 좋아 오랫동안 씹으려 했으나 어찌나 고소하고 연한지 금세 목으로 넘어가 버린다. 잔치가 있는 날에는 배와 고소한 잣을 곁들인 것으로 기억된다. 계란 노른자는 신선한 고기에는 잘 어울리지 않고 식감도 텁텁해져 달걀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하얀 배에 달걀노른자가 묻어있는 모습을 나는 그냥 싫어한다. 하지만 지금은 흔히 달걀노른자를 사용하는 식당이 많으며 노른자에 코팅이 되는 맛과 촉감이 각별하여 찾는 애호가들이 많다. 이 때는 양념에 신경을 써야 계란 노른자에게 지지 않는다.

나는 육회를 잘하는 식당이 다른 고기 요리도 맛있게 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으며 육회를 취급하지 않는 고깃집은 가지도 않을 정도로 나의 육회 사랑은 한결같다. 어릴 적 먹은 육회의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마도 그때의 맛 경험이 없었다면 육회를 못 먹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육회는 고기의 신선도와 손맛이 어우러져야 되는 까다로운 음식이다. 즉 맛의 비결은 양념의 비율에 따른 손맛이 좌우한다. 손의 온도가 고기에 전달되지 않도록 신속하게 조리해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릇도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기그릇을 사용하였으며 그때의 그윽한 참기름과 배의 달콤한 맛이 그리워진다.

지방에서 맛본 육회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식당이 영천 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편대장 영화식당’이 있다. 상호가 특이하게 군대 용어인 편대장이 들어있어 주인의 과거를 보는 듯한 인상을 느끼게 한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썰어낸 소고기를 일일이 힘줄과 지방을 제거하는 노력으로 순 소고기만을 추려내어 육회 맛이 깔끔하고 부드럽다. 파채를 얇게 썰어 소고기와 함께 간장 양념에 버무린 것이 특징이다. 파채의 향과 달큰한 맛이 고기와 잘 어울려 맛을 더한다. 파채만 빼면 서울 육회와 비슷하다. 반은 육회로 먹다가 반은 공깃밥과 함께 양푼에 육회비빔밥으로 먹으면 정말 맛있다. 육회를 더해 비빔밥을 두 그릇 먹게 하는 장본인은 차돌박이가 들어있는 마법의 된장찌개에 있다. 맛이 기가 막히며 전형적인 경상도식 육회집이다.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㉔ ‘육회’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㉔ ‘육회’

 

서울에 육회집으로는 광장시장 내 ‘육회자매집'이 유명하다. 시장 내 육회 골목의 지존으로 고기에 잡내가 없고 회전율이 좋아 신선한 육회를 맛볼 수 있으며 같이 곁들이는 무국이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주며 가성비도 좋고 고기 맛도 평판이 좋다. 육회 밑에 깔려있는 배와 함께 참기름에 찍어 먹으니 고소하고 시원한 맛이 좋으며 약간 짭짤한 맛이 느껴지나 시대에 맞는 변화라고 생각되는 서울식 육회이다. 학창 시절 처음 생겼던 식당이 벌써 30년 되어 식도락가들에게는 육회의 성지(?)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의식(?) 속에는 광장시장 전체가 성지로 남아 있다.

종로 5가 백제약국 골목으로 들어가면 육회를 잘하는 오래된 식당 ‘백제 정육점’이 있다. 예전부터 갈비와 육회를 전문적으로 하는 몇 안 되는 식당으로 세월의 흔적이 비껴간 아담한 집으로 여전히 옛 육회 맛을 내는 식당이다.

지금은 갈비 대신 육회와 각종 특수부위의 고기를 준비하고 있다. 커다란 접시에 갖은양념과 배, 야채, 파와 함께 버무린 선홍색의 육회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원래 서울식과는 비주얼이 조금 다르게 막 비벼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양념에 청양고추를 넣는 것 같은 데 육회 맛을 해칠 수 있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또한 달걀노른자를 올려주는데 선홍색 육회 위에 노란 달걀이 터지면서 흘러내리는 모습이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눈과 입을 자극한다.

여기에 참기름을 살짝 찍어 먹으면 신선한 육회와 채소들의 그윽한 향이 퍼져 소주를 부른다. 개인에 따라 고추장과 함께 먹어도 별미다. 예전에 비해 파를 많이 넣어 파의 향이 지배하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야채, 파, 배, 계란이 양념된 육회와 고추장이 곁들인 비빔밥은 비주얼만큼이나 맛도 좋아 큰 양푼 그릇의 육회비빔밥이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정육점을 같이 운영하고 있어 가성비가 좋은 고기를 맛볼 수 있고 육회도 푸짐하며 고기 국물도 따뜻하고 담백하여 속을 편하게 해 준다.

신선한 소고기를 사용하는 식당으로 논현동에 ‘안동 뭉티기’가 있다. 간장 양념에 미나리와 파를 넣는 영천에 있는 영화식당과 비슷한 맛을 낸다. 한우만을 취급하는 집으로 육회와 생고기를 전문으로 한다. 특이하게 간판은 안동인데 남도식 육회도 같이 내놓는다. 고추장으로 버무린 남도식은 짙은 붉은색으로 양념되어 식욕을 돋우고 매콤·달콤한 맛이 입안을 행복하게 해 준다. 어느 육회를 먹으나 만족도가 높으며 맛으로 승부하는 몇 안 되는 육회집이다.

영천에 있는 영화식당과 상호가 비슷한 곳이 청담동에 ‘영천영화’인 한우 육회 전문점이 있다. 된장찌개가 딸려 나오는 육회 비빔밥은 잘 숙성된 한우 우둔살을 사용하여 고추장 없이 참기름과 깨소금만으로 양념한 육회를 밥과 함께 비벼먹으면 살살 녹는 맛이 압권이다. 신선한 좋은 고기와 과하지 않은 양념을 사용하는, 기본에 충실한 식당이다.

차가운 음식인 육회에 따뜻한 밥 한 공기를 같이 비비면 살짝 얼은 듯한 육회가 사르르 녹으면서 하얀 쌀밥에 딱 붙어 한 숟가락 크게 입 벌려 먹으면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저절로 생기는 그런 육회를 나는 좋아한다.
 

글·사진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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