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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㉓ - 하얀 꽃송이 ‘하모 샤브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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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㉓ - 하얀 꽃송이 ‘하모 샤브샤브’
  • 손영한
  • 승인 2022.09.27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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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장어 요리 '하모 샤브샤브'
갯장어 요리 '하모 샤브샤브'

 

[푸드경제신문 손영한] 갯장어! 여수지방에서는 참장어라 하며 본명보다는 ‘하모’ (일본)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바닷장어의 한 종류이다. 우리나라 서해, 남해에 많이 서식하며 5~10월까지 잡히는 어종이다. 한 여름이 제철이다 보니 이 지역 사람들의 계절 보양 음식으로, 주로 뼈째 썰어 회로 먹거나 살짝 데쳐서 먹는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단맛이 나며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아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가 제철이다.

우리들이 먹는 장어의 종류는 민물장어와 바닷장어로 나뉜다. 민물장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뱀장어(우나기)를 말한다.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지역 (풍천이라 함)에 서식하는 어종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어이다. 바닷장어에는 갯장어 (하모), 붕장어(아나고) 그리고 먹장어 (곰장어)가 있다. 이중 갯장어, 붕장어는 장어과에 속하지만 먹장어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종류가 다른 어종이다.

붕장어는 뱀을 닮은 모습 때문에 예전에는 먹지 않다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즐겨 먹었는데 그 영향을 받아 식용하기 시작하였다. 주로 회(아나고회)나 구이로 요리하여 뼈 부분은 기름에 튀겨 안주로 먹고 나머지는 탕을 끓여 먹는다. 가장 많이 잡히는 장어로 서울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고 구이로 먹는 맛이 으뜸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바닷장어 구이는 이 붕장어 구이를 말한다.

바닷장어의 왕은 갯장어이다. 과거 오랫동안 물량의 대부분을 일본에 수출하였기에 자연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기도,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본명인 갯장어는 ‘하모’라는 일본말로 더 자연스럽게 불리었다. 온도에 민감한 갯장어는 남해안에서 여름철에만 잡히는데 낚시로만 어획이 가능하고, 그것도 잡히고 난 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로 견딘다. 이렇듯 잡히는 양도 적거니와 그 시기가 한정되어 있고 양식도 안 되기 때문에 애당초 값싸게 먹기는 힘든 녀석이다. 그래서 하모는 귀하고 비싸다. 다른 장어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은 것이 특징이며 특히 아미노산 중 글루탐산이 가장 많으며, 이 성분이 갯장어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을 내게 한다고 한다. 또한 혈관에 생기는 혈전을 예방하는데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하모 요리는 대부분 회, 샤브샤브로 만들어 먹는다. 하모 요리는 손기술과 노력이 필요하다. 질긴 껍질과 몸속에 잔가시가 가득하기 때문에 회를 뜨기 위해 얇게 칼집을 많이 내어 몸에 있는 잔가시를 연하게 만들어야 먹을 수 있다. 하모회는 찰진 생선회의 느낌과 아나고회의 고소한 맛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식감이 있으며, 아나고회와는 달리 적당한 육즙을 머금고 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단맛이 나며 특히 혀에 느껴지는 잔가시의 거친 느낌이 나는 좋다. 여기에 부추, 마늘과 함께 반달 모양의 양파 위에 올려 먹으면 양파의 아삭함과 하모의 달큰한 고소함이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아! 이래서 하모하모 하는구나’라는 말과 함께 눈을 번쩍 뜨게 한다.

하모 요리의 별미는 누가 뭐라 하여도 ‘샤브샤브’이다. 칼집이 섬세하게 손질되어 있는 하모 한 조각을 끓는 육수에 약 5초간 살짝 데치면 은백색의 껍질 쪽으로 오므라들면서 요술을 부리듯 속살이 하얗게 변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여진다. 하얀 눈송이가 내린 것 같은, 하얀 꽃송이가 활짝 피어난 것 같은 모양으로 순식간에 변한 순백색의 하얀 빛깔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이런 하모를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어 먹으면 샤브샤브가 왜 계절의 별미 음식인지 알 수 있다.

민물장어와 달리 느끼함이 전혀 없이 담백하여 입에서 계속 당기는 마법의 음식이다. 여기에 데쳐진 부추와 야채를 곁들이면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입 속에서 사르르 녹으며, 못 생긴 장어의 모습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시각적으로도 순백색 하모와 부추의 선명한 녹색이 어우러진 원색의 향연이 식탁 위에 펼쳐져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가끔 깻잎에 올려 먹으면 깔끔함이 더해져 좋다. 가격이 비싸 사치스러운 식도락이라 하여도 한번 맛보면 내년 여름이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능인 것 같다.

여수는 갯장어의 본고장답게 ‘하모 거리’가 있을 정도로 지방 토속음식으로 유명하다. 그중 경도(섬) 안에 있는 ‘경도회관’이 유명하다. 여수 국동항에서 배로 5분 거리에 있는 경도는 골프장이 있는 관광 휴양지이다. 짧은 시간의 뱃길이지만 바다를 건너간다는 기분과 경도 선착장 옆에 있는 경도 회관 식당에서 바라보는, 저편 여수의 풍경은 파도와 함께 좋은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좋다. 추천하고 싶은 식당이며 하모를 얹어 먹는 양파의 맛이 서울과 다르다. 공사 중인 경도 대교가 완성되면 또 다른 여수 풍경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여수 동천'
'여수 동천'

 

대치동 포스코 본사 뒤편에 ‘여수 동천’이 있다. 이 식당은 여름철에는 하모, 겨울철에는 새조개를 전문으로 하는 남도 음식점이다. 갈치속젓과 여수 갓김치를 밑반찬으로 내놓아 여수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끓는 육수에 데친 하모를 깻잎에 부추, 팽이버섯, 마늘, 갈치속젓을 올려 먹으면 살살 녹는 하모와 갈치속젓의 풍미가 입속에 가득하게 들어온다. 갈치속젓 대신 갓김치에 싸 먹으면 또 다른 별미를 즐길 수 있다. 하모는 기본적으로 담백하고 슴슴한 맛을 갖고 있어 간이 있는 음식이나 향이 있는 채소와 잘 어울려 맛을 더한다. 살아 있는 갯장어를 직접 잡아 손질하므로 접시에 놓여 있는 하모의 껍질에서 야릇한 무늬 빛이 느껴져 보기에도 이채롭고 기분이 좋다. 나중에 샤브샤브 육수에 칼국수나 죽을 끓여 먹으니 갓김치와 함께 삼삼한 맛과 향이 스며있어 여수 밤바다가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맛보기에는 가성비가 만만치 않아 즐겨먹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이곳과 비슷하게 하는 식당이 서초동에 ‘맛기행 사계절’이 있다. 남도음식을 계절별로 준비하여 식도락가들을 즐겁게 하는 식당으로 하모와 새조개가 전문이다. 특히 하모 회를 잘하는 곳으로 여수에서 하는 방식으로 동그란 공 모양으로 내놓는 것이 재미있다. 양파와 같이 도마 위에 준비되어 있으며 초절임 미역도 꽤 맛있다. 샤브샤브 먹고 난 후 뽀얀 육수에 매생이 칼국수 사리는 이 식당의 인상 깊은 후식인 것 같다.

광화문에 있는 단골집 ‘여수 한두레’ 식당이 무슨 연유인지 7월 말에 문을 닫아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 짐작으로는 서울에서 하모식당으로 처음 시작한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에 노포가 자꾸 없어진다. 여름 끝 가을 문턱에, 지친 몸과 마음을 갯장어와 함께 하여 올해 남아 있는 몇 달을 활기차고 생기 있게 맞이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때를 놓치면 일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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