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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㉒ - 비범한 맛의 ‘명태·생태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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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㉒ - 비범한 맛의 ‘명태·생태탕’
  • 손영한
  • 승인 2022.09.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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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㉒ - 비범한 맛의 ‘명태·생태탕’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㉒ - 비범한 맛의 ‘명태·생태탕’

 

[푸드경제신문 손영한] 명태는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생선이다. 예로부터 제사와 고사, 전통혼례 등 관혼상제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생선으로, 명태의 상태, 잡힌 시기 및 장소, 습성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특이하다.

명태는 상태에 따라 생물인 것은 생태, 얼린 것은 동태, 온전히 말린 것은 북어·황태, 꾸덕꾸덕 말린 것은 코다리, 어린 명태는 노가리, 백태, 흑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특히 황태는 한겨울에 일교차가 큰 덕장에 명태를 걸어놓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얼고 녹기를 스무 번 이상 반복해 노랗게 변한 북어를 말하며 귀한 상품으로 취급된다.

또한 연중 대부분 시기에 어획되는 생선으로 모양은 가늘고 길며 몸 전체에 특이한 무늬로 덮여있고 머리가 큰 편이다. 눈이 크고 아래턱은 위턱에 비해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 조금 화가(?) 난 듯이 보인다. 대구와 생김새가 비슷하나 대구보다 홀쭉하고 길쭉한 모습을 지닌다.

옛날에는 명태 간에 있는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혔기에 ‘밝게 해주는 물고기’라는 의미와 명태 간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말이 전해져 명태(明太)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또한 함경북도 ‘명천’에 사는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낚시로 낚아서 고을 도백에게 드렸다고 하여 각각 앞 자를 따서 ‘명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쨌든 사람에게 이롭고 밝게 해주는 생선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명태 소비량이 제일 많아 국내산만으로는 조달이 불가능하여 러시아산, 북해도산을 수입하며 국내산은 과거 무분별한 어획으로 거의 씨가 말라 귀족 대우(?)를 받는다. 생태는 얼리지 않고 급속 냉장 상태에서 들여온 것이고 얼린 상태로 들여온 것은 동태다. 생태와 동태의 찌개 맛은 차원이 다르며 동태는 차라리 동태전을 만들어 먹는 게 낫다.

명태와 관련된 관용어나 속담도 많은데 ‘말을 많이 하고 거짓말로 허세를 부린다’는 뜻의 ‘노가리 푼다’가 대표적이며 ‘명태’라는 제목의 가곡(오현명)도 유명하고 대중가요와 시의 소재로도 사용되는 국민 생선이다. 강산에가 부른 ‘명태’ 가사 중에 “내장은 창난젓, 알은 명란젓, 아가미로 만든 아가미젓, 눈알은 구워서 술안주, 괴기는 끓여 먹는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명태” 라는 노랫말이 있듯이 명태는 굽든, 찌든, 말리든, 끓이든, 내장까지도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어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정말 신이 내려준 것 같은 생선이다.

명태는 차가운 물에 살아도 따뜻한 음식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뜻한 음식은 간을 보호하고 체력을 보강하기 때문에 피로회복제의 역할을 한다. 명태살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으며 열량이 낮으면서도 칼슘, 철 등이 골고루 들어 있어 영양도 풍부하다. 또한 나쁜 독소도 풀어준다 하여 과거 연탄가스 중독 때 북어 국물을 끓여 먹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콩나물국에 북어대가리만 넣어도 속이 확 풀리면서 원기가 회복됨을 느낀다. 특히 북어껍질은 구수하고 시원한 육수를 만들 수 있어 숙취해소에 으뜸이다.

명태는 요리 방법에 따라 생태탕, 동태찌개, 명태찜, 북어찜, 코다리찜, 황태구이, 동태전, 북어국, 먹태구이, 노가리구이, 명란젓, 창난젓, 명태식해 등이 있어 우리 식탁을 즐겁게 해 준다. 이중 명태요리의 으뜸인 생태탕은 들어가는 재료도 간단하다. 필수 재료인 무, 두부와 함께 고춧가루와 대파를 넣어 팔팔 끓이면 시원한 생태탕이 된다. 여기에 어머니는 미나리·쑥갓을 넣어 신선한 맛을 더했으며 무는 직사각형이 아닌 삼각뿔 모양으로 쓱쓱 썰어내어 먹기도 좋고 삐뚤빼뚤한 모양도 예쁘게 기억된다. 하얀색의 탱탱한 속살은 잔뼈가 없어 먹기 좋으며 색다른 식감은 없으나 슴슴한 맛을 내어 기분이 좋다. 어머니는 생태탕에 콩나물과 애호박 등을 넣어 향과 담백한 맛을 더했으며 내 기억으로는 고추장이 아닌 고춧가루만을 사용하여 텁텁하지 않은 시원한 제 맛이 나고 다른 육수를 쓰지 않고도 국물이 달았다.

생태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은 대가리 먹는 재미이다. 그 중 일순위(?)는 눈알 부위인데, 북어구이 눈알의 쫄깃한 식감보다는 덜하지만 생태대가리는 별미 중에 별미로 내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주문진 생태찌개’
‘주문진 생태찌개’

 

가을철만 되면 생각나는 곳이 가락동에 있는 ‘주문진 생태찌개’ 식당이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영업해온 곳으로 강원도 속초, 강릉 음식을 기본으로 하는 해산물 전문점이다. 그중 생태찌개가 대표음식인데 국물이 기가 막힐 정도로 깔끔하고 구수하며 시원한 맛을 낸다. 큰 양푼에 생태가 통째로 들어가 육수 맛이 더욱 좋으며 나중에 대가리를 뜯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적당한 크기의 대파와 무, 두부는 필수이고 계절에 따라 미나리, 냉이를 한 움큼 넣어 향긋한 향이 있는 명품 생태찌개이다. 한소끔 끓으면 식당이모가 뼈를 발라주며, 살이 하얗게 변하면 잘 익은 것으로 그때부터 먹으면 된다. 여기에 내장과 알을 추가하여 먹으니 씹히는 식감이 좋고 구수하다. 나는 처음에는 생태만 넣고 먹다가 나중에 부산물을 넣어 먹는데 이는 국물 맛이 텁텁해지기 때문이다. 그 외 문어숙회, 가자미식해 등도 즐겨 찾으며, 밑반찬으로 명태 깍두기와 아가미 젓갈을 내놓아 속초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좋다. 나중에 밥을 국물에 자작하게 말아먹으면 입안이 개운하고 상쾌해진다.

 

‘속초 생태집’
‘속초 생태집’

 

서울 한복판에서 오랫동안 생태탕을 하는 ‘속초 생태집’이 있다. 북창동 먹자골목에 있는 식당으로 좁은 골목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숨은 맛집이다. 요리법은 다른 집과 비슷하게 무, 두부를 넣고 팔팔 끓여내고 여기에 미나리를 수북하게 넣어 생태탕의 시원한 맛을 더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내장 추가도 알, 고니, 애 등이 다른 집보다 실하게 들어 있어 해장으로 이만한 게 없다. 시원하고 칼칼한 맛에 해장하러 왔다가 음주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거꾸로 음주와 동시에 해장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게 된다. 여느 생태집과 마찬가지로 속초지역의 음식메뉴가 가득하고, 특히 골뱅이 숙회는 바다 내음을 느낄 수 있는 싱싱한 맛으로 동해안에 여행 온 기분을 들게 한다.

을지로 3가 기계공구 골목 안의 ‘세진 식당’은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자주 가는 노포 생태집인데 을지로 재개발 사업으로 1년 전 폐업되어 눈물이 날 정도로 아쉽다. 옛날 을지로 뒷골목에서 발견한 이 비범한 맛을 다시 느낄 수 없음이 무척 슬프다. 특히 갑오징어 숙회가...

이제 한 여름이 지나 가을 문턱이 다가오니, 따끈한 국물이 기대되는 계절에 추억 저편 기억에 있는 생태탕을 찾아 한 숟가락 떠먹고 싶다. 삐뚤빼뚤하게 썰은 무와 함께...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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