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2:20 (월)
실시간뉴스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㉑ 여름 별미 - ‘비빔국수’와 ‘노각무침’
상태바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㉑ 여름 별미 - ‘비빔국수’와 ‘노각무침’
  • 손영한
  • 승인 2022.08.29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푸드경제신문 손영한] 어느 휴일 날, 그날따라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딱히 바쁜 일 없어 멀뚱멀뚱 아무 생각 없이 멍~ 하고 있을 때 “우리 비빔국수 해서 먹자~”라는 말에 초점 없던 눈은 금세 반짝반짝, 입안은 벌써 쩝쩝! 왜 오늘따라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브람스의 교향곡 같이 들릴까. 이렇게 비빔국수는 갑자기 오는 음식이다. 스케줄에 의해 장만하는 음식이 아니며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꼭 있어야 할 것은 ‘어머니의 손맛’이다. 적당한 굵기의 국수를 삶고 찬물에 헹궈서 하얀 천위에 한 움큼씩 나누어 놓는 어머니의 국수 삶는 모습이 아련하다.

비빔국수는 국수의 굵기, 삶는 시간, 맛있는 고추장과 비비는 손맛이 어우러져야 맛나게 만들어진다. 여기에 가미되는 참기름 몇 방울은 왜 그리 고소한지 지금은 그런 향을 느낄 수 없는 것 같다. 비빔국수에 사치라도 부리는 날에는 삶은 계란, 오이채, 통참깨를 고명으로 올리면 비 오는 날의 한여름 식사로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어머니의 비빔국수는 대체로 여름이면 상에 올랐고 그때쯤이면 시어진 김장김치를 잘게 썰어 고추장과 함께 양념하여 만드셨으며 밑간은 간장을 사용하였으나 짠맛이 거의 없는 향긋한 참기름 향이 나는 비빔국수를 만들어 주셨다. 젓가락에 후루룩, 국수의 반이 없어진다. 비빔국수인데도 땀이 별로 나지 않는, 오히려 시원한 국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나는 지금도 신기하다. 봄이 지나면 남은 김장김치를 만두, 장떡(김치전), 비빔국수에 사용하여 김장 김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음식으로 변신시켰다. 특히 만두는 김치가 많이 들어가 활용도(처리?) 면에서는 만두가 최고라고 종종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잘 삶은 국수 면발에 매콤 새콤달콤한 양념의 조화는 뚝 떨어진 한여름의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마법이 있으며 여기에 시원한 김치, 아삭한 콩나물, 싱싱한 상추를 곁들이면 완벽한 비빔국수가 된다. 특히 콩나물의 머리를 떼어낸 콩나물 줄기와 국수를 함께 비빔으로써, 씹히는 식감이 아삭한 콩나물과 부드럽고 쫄깃한 국수가 묘하게 잘 어울려 더욱 상큼한 맛을 느끼게 하는 콩나물 비빔국수는 또 하나의 별미였다. 화려한 고명이 없어도 있는 그대로의 맛에 이끌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비빔국수이다. 여기에 얼음 조각이 동동 떠있는 콩나물냉국은 맛을 더해주는 파트너이다. 고추장으로 만든 비빔국수임에도 맵지 않고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은 여름날의 땀을 쏙~ 들어가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비빔국수를 비슷하게라도 맛을 내는 식당이 드문 것 같다. 국수집에 가서도 비빔국수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사실 선뜻 먼저 주문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내가 원하는 맛의 비빔국수일까?’라는 우려의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에 무난한 다른 종류의 국수를 주문하게 된다. 그만큼 어머니의 손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으로, 집집마다 고추장 맛이 달라 자기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서 먹는 고추장으로 요리하는 비빔국수가 제일 맛있다. 미소를 짓게 하는 국수 요리 중 간장, 참기름과 깨소금만으로 만드는 간장 국수는 어린 시절 아플 때 해주셨던 어머니 요리이다. 전형적인 슴슴한 맛의 국수 요리로 지금도 가끔 먹으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나만의 음식이다.

그래도 잘하는 집을 찾자면 누나들 집(?)이다. 큰 누나는 내가 군 생활할 때 비빔국수를 자주 만들어 주었는데 나는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요리법은 어머니의 솜씨에 설탕을 약간 넣어 매콤달콤한 맛을 내는 비빔국수로 커다란 그릇에 코를 박고 맛있게 먹었던 젊은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거기에 삶은 계란도 2개씩이나 있었는데, 지금도 그 맛을 느끼려 가끔 설탕을 넣어먹는 버릇이 생겼다. 40년이 지난 저 먼 추억의 이야기이다. 작은 누나도 어머니 솜씨(맛)와 똑같은 요리가 있는데 잡채와 북어 양념찜이다. 정말 맛있다. 지금도 가끔 한통씩 만들어 주는 잡채에는 고기, 야채, 버섯, 계란지단 등 우리 집만의 고명들이 그대로 들어 있어 어찌나 멋있고, 맛있는지 그 큰 통의 잡채를 2~3번에 먹으면 끝!

여기에 북어찜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북어를 다듬이 방망이로 두드리고 물에 불린 후 갖은양념을 하여 만드는 북어찜 요리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어머니 생각이 떠오르는 음식이다. 가끔은 마음속으로 북어찜 맛이 슬프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지금도 옛 맛을 느끼게 해주는 누나들이 있어 좋다.

비빔국수 먹을 때 같이 곁들이는 반찬으로 콩나물냉국, 늙은 오이무침, 자작한 얼갈이·열무김치만 있으면 고급스러운 여름 한상이 된다. 이중 늙은 오이는 계절적으로 비빔국수와 궁합이 잘 맞는 오이 종류의 음식재료이다. 늙은 오이를 노각이라고도 불리는데 수분 함량이 높고 칼슘, 섬유질이 많아 갈증 해소와 피로 회복에 좋다고 한다. 특히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효과적이고 이뇨작용과 체내 염분을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여 고혈압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오이무침은 아삭아삭 하지만 노각 무침은 아작아작한 식감이 있는 음식이다. 오이무침은 고춧가루, 간장만으로 무치지만 노각 무침은 고추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르다. 비빔국수와 사뭇 비슷하다. 노각 무침은 매콤한 듯, 쌉쌀한 느낌이 있는 음식으로 여름철에 느끼는 묘한 맛이다. 쌉쌀한 맛을 없애기 위해 미리 소금에 절여서 사용 하지만 가끔 느끼는 쌉쌀한 맛이 나는 좋다.

노각 요리에서 중요한 부분은 어느 정도의 두께로 썰어야 좋은가이다. 도톰하게 썰면 더 아작아작하고 꼬득꼬득한 식감이 있고 얇게 썰면 깃털이 날아가듯 부드러우면서 입안에 쩍 붙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 나는 고추장이 잘 스며들고 부드러운 식감이 있어 얇게 썬 것을 좋아한다. 노각은 물기를 쪽 뺀 다음 고추장과 다진 마늘, 파를 넣고 조물조물 비벼서 무치고 나중에 통참깨를 솔솔 뿌리면 매콤 새콤한 맛이 되어 비빔국수에 반찬으로 같이 먹거나, 밥에 넣어 비벼먹으면 여름철 꿀맛이 따로 없다. 밥에 비벼먹기 위해서는 얇게 썰어 요리하는 것이 한층 맛을 더한다.

가끔은 ‘광장시장’의 비빔국수나 ‘인덕숯불구이’ 집의 주방 할머니가 만드시는 후식 비빔국수가 그나마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비슷한 맛이다. 늦여름의 입맛과 건강을 위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음식을 찾아, 늦기 전에 크고 잘생긴 노각을 사러 시장으로 Go Go...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