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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⑳ - 내 마음속 소올푸드 ‘닭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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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⑳ - 내 마음속 소올푸드 ‘닭백숙’
  • 손영한
  • 승인 2022.08.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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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신문 손영한] 닭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며 시골은 물론 도시에서도 닭을 키우는 집이 많이 있었다. 닭의 살코기와 계란은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으로 삶고, 볶고, 튀기고, 굽는 등의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으며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만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백숙이나 삼계탕으로 요리하는 것이 전통적 방법이었으나, 튀기거나 구워서 먹는 등 여러 가지 요리법이 개발되어 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특히 치킨과 맥주를 함께 먹는 치맥 문화가 한류 문화의 한 축이 되었다.

나는 그래도 닭백숙을 제일 좋아한다. 푹 삶은 닭은 색깔도 뽀~얗고, 하얀 찹쌀밥과 함께 눈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그 모양 그대로여서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닭백숙의 부위 중 최고는 역시 다리 부위이며 예의로 제일 어른께 먼저 드리는 것이 닭다리이다. 이 부위는 쫄깃하고 한입 먹으면 다리뼈가 그냥 쏙 빠질 정도로 부드러워서 최고의 식감을 자랑한다. 여기에 굵은소금을 두, 세 조각 묻혀 먹으면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 하는 어릴 적 노래가 절로 난다. 역시 백숙의 진미는 닭다리이다.

닭날개 부위도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흐물흐물 하면서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닭날개는 껍질과 함께 한입에 쏙 ~ 먹으면서 뼈를 입에서 발라먹는 모습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백이면 백 거의 똑같다. 껍질과 기다란 살점을 같이 먹으니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최고다.

닭목 부위를 먹어본 사람은 다리보다 목 부위를 먼저 찾는다. 큰 닭일수록 목뼈에 살이 토실토실하게 붙어있어 소고기 장조림 먹듯 결 따라 찢어져 앞니로 뜯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부위에 비해 뼈 사이사이에 육즙도 한껏 머물고 있어 좋으며 미리 챙기지 못하면 누군가 먼저 먹어 버린다.

닭백숙에서 모이주머니(일명 닭똥집)와 염통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모이주머니는 푹 삶았는데도 아삭한 식감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여러 토막을 내어 나누어 먹어야 다툼(?)이 안 생긴다. 모이주머니는 곁들이는 소금에 맛이 좌우되기도 하여 좋은 천일염일수록 식감이 배가 된다. 더불어 염통은 닭 부위 중 제일 쫄깃한 식감을 갖고 있으며 숯불에 구우면 더욱 맛이 좋아 모이주머니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인기가 많다.

백숙의 닭발은 푹 삶아져 나와서 뜯어먹으면서 물렁뼈를 같이 씹는 맛이 좋으며 볶음이나 숯불구이는 술안주로 인기가 높다. 콜라겐이 많이 들어있어 건강에 좋으며 특히 불닭발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양보가 안 되는 메뉴이기도 하다. 이렇듯 닭백숙은 부위별로 느낄 수 있는 식감이 다르며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국민음식이다. 이제는 닭 부위 별로 요리해주는 ‘닭 오마카세’ 음식점도 있다.

어머니는 여러 가지 닭요리를 자주 해주셨는데 그중 한여름철에 큰 그릇에 닭 한 마리가 놓여있는 닭백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루는 어머니를 따라 충신시장(종로6가)에서 닭 한 마리를 사 온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 닭은 지금처럼 제품화된 포장 닭이 아니고 닭장 속에 있는 닭을 잡아 즉석에서 털을 제거하고 손질하여 판매하는 시장 닭이다.

이렇게 사온 생닭을 찹쌀, 파, 마늘, 대추 등을 넣어 몇 시간씩 푹 삶아 백숙을 만드셨다. 큰 그릇에 놓인 닭백숙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살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고 쫄깃한 모이주머니, 염통, 닭발도 있었으며 암탉의 경우 운 좋을 때는 계란 노른자도 들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닭다리를 먼저 주셨고, 먹으면 노래를 잘 부른다는 목 부위, 바람나니 먹으면 안 된다는 날개, 닭 꼬리를 먹어야 닭 한마리 다 먹은 거라는 등 각 부위마다 농담을 하시면서 드신 기억이 난다. 어린 내 입에도 고기가 어찌나 찰진지 이빨 사이에 끼는 닭고기를 빼가며 정신없이 먹었으며 마지막에 먹는 찹쌀죽도 고소하고 하얀색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잊지 못할 어머니표 닭백숙이다. 그때 마루에 비친 햇살이 그립다.

나의 이모할머니(할머니의 동생)는 우리 집과 가까운 종로4가(보령약국 뒤)에 사셨다. 집터가 크고 가운데 마당이 있으며 나무로 된 큰 대문이 있는 한옥집이다. 이모할머니는 여름철만 되면 할아버지께 보양음식으로 닭과 함께 인삼, 약재, 대추, 밤 등을 넣어 푹 삶은 다음 뼈를 제거한 후, 삼베 보자기로 약탕재 짜듯 즙을 낸 국물만을 만들어 드셨는데 이런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참 특별하게 보였다. 이렇게 즙을 내고 남은 닭고기를 이모할머니는 우리 집에 자주 가져오셔서 베 보자기를 펼쳐놓고 먹은 기억이 있다. 즙이 빠져 살은 퍽퍽하지만 인삼이 많이 들어있어 향이 좋았으며 간식으로 잘 먹은 기억이 있다. 할머니 머리 모양은 항상 쪽 지시고 행동과 말이 조용하시면서 정이 많으셨던 이모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닭백숙을 잘하는 집이 전국에 무지하게 많다. 하지만 제일 잘하는 곳은 다름 아닌 자기 집 닭백숙이다. 할머니, 어머니, 장모, 집사람까지 대대로 이어지는 정성스러운 백숙이 제일 잘하는 곳이고 맛도 최고다. 자식들이 공부하다 지칠 때, 군입대·휴가 때, 사위 맞이할 때, 부모님의 건강을 챙길 때 등 마음과 정성이 아닐 때가 없는 음식이 닭백숙 아닌가! 각자 자신만의 추억을 간직한 음식이며 안식이나 위로를 얻거나, 줄 수 있는 내 마음속 소울푸드(Soul Food)가 아닌가 싶다. 백숙은 절대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니며 가족, 친지, 동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이기에 김치찌개만큼이나 위로가 되는 음식이다. 요리하기도 어렵지 않고 그냥 푹 ~ 끓이면 된다.

요즈음 식당들은 닭백숙과 삼계탕, 볶음탕 등을 함께 내는 식당이 대부분이다. 종로 체부동(서촌)의 ‘토속촌 삼계탕’ 집은 백숙과 삼계탕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한 곳에서 약 40년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집으로 지역 특성상 대통령 삼계탕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며 곁들이는 깍두기, 김치가 아주 맛있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하여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며 내부도 깔끔하고 정갈한 한옥집이다. 인삼, 찹쌀, 은행, 밤, 대추를 넣고 끓인 삼계탕은 다른 음식점보다 걸쭉한 편이며 견과류를 고명으로 얹어 고소한 맛을 더한다. 닭백숙도 쫄깃하고 구수한 옛날 맛 그대로를 즐길 수 있으며 쌈장과 마늘, 소금에 닭고기를 찍어 먹으면 한결 감칠맛이 우러나와 식감이 좋다. 대부분 식도락가들이 한번쯤은 가본 경험이 있을 법한 유명한 집이다.

 

장충동 ‘평강 삼계탕’
장충동 ‘평강 삼계탕’

 

장충동에 ‘평강 삼계탕’ 집이 있다. 이 집은 생닭을 주인이 직접 손질하여 천연 약수와 상황버섯을 부재료로 하여 만들며 삼계탕의 닭 색깔이 묘한 황금색을 띠고 있어 눈으로 먹는 색감과 구수한 향이 특별한 삼계탕을 느끼게 한다. 국물이 꾸덕할 정도로 진하며 시각적으로 몸보신이 되는 느낌을 갖는데, 아마도 약수와 상황버섯 때문인 것 같다. 역시 김치가 맛있어 나중에 먹는 찹쌀 죽과 궁합이 잘 맞으며 국물이 진해도 마무리는 깔끔해서 좋다. 백숙 같은 해신탕도 대표 메뉴로써 인기가 많다.

 

진옥화 할매 원조 닭한마리
진옥화 할매 원조 닭한마리

 

최근에 또 다른 느낌의 요리인 ‘닭 한마리’라는 요리를 하는 집이 꽤 있다. 큰 냄비에 닭 한 마리와 각종 부재료를 넣어 끓여 먹는 것으로 젊은 연령층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 80년대 초에 생긴 종로5가의 닭 한마리 골목길이 원조이며 지금은 닭 한마리의 성지가 되었다. 나의 학창 시절 이 지역은 돼지곱창, 생선구이, 아나고회 등을 파는 종로5가 먹자골목으로 대학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진옥화 할매 원조 닭한마리’라는 식당에 준오(아들) 친구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양은 큰 냄비에 생닭, 파, 감자를 넣어 푹 끓이고 식당 아주머니가 손질해 주시면 요리 끝! 맑은 육수가 어찌나 맛있는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아들 친구들이 무척 좋아했고 파, 감자와 떡사리를 추가하여 먹고, 마무리는 진한 닭 육수에 국수사리를 넣어 김치와 함께 닭 칼국수를 먹으니 모든 게 행복해 보였다.

남대문 시장 안에 ‘닭진미 강원집’이 있다. 시장 내 갈치조림 골목에 있는 닭곰탕 집으로 양은 냄비에 육수와 닭(반마리?)을 넣어 끓인 것으로 간이 슴슴하고 고기도 씹히는 맛이 있으며 가격도 착하다. 개인에 따라 소금, 후추, 고춧가루를 더 넣어 본인만의 입맛에 맞추면 된다. 뜨끈한 닭곰탕에 밥을 말아먹어도 좋으며 닭고기는 마늘, 고추장과 간장 양념장에 찍어 먹으니 시장의 분위기와 함께 즐거움을 더한다. 세월의 흔적이 말해주는 시장의 정다움이 묻어나고 추억의 손님들이 많아 나는 좋다. 간장 양념장만큼이나...

서울 근교 서하남 IC 근처에 있는 ‘금수레 황금 옻닭’ 식당의 닭백숙은 껍질까지도 쫄깃쫄깃한 식감을 갖고 있어 씹는 맛이 찰지고 잡내가 전혀 없어 좋다. 배추김치(포 김치)가 아삭하고 신선하며 젓갈이 적게 들어가 상쾌한 맛을 내어 명품 김치라 하여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미리 주문 예약해야 하고 주인장의 자부심이 대단하며 재방문하고 싶은 숨은 맛집이다.

땀 흘리는 여름만 되면 왠지 기운을 돋우어 주는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되는 요즈음, 정갈하고 깔끔한 닭백숙으로 맛뿐만 아니라 마음에 위로가 되는 ‘어머니표 닭백숙’을 찾아 먹어보자.

여전히 닭백숙은 나의 소올푸드이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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