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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⑱ ‘민어’ (民魚) - 일전, 이탕, 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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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⑱ ‘민어’ (民魚) - 일전, 이탕, 삼회
  • 손영한
  • 승인 2022.07.20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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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⑱ ‘민어’ (民魚)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⑱ ‘민어’ (民魚)

 

[푸드경제신문 손영한] 민어의 계절이 왔다. 여러 비슷한 생선 중 조기, 부세 등과 같은 종류의 생선인데 그중에서도 큰 형님에 해당하는 당당한 몸집을 가지고 있는 생선이다. 크기가 보통 1m가 넘고 무게도 10kg 이상이나 되는 대형 어종으로, 몸통은 전체적으로 흑갈색이고 배 쪽이 밝은 회색을 띠고 있다. 계절에 상관없이 잡히는 생선이지만 우리나라 서해바다에 6~9월에 많이 모여 이동하며 특히 목포 신안, 임자도 근해가 유명하고 인천 앞바다에도 어장이 형성되어 있다. 민어는 낚시로 해서 잡아도 살려서 배에 올리기 쉽지 않으며 일반적인 조업으로 잡은 민어는 배에서 바로 비닐로 개별 포장하여 얼음을 채워 수송한다. 모든 국내산 민어는 100% 선어이며 활어 민어는 없다. 요즈음 중국에서 수입되는 홍민어(점성어)가 국내 민어로 둔갑하여 파는 횟집이 있는데 꼭 구별하여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근대화 이후 목포지방이나 서울 사람들 중 일부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생선이었다. 최근에 매스컴의 홍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높은 여름철 보양식으로 돌아와 고급 생선으로 대접을 받으며 현지와 서울지방에서 주로 소비되고 있다. ‘동의보감’에 민어는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며, 여름철 냉해지는 오장육부의 기운을 돋우며 뼈를 튼튼하게 해 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민어는 주로 민어회, 찜, 전, 탕으로 요리된다.

우리 집은 제사가 참 많았다. 항상 어머니 혼자 차리시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준비하신다. 집 근처에 동대문 시장이 있어 도움이 되었지만 편찮으신 몸으로 고생이 참 많으셨다. 이렇듯 준비된 제사음식 중 전 종류로는 빈대떡, 민어전, 쇠간전, 김치·고기전 등이 차려진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민어전은 한입 씹을 때부터 그 맛이 다르다. 도톰한 두께에 계란이 입혀진 노란색의 모습은 눈으로 봐도 그 자태를 다른 녀석들이 따라 올 수 없고 한 입 먹으면 슴슴한 맛과 부드러움이 입속에서 요동을 친다. 겉에 씌운 계란막은 민어살의 육즙을 한껏 보호하면서 고소한 맛을 더한다. 얼마나 부드러운지 세 번 정도 씹으면 이미 입안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삽시간에 사라진다. 솔솔 녹아 없어져서 민어전을 한입 가득 먹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입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 다른 생선과 달리 민어 살은 여려서 약간 두껍게 저며 내어 전을 부쳐야 모양이 나며 육즙이 속에 머문다. 이것이 동태전, 대구전과 다른 것이다. 요리 후 바로 먹으면 제일 맛있지만 며칠 후에 먹어도 그 맛이 도망가지 않는다. 몇 년 전 성묘 갈 때 집사람이 민어전을 준비했는데 대구전과 구별하기 위해 민어전에 빨간 실고추로 모양낸 것이 생각난다. 어머니의 민어전만큼이나 맛있었다.

민어 요리의 으뜸은 내장, 애, 부레 등을 넣은 민어탕이다. 민어는 매운탕으로 요리하면 기름이 많이 생겨 호불호가 있으나 시원하고 매콤한 맛의 매운탕을 한 솥 끓여내면 구수한 맛을 더한다. 또한 민어 맑은탕은 거의 곰탕 수준으로 바닷고기 중에 이 정도의 국물이 진하게 나오는 생선도 흔치 않으며 대가리와 뼈에서는 매우 감칠맛 나는 국물이 우러나온다. 보통은 식으면 비린내가 나는데 민어탕은 다시 끓이면 없어진다. 매운탕이나 맑은탕을 하는 집이 식당마다 다르며 여름 보양식은 바로 이 민어탕을 말한다.

민어회는 연분홍색을 띠며 살은 무르고 부드러우면서 수분이 많다. 수분으로 인하여 퍼석거리는 느낌이 있을 수 있으나 숙성도에 따라 감칠맛과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으며, 다른 회에 비해 큼직하게 썰어 먹으면 씹히는 맛이 한없이 부드럽고 구수하다. 선어로 즐길 수 있는 민어회를 일반회의 쫄깃한 식감으로만 먹는 사람은 비싸고 별 맛없는 인상만 남길 수 있어 본인 취향에 따라 선택하여 먹는 것이 좋다. 민어회는 양념간장이나 된장에 찍어먹으면 더욱더 담백하게 먹을 수 있다.

민어의 또 다른 별미는 부레다. 민어 부레는 예로부터 나전칠기, 장농, 활 등에 천연 접착제(어교)로 사용되었으며 남도 민요 강강술래에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애 풀이 따로 없네’라는 가사로 전해지고 있다. 민어는 민물고기처럼 부레가 잘 발달되어 있어 부력조절 능력이 좋아 바닷속 깊은 갯벌에서부터 수면까지 활동성이 좋다. 이즈음 여름철에는 무리 지어 다니면서 부레를 이용하여 ‘뿌~욱, 뿌욱’ 소리를 낸다. 지금도 민어를 잡는 어부들은 속이 뚫린 긴 대나무를 이용하여 민어 떼가 내는 소리를 찾아 민어를 잡는다. 옛말에 ‘민어가 천 냥이면 부레가 구백 냥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어의 부레가 귀하고, 회로 먹을 때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 먹으면 두부 젤리 같은 맛으로 그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민어는 크게 민어회, 전, 탕으로 요리되며 어느 것이 우선인지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나는 감히 ‘일전, 이탕, 삼회’라고 말하고 싶다. 민어전이 민어 특성을 느낄 수 있는 요리이고 다음이 민어탕, 마지막이 민어회인 것 같다. 버섯을 평가할 때 쓰는 ‘일능이, 이표고, 삼송이’라고 하듯이...

민어는 누가 뭐라 하여도 목포다. 민어의 성지인 목포는 시내에 ‘민어거리’가 지정되어 있어 향토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 중심에 ‘영란횟집’이라는 주인 이름을 상호에 걸고 운영하는 민어 전문식당이 있다. 민어회, 전, 매운탕을 기본으로 하고 회무침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는 곳으로 목포에 일이 있을 때는 꼭 들러서 민어 맛을 보는 곳이다. 특히 민어전은 꼭 드셔 보기를 권한다.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맛이랄까! 준오(아들)가 군대 가기 전에 목포, 신안, 증도 여행 시 이 식당에 동행한 적이 있으며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일 년 내내 손님이 많다.

 

'홍어랑 민어랑'
'홍어랑 민어랑'

 

서울 종로 낙원동에 민어회를 잘하는 ‘홍어랑 민어랑’ 식당이 있다. 계절 생선을 취급하는 곳으로 여름철에 민어를 취급한다. 숙성이 잘된 민어회는 두툼하고 연분홍 진달래꽃 빛깔과 표면에 흐르는 무늬가 식욕을 돋운다. 여기에 부레와 껍질도 함께 내놓으니 부위별 회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양념간장에 찍어먹는 회 맛은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좋으며 숙성을 잘하여 특유의 퍽퍽함을 느끼지 못한다. 민어 뱃살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등살 부분은 생각보다 질긴 느낌 없이 고소한 맛이 더해져서 입맛에 잘 맞는다. 다른 식당에 비해 가격 대비 회의 양이 좋아 보인다. 푸딩 같은 부레는 귀한 것이니 미리 맛을 보는 게 좋을 듯하며 회 맛이 좋은 식당으로 소주를 부른다.

민어전과 탕을 잘하는 식당으로 ‘해선 민어마을’이 있다. 올림픽 북2문 근처에 있는 곳으로 민어탕은 매운탕과 맑은탕이 준비되어있다. 기름기가 느껴지지 않는 민어 맑은탕은 깻잎을 넣어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더 느낄 수 있어 좋다. 민어전은 살이 두꺼우면서 부드러워 여느 생선전과는 확실히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민어전만 먹으러 오는 식도락도 많다. 손님에 따라서는 양이 적어 서운할 수도 있으나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남도식당으로 목포신안 임자도에서 산지 직송하여 제공하는 식당이다.
 

‘예전명가’
‘예전명가’

 

민어찜을 대표메뉴로 하는 식당이 청계천 2가에 있던 ‘예전명가’이다. 지금은 을지로 3가 쪽으로 이전하였다. 민어찜은 반건조 민어에 실고추와 양념을 얹어 요리된 것으로 상당히 매력 있는 메뉴이며 콩나물과 미나리를 곁들여 먹으니 토실한 하얀 살의 단맛과 어울려 식도락의 마음을 훔친다. 살점이 통통하니 식감도 좋고 제공되는 호박잎에 한점 싸서 먹으니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오는 듯하다. 미나리가 뜸뿍 들어간 민어 맑은탕은 국물이 뽀얗고 진한 감칠맛이 미나리 향과 더불어 입안에 가득 남는다.

나에게 ‘민어사랑’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전남 영광에 사업장이 있는 지인께서 10여 년 전에 신안에서 잡은 8kg 정도의 민어 한 마리를 나무상자에 넣어 보내온 적이 있다. 처음 경험해 보는 민어 해체 작업에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횟감 썰기, 민어포 뜨기, 내장, 간, 부레 등 모든 일을 집사람이 작은처제와 함께 진땀을 뺀 기억이 있다. 내장, 애는 수육으로 만들어 양념간장에 찍어 먹으니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했고 부레는 참기름 소금장과 함께하니 쫄깃하며 개운한 식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에 느낄 수 있는 큰 선물을 보내주신 기회룡 사장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민어는 나에게 어머니의 손맛과 아들하고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며, ‘민어사랑’이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나에게는 의미 있는 생선이다. 방송과 맛 전문가들이 여름 보양식이라고 소개를 많이 해서 이제는 귀하고 가격도 비싸졌다. 그래도 가성비 좋은 식당이 있는 시내로 가서 더운 여름밤을 식혀보는 것은 어떤지...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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