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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 - 서울에서 맛보는 바다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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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 - 서울에서 맛보는 바다 향기
  • 손영한
  • 승인 2022.07.04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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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⑰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⑰  ‘물회’ - 서울에서 맛보는 바다 향기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⑰  ‘물회’ - 서울에서 맛보는 바다 향기

 

 

[푸드경제신문 손영한] 물회는 생선을 물에 만 것이다. 한여름에 맨밥을 물에 말아먹는 일은 있지만, 생선을 물에 말아먹다니! 하지만 동해안이나 제주지역 사람들은 아침 해장거리로 물회를 즐겼으며 숙취로 쓰린 속 다스리기에는 이 물회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물회는 어부들이 고기잡이하다가 뱃전에서 간단하게 배고픔을 달랬던 소박한 음식이다. 제주 해녀들이 지쳐 허기질 때, 새참으로 물회 한 그릇 먹고 다시 일에 나섰던 음식이다. 이런 물회도 사실 들여다보면 별거 아니다. 길고 가느다랗게 썬 생선회에 채를 썬 무와 배를 함께 올리고 고추장에 비빈 후 맹물을 부어 먹는 것이다.

물회는 우선 생선이 싱싱해야 한다. 씹히는 맛이 푸석하거나 무른 것은 물회가 아니다. 재료는 제각각 독특한 맛이 나는 광어, 우럭, 가자미, 오징어, 한치, 자리돔 등 생선과 전복, 소라, 해삼, 새우 등의 해산물을 같이 곁들여 먹으면 일품이다. 물회에 넣는 야채는 무, 오이, 양파, 상추, 깻잎, 당근, 부추, 배 등 거의 모든 게 가능하고 가늘게 채 썰어 넣는 게 좋다. 국물도 어부들이 뱃전에서 먹는 것처럼 찬물이 고작이나 요즈음은 배를 갈아서 매실액, 오미자액 등을 넣어 맛을 내는 식당도 있다. 양념장은 고추장 외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 파, 겨자, 후추, 물엿, 식초, 참기름, 통깨 등을 섞어 만든다.

하지만 필자는 고추장으로 비빈 회에 찬물을 넣은 물회를 좋아한다. 물회를 먹는 방법은 대체로 회와 야채를 다 건져 먹은 후 따뜻한 하얀 밥이나 소면을 말아먹는다. 하지만 회를 반쯤 먹고 밥이나 소면을 말아먹는 사람, 아예 처음부터 회와 같이 말아먹는 사람, 국물 없이 회를 반쯤 먹은 후 물을 부어 먹는 사람 등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나는 비빈 회를 먹다가 나중에 물을 부어 먹는 스타일이다. 이래야 싱싱한 회 맛을 느끼면서 시원한 물회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차가운 물회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 말아 먹는 맛은 입을 즐겁게 한다.

물회는 크게 세 지역으로 포항물회, 속초물회, 제주물회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회의 대표격인 포항물회는 한번이라도 그 맛을 봤다면 절대 잊지 못하는 음식으로 비린내도 없고 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낸다. 포항물회는 길게 썬 생선회를 고추장에 버무린 후 그냥 맹물을 부어 만든 것으로 그 맛의 원산지가 포항 죽도어시장이다. 이곳의 솜씨 좋은 ‘아지매’들이 채친 생선살에 야채와 함께 고추장 양념을 얹어 사발에 한가득 담아내는 물회의 맛은 현지인뿐만 아니라 외지인의 입맛까지도 사로잡는다. 포항물회는 초고추장이 아닌 고추장을 쓰기 때문에 매콤새콤달콤하지 않고 매콤달콤한 것이 특징이며 다른 물회보다 훨씬 덜 자극적이고 밋밋하여 옛날 음식 같은 맛이 난다. 물회를 죽도어시장에서 먹어야 하는 이유는 그날그날 공동 어판장으로 들어오는 싱싱한 생선에 있다. 어판장과 시장은 지척 간으로 운반거리가 짧아 선도가 뛰어나다. 이렇듯 죽도시장의 포항물회 역사도 벌써 60여 년이 넘었으며 과메기에 못지않은 포항 토속음식이다.

강원도 지역의 속초물회는 동해 청청구역의 해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산물인 가자미, 오징어, 전복, 해삼 등을 이용한 물회가 발달되었으며, 포항지역이 생선회를 중심으로 한다면 속초지역은 해산물을 주 재료로 물회를 낸다. 특히 오징어, 해삼은 오돌오돌 씹히는 식감이 뛰어나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특히 요즈음 제철인 오징어는 제주도 한치만큼이나 식감이 좋아 자주 찾는 물회다. 이 지역의 양념장은 고추장, 식초, 설탕을 주로 섞어 새콤달콤한 맛이 강하고 음식점에 따라 비법양념(?)을 첨가하여 시원한 맛을 더한다. 여전히 오징어, 참가자미 물회가 많으나 요사이 해삼, 전복 물회가 인기몰이하고 있다. 특히 해삼 물회는 씹으면 상쾌한 바다내음이 입안 가득 담기면서 먼 동해바다를 보는 것 같아 눈이 저절로 감긴다.

제주지역의 물회는 역시 자리물회가 으뜸이며 한치물회도 놓치기 아깝다. 자리돔은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물고기로 도미 중 가장 작은 약 5cm 정도의 돔이다. 주로 제주 해안가를 떼 지어 몰려다니며 모슬포 지역 것을 으뜸으로 친다. 제주 사람들은 자리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 물회 외에도 요리방법이 다양하다. 자리물회는 뼈째 얇게 썰어서 된장과 함께 버무려 먹는 것이 특징이며 담담하면서도 뼈와 함께 씹히는 맛이 구수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별미 중에 별미다. 또한 한치는 다리 길이가 한 치밖에 되지 않는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오징어보다 훨씬 부드럽고 감칠맛이 난다. 몇 해 전 초여름에 미국에서 온 중학교 친구와 여러 명이 제주도 여행할 때, 해안가의 한적한 식당에서 한치물회를 먹었는데 어찌나 싱싱하고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지 점심식사인데도 한라산 소주를 여러 병...

 

‘영덕회 식당’
‘영덕회 식당’

 

서울에 포항물회 맛을 내는 곳으로 충무로에 있는 ‘영덕회 식당’이 있다. 고추장으로 비빈 회에 맹물을 부어 먹는 옛날 스타일의 물회 식당이다. 고향 친지분이 직접 담근 재래식 고추장을 사용하여 맛이 깊고 구수하다. 옛날 맛의 포항물회로서 손색이 없고 막회도 ‘영덕막회’라는 이름이 유명하듯 이곳도 싱싱한 회를 제공하는데 양념장과 잘 어울리는 물회와 가자미, 광어 외에 청어 등 막회를 같이 내놓는다. 주인의 회 비비는 솜씨가 뛰어나 침샘을 자극한다. 무교동에 동일한 이름의 식당이 있으나 이 식당은 중구청 뒤에 있다. 한 곳에서 오랫동안 영업해 온 노포 식당으로 고추장 맛이 좋은 나의 단골집이다.

송파동에 강원도 지역의 물회를 내는 ‘부부횟집’이 있다. 이 집은 강원도 고성군의 유명한 ‘부부횟집’과 같은 집으로 양념, 재료 등 모두 본점과 같다. 재료는 고성에서 직접 수송되며 가자미, 숭어, 강원도 방어, 오징어, 해삼 등을 그때그때 잡히는 생선으로 섞어 내놓는다. 물회 양념장은 속초지역 물회답게 약간 자극적이고 국물에 탄산 맛(?)이 들어 있어 호불호가 있으나 시원한 맛은 계절 음식으로서 손색이 없다. 또한 속초시내에 있는 ‘청초수 물회’ 집이 압구정역 근처에 있다. 이 집은 속초에서 한 건물 전체를 물회집으로 영업하는 곳으로 물회와 섭국으로 유명한 횟집이다. 이 집 물회는 전복, 해삼, 멍게, 날치알 등이 횟감과 같이 들어 있어 타 물회와 구별되며 사골육수를 사용한 국물은 살짝 얼려 빙수처럼 만들어 쓴다. 처음에는 회, 해산물 위주로 먹다보면 나중에 빙수가 녹아 물회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 외에 섭국 등 메뉴가 다양하여 손님들의 연령층이 두껍다. 두 집의 물회 모양이 약간 다르나 동해안 바다를 연상케 하여 여름철에 자주 가는 식당이다.

 

광화문 '한라의집'
광화문 '한라의집'

 

제주 자리물회를 내는 집으로 광화문에 ‘한라의 집’이 있다. 이 집주인은 제주도 출신으로 중학교 은사님 소개로 오래전부터 다니던 제주 전문 식당이다. 은사님도 제주도가 고향으로 교장선생님을 역임하시고 몇 년 전에 지병으로 운명을 달리하셨다. 이 집만 보면 은사님 생각에 잠기곤 한다. 30여 년 전 ‘스승의 날’에 중학교 친구들과 그 당시 교육청 장학관으로 계신 선생님이 소개하여 모시고 간 식당으로 이곳에서 처음 맛본 것이 자리물회다. 그때는 익숙하지 않은 자리돔이 좀 센 듯하면서 딱딱하게 씹히는 생선으로 느껴져 맛을 몰랐으나, 2~3번째부터는 오독오독하게 씹히는 맛이 기가 막히고 국물에서 우러나오는 된장 맛이 어우러져 구수한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집 메뉴로는 갈치회·국, 고등어회, 소라, 성게국 등 제주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모든 재료는 매일 비행기로 공수한다. 이 집은 선생님하고의 추억으로 자리매김한 곳으로 선생님의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식당 2층 허름한 공간에서 선생님의 고향 술인 허벅술과 한라산 소주로 선생님과 대화의 꽃을 피운 시절이 그립다...

이제 여름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에 뭘 먹어도 입안이 꺼끌거리고 딱히 당기는 게 없을 때 온몸을 한 순간에 시원하게 해주는 물회는 어떤지! 그립고 보고 싶은 은사님의 추억을 따라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으로 가려 한다.
 

·사진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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