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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⑮ ‘베이징덕’ - 호사스런 껍질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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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⑮ ‘베이징덕’ - 호사스런 껍질의 향연
  • 손영한
  • 승인 2022.06.07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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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⑮ ‘베이징덕’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⑮ ‘베이징덕’ 

 

[푸드경제신문 손영한] 북경 오리 구이는 중국 원나라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요리로 ‘베이징덕’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음식이며 중국에서는 ‘베이징 카오야’라고 부른다. 전통 방식으로 특별하게 키워진 오리의 껍질과 속살 사이에 공기층을 만든 다음 갈고리에 걸고 달콤한 소스를 여러 번 바르면서 3~4시간 동안 화덕에 강한 불로 안팎을 굽거나 직화구이 방식으로 요리하는 것으로 가정에서 흔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껍질이 과자처럼 바삭바삭해져 고소한 맛이 난다. 그 맛이 베이징덕의 특징이며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은 살코기를 분리하여 껍질만 따로 내놓는다. 사실 이런 방식의 요리는 사치스러운 식사법으로 중국 궁중에서 상류층만이 즐기는 음식으로 달큰하고 고소한 껍질만 먹는 호사스러운 음식일 수 있다.

요즈음 베이징덕을 요리하는 식당들은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 껍질만 적당한 크기의 사각형 모양으로 커팅한 다음 다시 원래 모양대로 맞춘 오리를 통째로 손님에게 다시 보여주는 것이 예의이다. 얇은 밀전병에 껍질 한 조각을 올리고 길쭉하게 썬 파를 소스에 찍어 얹은 다음 밀전병에 싸서 먹는데 껍질의 고소함과 소스, 야채의 조화가 일품이다. 전통적으로 베이징덕 먹는 방식이 이렇게 껍질만 따로 먹는 것이다.

껍질만 먹는 방식 외에 바삭한 껍질과 담백한 속살을 함께 편편이 떠내는데, 껍질과 살이 붙어 있어 또 다른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살까지만 손질하는 것으로 껍질은 바삭하고 그에 붙은 살코기는 촉촉하여, 밀전병과 부재료들과 함께 먹는 맛이 특별하다.

대부분의 전문점에서는 3단계로 조리하는데 손질한 오리 껍질을 먼저 손님상에 놓은 다음, 남은 오리고기를 야채와 함께 볶음으로 요리하고, 마지막에 등뼈 등을 푹 고아 탕으로 제공한다. 모두 특색이 있어 맛이 좋다. 따라서 베이징덕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전문 식당을 찾는 게 좋다.

 

북경오리구이 전문 ‘베이징덕’

북경오리구이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으로 압구정역 근처에 ‘베이징덕’이 상호인 식당이 있다. 이 식당에서는 껍질 따로, 살코기 따로 손질하여 한 접시에 내놓는다. 껍질은 일정한 크기가 아닌 다양한 모양의 조각으로 손질되어 있고 퍼즐을 맞추듯 살코기 위에 얹혀 있어 예술 조각품을 보는 듯하다. 오리고기가 담긴 접시 위에 포장하듯 덮여있는 다각형 모양의 손질된 껍질은 고유의 색깔과 함께 이미 시각적으로는 맛을 뛰어넘은 것 같다. 같이 제공되는 파채도 색깔과 모양이 정갈하고 두 가지 소스를 껍질과 함께 먹으니 바삭함과 고소한 맛이 입안을 즐겁게 한다. 밀전병도 은은한 색깔이 있어 이채롭고 제공되는 땅콩 요리도 여러 번 리필할 정도로 맛있다. 특히 밀전병이 얇아 오리 껍질의 맛을 오로지 느낄 수 있으며 특유의 밀가루 냄새도 없어 식감이 좋다. 또한 고소한 껍질과 담백한 살을 따로 맛볼 수 있어 손님의 식성에 따라 즐길 수 있으며 어린아이들에게도 부담이 적다. 순수한 맛의 베이징덕이라 할까.

식당 내부 벽에는 베이징덕에 대한 설명 안내문이 걸려 있어 요리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신뢰가 느껴진다. 큰 오리를 사용하여 양이 넉넉하고 반 마리도 주문이 가능하며 실내도 넓고 조용하여 직장인과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중식당 ‘덕후 선생’

중국 북경 현지 분위기의 중식당인 ‘덕후 선생’이 있다. 이 식당은 대표메뉴가 베이징덕이며 주문한 오리를 손질하기 전에 통째로 보여주는데 윤기가 짜르르 흐르는 것이 오리의 색깔과 식당 조명이 어우러져 광택이 난다. 또한 구운 오리의 고유번호가 찍힌 QR카드와 함께 표시되어 있어 왠지 색다르고 재미있다. 다른 식탁에서 손질된 오리는 껍질만 담은 접시와 일부 껍질이 붙어있는 고기 접시로 구별하여 내놓는다. 같이 곁들이는 밀전병, 파채, 오이채와 소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껍질의 바삭한 식감은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맛있다. 껍질이 붙어있는 살코기는 고소한 맛과 촉촉하고 담백한 고기 맛이 어우러져 또 다른 식감을 느낄 수 있으며 모양도 가지런하게 손질되어 있어 보는 눈도 즐겁다. 손질된 껍질과 살코기가 몇 점 되지 않아 맛있다고 급하게 먹는 것보다 천천히 먹어야 되는 음식으로 느껴져 괜히 점잖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나머지 고기들은 오리 튀김으로 조리하여 주는데 추가 요금이 요구되어 조금은 불편하다.

식당 내부는 중국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예쁘게 잘 정돈되어 있고 오리를 굽는 화덕이 다 보이는 완전히 개방된 주방과 바 테이블, 원탁형, 사각형 모양의 식탁이 잘 배치되어 있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은 아들(준오)의 추천으로 가족이 다 함께 간 추억이 있는 식당으로 내부 장식이 재미있고 이색적이라 기분이 좋다.

그 외 많은 요리가 있으며 특히 ‘쯔란갈비’는 꼭 먹어 보아야 할 메뉴이다. 재료는 돼지갈비이며 마늘과 쯔란(향신료)이 들어있는 요리로 살이 툭툭 떨어질 정도로 풍미가 가득하여 메인 메뉴인 베이징덕을 뺨칠 만큼 맛이 고급스럽다. 돼지갈비가 정말 크고 소스와 잘 어울리는 요리이나 쯔란 향에 대한 호불호가 있어 조심스러워진다. 이렇듯 메뉴가 다양하여 여러 명이 같이 가기 적합한 식당으로 베이징덕은 미리 주문해야 먹을 수 있으며 크기가 조금 작은 듯하여 아쉬웠으나 맛이 좋아 용서(?)가 된다.

다른 요리 방식의 오리구이를 하는 식당이 역삼동에 위치한 ‘신정’이 있다. 이 식당은 고기, 한식을 주 메뉴로 오랫동안 영업해 온 곳으로 단골손님이 많다. 오리구이가 대표메뉴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징기스칸 요리가 주 메뉴이다. 이 집은 정통방식의 베이징덕하고는 살짝 비껴간 일반 오리구이이다. 잘 구워진 오리는 껍질과 함께 살, 뼈도 같이 통째로 여러 조각으로 손질되어 있어 뜯어먹는 재미가 있다. 오리구이는 속살이 입에 감길 정도로 부드러우며, 바삭한 껍질과 함께 먹는 식감이 훌륭하다. 특히 오리 다리는 어찌나 촉촉하고 찰진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베이징덕이 아닌 이 식당의 오리구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맛과 향이 훌륭하고 이 식당만의 굽는 기술이 탁월하여 한국판 베이징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리 방식의 중요한 요소는 기름을 완전히 빼지 않는 솜씨와 품질 좋은 오리만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리구이를 먹은 후 국수전골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수제 국수의 쫄깃함과 시원한 맛의 육수, 신선한 소고기가 어우러지는 국수전골은 달콤한 파채를 곁들이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 주는 것 같다. 남은 육수에 끓여주는 죽 한 그릇은 덤이다.

이렇듯 베이징덕은 특별한 날, 만나서 기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즐거움을 선사하는 귀한 음식이다. 가족과 함께 하면 더욱 좋은 음식, 베이징덕. 창가 너머 정원이 보이는 식탁에서 오리구이와 국수전골을 함께 먹는 아들 준오를 떠올려 본다.
 

글·사진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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