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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네 이야기① – ‘광장시장’ (옛 동대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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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네 이야기① – ‘광장시장’ (옛 동대문시장)
  • 손영한
  • 승인 2022.05.2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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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⑭

[푸드경제 손영한] 동대문 시장은 종로구 예지동, 종로5가의 일부 지역으로 1905년에 재래시장으로 개설되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광교, 장교 다리의 이름을 따 ‘광장시장’으로 불리었으며 주로 포목 상가 주변을 지칭하였다. 지금은 동대문 시장하면 광장시장과 주위의 평화시장, 방산시장, 신평화시장, 종로6가 상가 지역을 포함한 전체를 뜻하지만, 나는 지금도 광장시장을 동대문 시장으로 부른다.

동대문 시장은 모든 생필품과 식품, 관혼상제의 모든 것이 있어 손님이 원하는 상품 100% 준비되어 있는 시장이다. 과거에는 군수품과 밀수품(초콜릿, 화장품, 양담배, 양주, 청바지 등)도 취급하였으며 해외여행 후 가져온 물건이나 달러도 교환되었던 곳으로 달러 환전 아주머니들이 단속반을 피하며 장사를 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해외여행도 어렵고 은행에서의 달러 교환도 제한이 있어 암시장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풍경이지만 궁핍하고 어려운 시절의 한 단면으로,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상가 외에 먹자골목도 크게 형성되어 있어 시장에는 손님들과 관광객으로 항상 붐빈다.

내가 생각하는 동대문 시장에 대한 추억은 어머니와 함께 자주 다닌 기억으로 그때마다 어머니는 시장 먹거리 중 하나인 순대를 사주셨다. 시장 가운데쯤에 펼쳐져 있는 순대 가게의 길고 낮은 의자에 앉아 순대와 내장(허파, 간, 오돌뼈 등)을 한 접시 시켜 고춧가루가 들어가 있는 소금에 찍어 맛있게 먹었으며 어머니는 간 몇 점과 순대 꼬랑지만 드신 것으로 기억된다. 큰 대야 그릇에 모시 천으로 덮여 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순대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돼지 곱창에 선지와 당면, 찹쌀, 야채 등을 넣어 만든 순대는 아주머니가 직접 집에서 쪄서 그날그날 파는 것으로 신선하고 구수한 맛이 최고였다. 가끔은 옆 가게의 잡채, 청포묵, 우뭇가사리묵도 어머니와 함께 먹은 기억도 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해삼과 멍게를 늘어놓고 즉석에서 썰어 내어 파는 리어커 노점상에서 어머니와 같이 먹은 추억도 있다. 무에 꽂혀 있는 옷핀으로 해삼을 찍어 초고추장과 함께 먹는 맛은 상상 그 이상이며 양념 고추장은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이렇게 맛있을까 하며 접시에 남아 있는 초고추장까지 싹싹 먹은 기억이 난다. 어린 나는 멍게의 물렁 하고 쌉쌀한 맛보다는 오돌오돌 씹히는 해삼을 더 좋아했다. 어머니는 ‘멍게의 쌉쌀한 맛은 입맛이 없을 때 식욕을 돋우어 준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머니와 함께한 동대문 시장의 길거리 주전부리는 지금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사 달라고 징징대는 나의 모습과 함께...

또한 순두부를 담은 항아리를 싣고 다니면서 순두부를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작은 양은 그릇에 항아리 속에 있는 따끈한 순두부를 건져 양념간장과 함께 서서 먹는 야들야들한 순두부도 그리워진다. 저녁 무렵 술 한잔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해장으로 먹은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런 맛들은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깊은 기억 속 보물창고에 간직된 맛이라 생각된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건을 많이 산 경우에는 시장 내에 있는 지게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싣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 운반수단이 지게였으니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지게 아저씨에게 꼭 설탕물을 타 주셨다. 어머니는 집에 오시는 우체부, 수도·전기 검침원, 인천에서 오시는 새우젓 장사 아줌마에게 설탕물을 타 주셨던 모습이 생생하다.

현재 광장시장은 청계천 복원 사업 후 더 유명해진 재래시장으로 먹자 거리와 시장 물건을 파는 구역으로 구별되는 듯하다. 천장 아래 반짝이는 노점상의 불빛과 굵기가 어린이 팔뚝만한 ‘왕순대’, 찰랑이는 기름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소한 빈대떡 냄새, 보리비빔밥·칼국수 등의 별미, 인기 있는 마약 김밥과 더불어 산처럼 쌓인 옷감 더미, 한복과 이불, 화장품과 다크 초콜릿 등의 수입 가게는 구경할 만하다.

시장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최고의 도심 산책 코스인 청계천이 있으니 광장시장이야 말로 최고의 맛집 기행지인 셈이며 또한 고궁과 가까이 있어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림 손영한
그림 손영한

 

먹자 거리의 음식 중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빈대떡과 보리 비빔밥, 칼국수, 마약 김밥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빈대떡은 여러 집이 성업 중이어서 어느 집이 원조인지 내 기억이 쫓아가지 못하지만 모두 손님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빈대떡이 너무 두껍고 요리 방법이 부치는 것보다는 튀기는 것 같아 내 입맛에는 좀 거친 것 같다.

빈대떡에 대한 추억으로는 친구들과 광장시장에 방문하여 맛있게 음식과 술을 먹은 후, 그중에 이촌동에 사는 친구가 빈대떡을 포장하여 갔는데 지하철에 놓고 내린 적이 있어 아직도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다. 이러한 먹거리 가게들을 지나가면 비좁고 시끌시끌한 시장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쪽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식당 가게로는 매운탕을 잘하는 ‘은성회집’이 있다. 간판에는 횟집이라 쓰여 있지만 회는 없고 대구 매운탕으로 유명한 집으로 부위별로 대구살, 알, 내장까지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 손님 식성에 맞게 맞추어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학창 시절부터 다녔던 50년 이상 된 식당으로 대구 곤이와 알도 가득하여 땀 흘려가며 먹는 얼큰한 대구탕이 맛있으며 민물새우와 미나리를 넣어 한결 시원하다. 시장답게 가격도 착하고 젊은 손님과 단골손님이 많아 시끌시끌하며 가게 입구에 매운탕 건더기가 담긴 냄비를 겹겹이 쌓아 놓은 것이 이채롭다.

광장시장 먹자골목 중 제일 핫한(?) 곳이 ‘육회자매집’일 것이다. 은성횟집 근처 골목길에 있는 이곳도 40여 년 이상 된 집으로 학창 시절에는 이 식당만 있었는데 이제는 그 골목길이 ‘육회 거리’로 불릴 만큼 유명한 곳으로 아들, 동서와 함께 여러 번 방문한 식당이다. 가성비도 좋아 젊은 손님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져 광장시장의 빈대떡과 함께 먹거리 일번지가 된 듯하다. 색깔 좋은 고기 위에 달걀의 노란 노른자가 어우러져 침샘을 자극한다. 손님이 워낙 많아 고기 회전율이 좋아 신선하고 젊은 손님들 식성에 맞게 양념을 하여 인기가 많다. 지금도 광장시장에 가면 꼭 들러서 먹으려 하나 대기 줄이 많아 어렵다. 시장 내 음식점들은 대부분 일요일에도 영업하여 손님들을 맞이하는데 이 식당은 언제부턴가 일요일은 휴무여서 나로서는 좀 아쉽다. 이 집 무국도 육회와 잘 어울린다.

종로 5가에 위치한 광장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재래시장의 맛과 멋을 간직하고 있어 나로서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장소이며 가끔 친구들과 시내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안주 삼아 추억을 더듬는다. 지금도 주연, 준오와 함께 그곳에 가면 가슴이 쿵쾅 거리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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