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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현대판 '은행강도'와 뻥 뚫린 은행 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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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현대판 '은행강도'와 뻥 뚫린 은행 금고
  • 유인근 국장
  • 승인 2022.05.19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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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유인근 편집국장]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은 넷플릭스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2위에 오른 기록이 있는 인기작이다. 교수라고 불리는 한 천재가 8명의 범죄자들을 모아 금고를 터는, 현대판 은행강도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도 인기를 끌어 한국판이 곧 개봉될 예정이다. 

시즌5까지 나온 이 드라마의 배경은 스페인 조폐국과 스페인 중앙은행이다. 범인들은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 돈과 금을 털어가기 위해 터널을 뚫는 등 절묘한 방법을 동원한다. 

뜬금없이 해외 드라마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종이의 집'이 상징했던 은행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드라마에서 강철 벽 안에 지폐를 보관하는 은행 금고를 보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강철 금고를 터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은행의 최첨단 보안시설을 무력화 시키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과거엔 서부영화의 단골손님이었지만, 21세기를 사는 현실에서 은행강도는 씨가 마른지 오래다. 은행털이라니... 그런데 최근 은행이 털리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잇따라 발생해 귀를 의심케 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은행 2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먼저 지난 4월 말 우리은행 직원이 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터졌다. 이날 우리은행은 직원 A씨가 3차례에 걸쳐 회사 자금 614억5214만6000원(잠정)을 횡령한 혐의가 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횡령금 대부분은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에 참여했던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에 우리은행이 돌려줘야 하는 계약보증금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조사 결과 차장급에 불과한 A씨가 횡령한 금액은 며칠 뒤 40억원이 더해져 644억원으로 늘어났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신한은행에서도 직원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우리은행 직원의 횡령사건을 계기로 자체 감사를 벌이던 신한은행이 한 직원의 횡령을 감지한 것. 신한은행은 5월 16일 자체 내부통제 시스템을 통해 부산 한 지점의 직원 A씨가 2억원 규모의 자금을 횡령한 사건을 찾아내 감사부에서 조사 중이라고 알렸다.  

연이어 터진 대형은행의 횡령사고에 국민들은 놀라기보다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총질이 난무하는 서부시대도 아니고, 선진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전 근대적인 일이 터질 수 있는 것인지 말문이 막혔다. 고객들은 대형 시중은행에서 잇따라 횡령사고가 발생하자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두 은행의 횡령사건은 고객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오죽하면 "동네 편의점보다 못하다"라는 비난이 쏟아졌을까. 

현대판 '은행 강도'는 내부에 있었다. 고객들만 몰랐지 은행 내부 직원의 횡령 사건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에서 모두 86건에 달하는 횡령·유용 사고가 벌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횡령·유용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으로 각각 22건에 이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신한은행 16건, 우리은행 15건, KB국민은행 11건 순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이들 은행의 횡령 피해금액은 150억원에 달했다. 하나은행 8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NH농협은행(29억원), 우리은행(27억원), 신한은행(7억원), KB국민은행(3억원) 순이었다. 

은행법에 따르면, 횡령 금액이 10억원 미만이면 따로 공시할 의무도 없고, 금융감독원 보고 금액이 3억원 이상으로 되어 있어 대부분 자체해결을 통해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횡령사건이 터질때마다 은행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직원 교육을 철저히 하고 금융사고 예방 시스템을 정비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당연히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감사 제도가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금융 및 보안업계에서는 은행 시스템이 돈을 빼돌리기 너무 쉬운 구조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경우도 횡령 사고를 막았어야 할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에는 허울뿐인 감사제도도 한 몫했다는 지적이다. 

더 이상 직원의 횡령을 개개인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사건이라고 치부해버려서는 안된다. 적발 시 당사자를 엄벌하는 시스템은 물론이고, 관리의무 소홀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금융위가 관련 임원들을 제재하는 것이 필수다. 

고객과 은행 사이에 내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가 무너진다면 은행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이자놀이도 좋지만 더 늦기 전에 고객의 권익 보호와 금융범죄 예방을 위해 진심을 다하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은행 금고가 내부의 강도에 의해 또다시 뻥 뚫리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고 집요한 내부 점검이 필요하다.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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