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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위로와 힘을 주는 ‘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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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위로와 힘을 주는 ‘곰탕’
  • 손영한
  • 승인 2022.03.23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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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⑩

 

[푸드경제 손영한] 큰솥에 한솥 고아내면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음식이 곰탕이다. 따뜻한 곰탕 한 그릇이 일상의 어려운 일과 힘든 생활에 위로를 준다. 곰탕은 맑은 국물이 특징인데 설렁탕과 달리 소곱창, 양, 소고기를 넣어 끓이는 것으로 진한 국물과 기름진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며 요즈음은 기름을 걷어내어 깔끔한 맛을 내는 곳이 많다. 예로부터 곰탕을 고아 낼 때에는 간장으로 간을 하였으며 지금도 일부 곰탕집에서는 간장을 사용하여 밑간을 하고 식탁에서는 손님 식성에 따라 소금과 후추를 추가하여 입맛에 맞추어 먹는다. 소금은 왠지 굵은소금(천연소금)을 넣어야 할 것 같다.

곰탕은 주로 소고기를 사용하여 고아내므로 육수 자체가 맑은 색의 국물이고 고소한 맛이 그 속에 숨어있다. 이에 비해 설렁탕은 소의 뼈와 도가니, 잡육(소고기)을 한꺼번에 큰 솥에 넣어 상당 시간 끓인 음식으로 사골을 중심으로 육수를 만들어 하얗고 뽀얀 색을 내는 국물이 특징이다. 요즈음 일반 식당에서는 곰탕과 설렁탕의 이름을 구별 없이 사용하는 식당도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곰탕은 기름을 빼고 먹어야 깔끔한 육수 맛을 더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주문 시 특별히 부탁한다.

곰탕은 사용하는 고기의 질에 따라 육수의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따라서 질 좋은 고기(한우, 육우, 수입고기)로 어느 부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손님의 선호도가 가려지고 가격 또한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곰탕의 맛을 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손님 식탁에 놓이는 질 좋은 소금과 신선한 대파로, 이같은 양념을 곁들이면 한층 더 깊은 맛과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약간의 후추를 넣으면 칼칼한 맛과 대파의 향기가 어우러져 코와 입이 행복해진다. 곰탕은 밥과 뜨거운 육수를 함께 토렴하므로 따뜻한 온기를 보존하기 위해 유기그릇을 사용하면 식사하는 동안 적당한 온도로 맛을 유지한다. 곰탕집에서 주로 전통 유기그릇을 사용하는 이유이다. 반찬 그릇이나 수저도 놋그릇을 사용하여 멋이 나고 분위기도 즐겁다. 이와 달리 설렁탕은 뚝배기에 음식을 직접 담아 끓여 내므로 토기 그릇을 사용한다. 따라서 설렁탕은 뜨겁게, 곰탕은 따뜻하게 먹는 음식이다. 곰탕은 배추김치보다는 깍두기가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깍두기가 곰탕의 맛을 좌우한다는 미식가들도 있다.

곰탕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외갓집은 경기도 소사읍(부천) 미산리이다. 어릴 적 방학 때가 되면 서울역에서 경인선을 타고 소사역에 내려 버스로 외할머니 댁에 가곤 했다. 외할머니 댁은 3대가 한집에 같이 사셨는데 그래서 외할머니가 힘든 시집살이를 하셨을 것이다. 하루는 외할머니께서 큰 가마니 솥에 소머리와 소 부산물을 넣고 푹 고아 곰탕을 만들던 중 고기가 무척 드시고 싶으셨는지 솥뚜껑을 열고 김이 많이 나는 상태에서 얼른 한 국자 떠서 부엌에서 허겁지겁 잡수셨다. 나중에 증조 외할머니가 “이 소는 왜 눈이 한 개 밖에 없냐?”는 말씀에 외할머니가 곤욕을 치르셨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시골의 컴컴한 부엌에서 급하게 잡수신 것이 하필이면 소 눈알이라니, 외할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졸였는지 두고두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명동 하동관

 

명동 하동관
명동 하동관

 

오랜 세월 동안 서울식으로 곰탕을 내는 식당이 있다. 중구 명동에 있는 ‘하동관’이다. 이 식당은 서울에서 곰탕으로만 80년 이상 영업중인 노포 식당이다. 원래는 청계천변 수하동에 있었으나 재개발로 인하여 명동으로 이사하면서 사용하던 간판과 대문을 그대로 옮겨와 옛 추억을 전해주고 있다. 하동관의 간판 글씨체는 강직한 힘을 느끼게 하는 기운이 있다. 이곳의 육수는 맑고 맹숭맹숭하게 보이나 누린 냄새 없이 담백한 맛을 내고 있어 지금도 많은 손님이 찾고 있다. 특히 이 집 깍두기는 소금과 새우젓으로 맛을 낸 서울식 깍두기로 시원하고 감칠맛이 좋아 곰탕과 더불어 손님들이 매우 좋아한다. 곁들여 먹는 수육은 부드러운 살코기와 쫄깃한 식감의 내포가 좋아 소주 한잔을 불러온다. 이곳은 나와 아들(주노)이 자주 다니던 식당으로 특히 아들이 군 생활할 때 보온통에 하동관 곰탕과 수육을 담아 면회를 간 적이 있는데 맛있게 먹는 아들의 모습이 기억에 새록새록하다. 지금도 가끔 이 식당에 들러 따뜻한 곰탕과 내포 수육 한 점 먹으면 아들하고의 추억이 절로 생각이 난다.

서울에는 하동관이란 이름으로 직영점 등 여러 식당이 있는데 다 비슷한 맛을 유지하고 있어 굳이 본점과 구별하여 찾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방이동 ‘라미옥’

 

방이동 ‘라미옥’
방이동 ‘라미옥’

 

새로운 분위기와 또 다른 맛을 내는 곰탕집이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라미옥’이다.

올림픽공원 건너편 대로변에 있고 내부는 현대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기존 곰탕집 분위기에서 벗어난 음식점이다. 식탁, 의자, 실내 장식 등이 모던하고 전시관 같은 느낌이 들며 식탁과의 간격도 넓어 다른 손님들과 독립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다른 곰탕집에 비해 품격이 스며있는 조용한 현대식 곰탕집으로 왠지 와인 한잔을 하고 싶은 분위기이다.

그러나 곰탕의 맛은 옛 방식 그대로를 지향하고 있고 특히 육수 맛을 좌우하는 소고기, 곱창, 양은 국내산 한우만을 사용하여 신뢰를 준다. 육수는 약간의 간장 빛이 도는 듯 맑고 잡내 없는 깔끔한 맛을 낸다. 모든 식기는 유기그릇을 사용하여 곰탕의 온도를 유지하며, 밥과 함께 여러 번 토렴하여 밥알 사이사이에 육수의 간이 스며들어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 난다. 향긋한 대파를 함께 넣어 먹으니 금방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곰탕을 토렴하는 이유는 곰탕은 따뜻하게 먹는 것이지 펄펄 끓여 먹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기 양도 박하지 않아 주변 경치와 더불어 넉넉한 마음을 느낀다. 수육 고기와 내포 역시 잡내가 없어 육장에 찍어 먹으니 구수한 맛이 시원한 깍두기와 어우러져 실망할 일이 없다. 전골도 풍성한 야채가 눈에 띄며 다양하고 품질 좋은 부위별 고기가 들어 있어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나주 100년 전통의 ‘하얀집’

곰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집이 전남 나주에 있는 ‘하얀집’이다.

지역에서 상당히 유명한 식당으로 나주 곰탕이라는 별칭을 갖게 한 100년 된 노포 식당이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 나주곰탕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하는 집이 상당히 많을 정도로 곰탕의 고유 명사가 된 ‘나주곰탕 하얀집’이다. 이 집 곰탕은 대파와 계란지단, 약간의 고춧가루를 뚝배기에 담아 내놓는다. 이 집 또한 깔끔하고 투명한 국물이 시원하고 살코기도 소금 기름장에 찍어 먹으니 출장지에서의 피곤함이 사라지는 듯하다.

친절한 주인 덕에 육수를 추가하여 먹으니 소박한 맛과 구수하고 푸짐한 뒷맛이 언제 들러도 흡족하기 이를 데 없는 남도 인심이 느껴진다. 하얀집에 대한 맛의 평가는 너무나 유명한 식당이라 글로 표현보다는 직접 방문하여 맛과 남도의 멋을 즐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향기 좋은 대파와 간수 빠진 천연소금, 후추를 곁들인 곰탕의 맑고 깔끔한 육수와 토렴 된 밥알의 매끄러운 느낌과 맛을, 새우젓으로 잘 담근 깍두기와 함께 먹고 나면 절로 훈훈한 기운을 느끼니 기분이 좋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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