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0:35 (토)
실시간뉴스
만두, 사랑과 꿈을 담은 행복주머니
상태바
만두, 사랑과 꿈을 담은 행복주머니
  • 손영한
  • 승인 2022.03.07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⑨
만두, 사랑과 꿈을 담은 행복주머니
만두, 사랑과 꿈을 담은 행복주머니

 

[푸드경제 손영한] 만두는 참 독특한 매력이 있다. 주식인 듯 간식인 듯, 대중음식인 듯 고급 음식인 듯하고... 바쁠 때는 몇 개만 먹어도 배부르고 맛있는 만두, 고향이 그립고 외로울 때 먹는 만두, 퇴근길에 증기솥 만두를 사서 품에 품고 집으로 가는 마음이 담긴 음식... 이처럼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 추억과 회환, 희망을 주는 음식이 또 있을까?

어머니는 1년 중 설날에 가장 많은 양의 만두를 만드셨다. 설날에는 모든 음식을 며칠 전부터 준비하셨는데 만두와 빈대떡만큼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설 하루 전에 만드셨다. 설 전날 저녁부터 밤새도록 온 가족이 만두소를 넣은 큰 스탠 양푼 주위에 빙 둘러앉아 숟가락으로 만두소를 만두피에 얹고 끝을 오므려 예쁘게 만들던 기억이 난다. 만두피는 홍두깨로 얇게 밀어 주전자 뚜껑으로 꾹꾹 찍어 눌러서 동그랗게 만들었다. 나는 주로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만두피를 찍어내는 일을 했는데 만두피를 예쁘게 많이 만들려고 촘촘하게 찍어내려고 애썼다. 친척이 많이 오는 명절에는 만들어야 하는 만두 양도 어마어마해 넓은 대나무 채반 수십 개에 만두가 가득 담길 만큼 많이 만들었다.

이렇게 모든 식구들이 모여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만두를 만들고는, 설날 아침에 만두를 먹으면서 누가 더 예쁘게 만들었는지 밥상을 앞에 두고 웃음꽃을 피웠다. 설날 만두를 만드는 과정은 추석 때 송편 만드는 것과 똑같다. 설날에는 어머니께서 떡국에 2~3알 정도의 아담하고 동그란 만두와 함께 고명으로 계란지단, 소고기를 넣어 떡만둣국을 만드셨으며 별도 접시에 찐만두를 담아 내놓으셨다. 아마도 떡국과 만두를 식성에 따라 먹을 수 있도록 따로 만드신 것 같다. 이제 와 생각하니 어머니는 밥상에서도 배려가 있으셨던 것 같다.

만두에 대한 지역적 특성을 보면 경기 이북(평양, 개성) 지역에서는 주로 만둣국을, 경기 이남 지역에서는 떡국을 즐겨 먹었으며 그 중간 지역 서울에서는 떡만둣국을 선호하였다. 또한 만두 크기, 만두소, 만두피도 각 지역마다 약간씩 다른데 만두 크기는 평양만두가 가장 크고, 그다음은 개성 만두이고 서울 만두가 가장 작으며 만두피도 가장 얇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만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만두소이다. 옛말에 ‘떡 먹자는 송편이요, 소 먹자는 만두’라 하여 만두는 만두소 맛으로 먹고 만두는 알이 꽉 차야 제맛이 난다고 하였다. 또한 잘 다져지고 물기를 뺀 속살이어야 푸석하지 않고 식감이 좋고 부드럽다. 만두소는 사랑과 꿈을 넣는 것이고 모양은 속마음대로 빚어지는 것으로 마음이 둥근 사람은 둥글게, 각진 사람은 각지게 빚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는 만두소 재료로 두부, 숙주, 배추(김장김치) 등을 잘 다져 넣고 손으로 꽉 짜서 물기를 없앴다. 두부조차 물기를 빼기 위해 모든 소를 모시 보자기에 싸서 녹두 갈 때 쓰는 맷돌을 올려놓고 하루를 지새워 만두소의 물기를 뺐다. 물기가 모두 빠진 만두소에 양념을 추가하여 버무려 놓으면 두부의 담백함과 야채의 은은한 향기가 있는 우리 집만의 만두소가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야 만두소 맛이 달아나지 않고, 얇은 만두피 맛과 더불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봄눈 녹듯이 스르르 사라진다. 어머니의 만두는 속 터진 것조차 맛있었고 나는 속 터진 만두를 보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만두소가 그렇게 터져 버린 것이 서러워도 웃으면 그만인 것을 나중에 철(?)들어 알았다...

지금은 속재료가 무엇인가에 따라 야채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등 여러 종류의 만두를 만들 수 있고 요리하는 방법에 따라 물만두, 찐만두, 군만두 등이 있으며 만두피도 두툼한 것부터 얇은 피까지 다양한 만두가 만들어져 식도락들의 마음을 훔친다.
 

황해도식 만둣국 ‘봉산옥’

 

황해도식 만둣국 ‘봉산옥’
황해도식 만둣국 ‘봉산옥’

 

이렇듯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만두를 간직하며 명성을 이어가는 식당으로는 황해도식 만둣국을 자랑하는 서초동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는 ‘봉산옥’이 있다. 사골육수 만둣국에서 살짝 비껴간 깔끔하고 담백한 맛의 맑은 국물이 자극적이지 않고 시원하다. 황해도식 만두답게 크기도 큰 편으로 만두소는 고기와 배추, 숙주가 들어있고 속이 보일 듯한 적당한 만두피는 보기에도 좋다. 만둣국에는 고춧가루 양념이 되어있는 고기 고명을 사용하여 눈으로 보는 맛도 좋다. 약간 칼칼할 수 있으나 같이 제공되는 공깃밥을 만두 육수에 살짝 담가 먹으니 밥알과 육수의 깔끔한 맛이 입에서 느껴진다. 녹두 빈대떡도 수준급으로 은은한 녹두 향과 노릇노릇 구워진 한 조각을 양념간장에 찍어 먹으니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함경도 아바이 순대를 연상하게 하는 오징어순대도 맛 볼만하다.
 

가정식 만두 ‘갯마을’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단정한 만두를 내는 식당으로 동부이촌동의 ‘갯마을’이 있다. 이 식당의 주메뉴도 만둣국이며 만두 크기가 작아 한입에 먹을 수 있고 육수는 진한 듯 진하지 않은 육수로 집에서 먹는 만둣국과 거의 흡사하여 슴슴한 맛이 옛 생각을 나게 하는 만두집이다. 서울 만두답게 크기가 작으면서 모양이 곱고 단정하며 만두소는 김치만두로 젊은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지역특성상 나이 드신 분들도 많아 정겹고, 녹두부침에 정성이 들어있어 막걸리와 함께 꼭 먹어야 할 메뉴이다.
 

찐만두는 ‘곰보냉면’ ‘명동칼국수’
 

찐만두로는 종로4가 보석상가 건물에 있는 유명한 ‘곰보냉면’ 집이 있다.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노포 식당으로 예전에는 예지동 시계 골목에 있었으나 재개발로 인하여 여기서 재개장한 것으로 지금도 함흥냉면으로 명성이 높은 유명한 집이다. 이 집의 찐만두는 할머니가 직접 만드는 수제 만두로 크기가 크고(평양식) 피도 얇아 안에 소가 꽉 들어찬 것을 볼 수 있다. 만두소는 두부, 야채, 고기, 부추 등이 들어있고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어 구수하다. 옛날 어머니와 자주 가던 함흥냉면 집으로 찐만두만 먹으러 가도 손색이 없으며, 나는 함흥냉면과 곁들여 먹는데 만두가 소진되어 못 먹은 경우도 있었다.

 

‘명동칼국수’ (송파동)
‘명동칼국수’ (송파동)

 

최근에 찐만두로 나의 입맛을 사로잡은 만두집이 있다.
송파동 근처의 ‘명동 칼국수’ 집으로 고기만두, 김치만두 두 종류로 만둣국과 찐만두를 만드는 식당이다. 모양과 크기, 만두소 등이 옛날에 집에서 만들어 먹은 만두와 가장 흡사하고 동그란 모양의 만두가 너무 예뻐, 정성이 가득한 집의 만두와 똑같다. 이 집은 특히 생만두를 포장 판매하여 고기, 김치만두를 여럿 사서 가져와 생각날 때마다 찐만두를 해 먹으니 어머니가 빚어 놓으신 만두만큼이나 맛이 있다. 이 식당은 아내의 친구인 안여사가 소개한 식당으로 추억을 먹는 서울 만두를 알게 되어 친구분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만두는 국민 식품답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며 그만큼 전문식당들이 많이 있다. 그중 맛있는 만두집을 추가로 소개하면 장충동 ‘평양면옥’ 접시만두, 압구정동의 ‘설매네’와 ‘만두집’의 만둣국, 서초동 ‘임병주 산동 칼국수’의 평양 왕만두, 종로구 소격동 ‘황생가’의 왕만두 등이 만두 맛을 제대로 내는 식당으로 필자의 오래된 단골집들이다. 모양, 크기, 만두소에 따라 다양한 만두집들이 많이 있으나 개인마다 맛의 편차가 있어 딱히 어느 집이 제일가는 맛집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 같다.

좋은 친구와 ‘봉산옥’에서 술안주 같은 따뜻한 만둣국과 녹두 빈대떡을 먹으러 줄을 서며 기다린 추억과 더불어, 송파동의 생만두를 냉장고에서 꺼내 아내와 함께 찐만두를 먹으며 겨울을 떠나 보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