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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추억의 포장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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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추억의 포장마차
  • 손영한
  • 승인 2022.01.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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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⑥
멸치국수
멸치국수

 

[푸드경제 손영한] 나는 방이동에 위치한 회사에 다닌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이동은 상당히 매력이 있는 지역인 것 같다. 회사 문을 나서면 올림픽공원을 마주하게 되는데 가을의 풍경은 햇빛과 더불어 오색 단풍이 펼쳐져서 절로 감탄사를 낼 정도로 화려하다. 서울 시내에 고궁을 제외하면 이만한 풍경을 가진 곳도 드물 터인데, 하물며 공원 속에는 ‘소마 미술관’이라는 아담하고 멋진 예술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는 훌륭한 공원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시민과 근처 회사원들의 산책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이와 더불어 회사 뒤편으로는 방이동 먹자 거리가 있어 저녁이면 샐러리맨들의 출출한 배고픔을 달래주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그 많은 음식점 중에 필자에게 눈에 띄는 곳이 있으니, 방이 중학교 정문 앞에 있는 ‘할머니 포장마차 멸치국수’라는, 상호가 제법 긴 포장마차가 있다. 지난 시절 포장마차는 저녁 무렵 대로변 길가나 모퉁이, 뒷골목에 음식을 손수레에 잔뜩 싣고 나와 하루 일과에 지친 사람들이 대포 한 잔으로 요기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버젓이 건물 안에 있으면서 내부는 옛날 기분을 내도록 장식되어 있는 현대식 포장마차로 바뀌었다. 특히 삼성동, 청담동에는 연예인들이 자주 가는 대형 포장마차가 성업 중이다.

‘할머니 포장마차 멸치국수’는 입구부터 허름하고 식당 내부도 동그란 드럼통 식탁과 동그란 의자가 전부인 평범한 포장마차이다. 메뉴는 제철 음식인 꼬막, 조기구이, 석화와 돼지고기, 오징어 데침, 닭똥집(모래주머니), 메추리 등 여느 포장마차와 다를 것 없다. 그러나 주방 할머니의 대충 손맛으로 모든 음식이 손색이 없다. 또한 가격에 대한 가성비가 매우 좋아 실망시키는 메뉴가 없다. 특히 꼬막은 할머니 솜씨대로 데쳐서 그런지 탱탱한 살이 입속에서 ‘탁’ 터져 바다 향을 확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꼬막을 제일 좋아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 집 메뉴 중 보석(?) 같은 존재는 따로 있다. ‘멸치국수’이다. 이 메뉴는 다 먹고 난 후 후식에 먹는 국수이나 이 집에서는 백미 중에 백미임에는 틀림없다. 큰 양푼 같은 그릇에 멸치육수를 넘칠 것처럼 한가득 담고, 여기에 김·참깨·파 외에 유부를 가득 담아 넣어 국수는 보이질 않을 정도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것이 서울식(?) 멸치국수 같아 참 좋고, 양념이 약간 들어있으나 오히려 감칠맛을 더해 주는 것 같다. 고소하고, 시원하고 여느 집에서 먹는 굵기의 면발, 쫄깃하고 커다란 유부, 아끼지 않고 부어 넣은 참깨들, 잘 풀어져 있는 김과 파 등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나니 벌써 그릇은 바닥을 드러낸다. 옛날 포장마차 유부 우동과 격을 같이하는 맛으로 할머니의 손맛이 더욱 느껴지는 부분이다.

 

'할머니포장마차멸치국수'
'할머니포장마차멸치국수'

 

다른 음식을 먹고 난 후에는 반 그릇만 주문할 수도 있으나 이 순수한 (거친) 맛이 좋아 아무리 배불러도 나는 꼭 오롯이 한 그릇을 주문한다. 한 그릇을 두 개로 나누면 맛도 반으로 줄어드는 것 같아서... 이 멸치국수 맛은 앞서 언급한 듯이 시원하고 구수하고 깔끔한 농도의 육수가 탁월하지만 개인에 따라서는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거칠다는 맛의 표현은 이 집 할머니만의 손맛일 것이다. 이러한 할머니의 맛은 곧 어머니의 손맛, 고향의 맛을 생각나게 한다.
 

추억의 포장마차 이야기
 

이와 관련한 나의 어린 시절 포장마차와 관련된 오래된 추억을 이야기하려 한다. 과거 포장마차는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데 오후 5시경부터 솜씨 좋은 주방장(아주머니)들이 큰 손수레를 끌고 거리로 나온다. 도심지에서는 청계천 1가(광교)~6가, 종로 1가~동대문까지가 제일 번창하고 화려한 포장마차(포차) 거리였다.

그 당시 포차는 각각마다 부산집, 아줌마집, 참새집 등 기다란 천에 상호를 내걸고 영업을 하였다. 음식은 닭, 돼지, 토끼고기와 꼼장어, 대합조개, 참새, 메추리구이, 우동 등 지금과 별 차이 없는 뷔페 같은 식당이 카아바이트 불빛과 어우러져 포근한 분위기를 느끼는 곳이었다.

카아바이트에 대해 궁금한 독자가 있겠지만 그 시절 흔히 사용하던 고체 화학물질이며, 이것은 석회, 질산 등으로 만들고 물을 부으면 열이 나면서 기체가 발생하는데 그 기체에 불을 댕겨 사용하였으며 지금의 전구 역할을 한 것이다. 어려운 시절 악덕 상인들이 카아바이트를 이용하여 막걸리를 숙성하였고 석회가루를 섞어 두부를 만든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카아바이트 불빛은 은은한 감성적 색깔과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좀 쓸쓸하고 서글픈 마음을 느끼게 하는 불빛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집 (종로5가) 역시 주변에 포차가 많이 있으나 내 기억 속에는 ‘참새 우동집’이라는 포차가 있었다. “막내야, 참새 우동 사와라” 하면 나는 큰 냄비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우동을 사온 기억이 난다. 어묵도 조금 있고 특히 유부가 듬뿍 들어 있는 우동을 앞에 두고 온 식구가(5남매) 한 젓가락씩 먹으니 이 시절 이만한 겨울철 야식이 없었다. 국물은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나의 침샘을 자극한다. 또한 같이 곁들여 먹은 참새구이 맛의 추억을 잊지 못해 직장 생활할 때 종로 맛골(종로1가~3가 골목길)에서 참새구이, 닭 염통 등을 즐겨 먹곤 했다. 물론 약간의 반주와 함께... 음식이라기보다는 추억과 재미로 먹는 것으로 독자분들은 생소하거나 썩 내키지 않는 음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소소하고 호사스러운 행복도 청진동 재개발사업으로 그 유명한 피맛골은 없어지고 높은 빌딩숲만 그 자리에 있다. 저녁 무렵 좁은 골목길의 연탄생선구이 굽는 냄새, 지글거리는 돼지구이, 해장국 등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대부분 가게들이 폐업으로 문을 닫을 무렵, 나는 단골집에서 생선, 참새구이, 닭 염통을 먹으며 주인 할머니와 지난 피맛골 이야기와 내일 철거된다는 아쉬운 이야기로 주인과 함께 먹은 것이 그나마 내 기억 저편에 위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직도 이런 맛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음식점(포차)이 서울 종로에 두 군데 있다.

 

'도리방' '정종 대포(참새집)'
'도리방' '정종 대포(참새집)'

 

중구 다동 한화빌딩 뒤 무교동 음식거리에 있는 ‘군참새’ 집이다. 지금은 ‘도리방’이란 간판이 걸려있고 각종 재료가 있는 정종 대포집으로 아직도 군참새를 하고 있어 무척 고마운 식당이다. 꽤 오래된 노포이고 이 집도 이제는 손님이 너무 많아져서 편히 먹을 수 없어 속상하다. 내부 구조는 옛 그대로여서 매우 비좁다. 과거 한때 참새를 못 잡게 한 시절이 있었으며, 가끔은 꼬치 2개(참새, 닭 염통)를 사서 아들에게 준 추억도 있다.

또 한 곳은 종각역 조계사 4거리 종로구청 방향(청진동)에 ‘참새집’이 있다. 상호는 ‘정종대포’이고 무교동 집보다는 이후에 생긴 집으로 약 30년 된 식당으로 군참새는 물량이 적을 시 손님당 1인분씩만 판다. 그 외 맛깔스러운 메뉴가 많아 정종 대포와 더불어 포차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소개된 두 집 모두 연탄(숯)에 잘 구워진 군참새와 닭 염통의 쫄깃쫄깃한 매력이 기분을 좋게 해준다. 특히 소금구이식 간장 염통구이는 혼자 다리를 꼬고 즐기면서 먹기에도 손색이 없다. 이렇듯 멸치국수와 참새구이로 나의 겨울 추억을 더듬으며 혼자 야릇한 미소를 지어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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