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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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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 장시정
  • 승인 2022.01.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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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장시정] 작년 연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트리아지Triage"에 관한 결정을 내렸다. 코로나 사태에서 "트리아지"란 병상 부족 시 누가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독일 연방헌재의 결정 요지는 생명의 가치는 누구나 동등한 것이며 따라서 팬데믹 상황에서 장애나 기저질환 또는 나이 등의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독일 연방의회는 이 결정에 따라서 중환자 병실 배정이나 산소호흡기 제공 등 치료의 우선순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의료진의 관행적인 판단을 대체할 수 있는 입법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장애인과 기저 질환자 9명의 헌법소원에 따른 것으로, 의료 당국의 그간 관행에 급제동이 걸렸다. 이 결정은 코로나 사태 외에도 향후 장기 이식 순서나 간병 우선순위 결정 등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환자는 2명인데 산소호흡기가 제공되는 중환자 병실이 하나뿐인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런데 환자 한 명은 코로나만 아니라면 매우 건강하며 4인 가족의 가장이다. 또 다른 한 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신적, 신체적 장애로 서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한다. 그리고 홀어머니에게 의존해서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의사라면 아마도 전자의 환자에게 중환자실을 배정할 가능성이 높고, 또 우리 사회의 관행이나 조치가 그런 판단을 부추기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회생 가능성 같은 합리적 기준 외에는 다른 어떤 이유로도 병원이나 의료진의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대본의 조치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독일 연방헌재가 우려한 그러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요양시설 확진자는 증상에 관계없이 전담 요양병원으로 이송토록 하고, 코호트 요양시설 확진자에게는 재택치료를 하도록 하는 중대본의 조치가 바로 그런 사례라 하겠다. 이렇게 되면 결국 기저 질환이 있는 노령의 환자는 제대로된 코로나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다.

 

14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출입전 방역패스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14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출입전 방역패스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 환자가 넘침에 따라 일반 환자의 수술 연기 등 현상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는 평균적인 이익의 차원에서 지지될 수 있는 관행일지는 모르나 해당 환자 개인에게 이러한 평균적인 이익 개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이번 연방 헌재의 결정으로 이런 관행은 개선될 것이다. 우리도 이런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인 기준 제정이 필요하다.

정부가 발표한 청소년 방역패스에 관한 문제도 학부모들의 항의 데모와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출입하는 학원이나 도서관에 비접종자를 배제하는 조치는 청소년 수험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치명적인 조치일 것이다. 백신 비접종자는 자신의 가족과도 식당이나 카페를 갈 수 없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는 아예 가지 못한다. 결국 백신 비접종자를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효과를 갖는 이런 조치는 헌법상 보장되는 인간의 존엄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국가의 보건권 보호의무(헌법 제36조 제3항)에 의거하여 국가가 보건행정에 관하여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근거 논리로 백신 의무화 같은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조치를 시행하려면 상당한 정황적 상황이 전제되어야 하며 아울러 그 조치가 최종적인지, 직접적인지, 비례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그리고 구체적인 입법 조치가 있는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독일은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의료 명령은 반드시 준입법조치 형태로 독일 상원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며칠 전 미국 연방최고재판소가 100인 이상의 기업 종사자에 대하여 백신접종과 코로나 검사를 의무화한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에 대하여 “권한 밖의 행위”로 정지 명령을 내린 것도 이런 취지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방역패스제 등에 대한 법적 근거인 감염병 예방법 제49조 제1항은 일반적인 백신 접종 의무화를 강제하는 직접적인 근거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 조항에 근거한 백신 패스제는 위헌 가능성의 소지가 있고, 450명의 시민들에 의한 집단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헌재의 전원재판부가 판단할 예정이다.

독일은 아직 의료시설 출입에 대한 백신접종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독일 신정부는 오는 3월을 목표로 병원과 요양원, 약국, 인명 구조시설 등에 백신접종 의무화 실시를 위한 입법을 예정하고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주장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숄츠 총리가 이끄는 신정부가 첫 시련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도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각 도시마다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코로나 항의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볼프강 쿠비키 독일 연방하원 부의장도 백신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는 의회 내 30여 명의 백신접종 의무 반대 청원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는 그것이 온전한 인간상에 반한다고 본다. 백신 접종자도 감염이 되고, 또 남을 감염시킨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마당에 어떻게 일반적인 백신접종 의무화를 강제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1G를 지지한다. 1G란 어느 곳이든지 필요시에는 검사만으로 출입을 허용하는 것이다. 지금 독일 연방의원들이 의회 건물 출입 시 매일 검사를 받듯이 필요하면 검사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1,300만 명의 대도시, 시안시가 69명의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록다운에 들어갔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것이라는데, 경악할 만한 사건이다. 북경 동계올림픽은 어차피 외국인 관중도 없을 것이며 중국인도 초청자에 한해서만, 백신접종과 검사를 전제로 관람이 허용될 것이라 한다. 쿠비키 의원은 중국이 모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자코뱅적인 대처에 반대한다. 독일의 녹색당 신임 외교장관인 아나레나 베어복은 북경올림픽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미국과 영국의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였다.

마르코 부슈만 독일 법무장관은 백신접종을 통제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그 어떤 등록제에 대하여도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독일의 새 야당 대표로 선출된 기민당의 프리드리히 메르츠도 백신 의무화에 유보적 입장이다. 시민들의 사회적, 문화적 삶의 참여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이 인간 생존권에 속한다는 믿음에서다. 그래서 기본권을 제한하는 대신 팬데믹을 막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에 국가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계보건기구가 세계적인 팬데믹을 선언한 경우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포함해서 3번이다. 1968년 홍콩독감 사태 시와 2009년 H1N1 돼지 인플루엔자 사태 시이다. 결국은 백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인 바이러스 소멸로 팬데믹 사태가 종료되었다. 2002년 사스 사태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사망자가 전 세계적으로 5백만 명이라지만, 총 사망자 개념으로 보자면 크게 변화가 없다. 이것은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코로나를 '갖고' 죽는다는(not die from Corona, but die with Corona) 것인데, 코로나로 위장된 사망이 많다는 의미이다.

지금 세계 각국이 팬데믹에 대처하는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오미크론의 빠른 확산세에 4차 접종을 권고하는 나라도 있고, 오스트리아나 그리스에서는 비접종자에게 벌금도 부과한다. 코로나 사태의 충격으로 세계화가 위축되고 불평등이 심화되어 갈 것이다. 팬데믹이 남긴 새로운 행동 패턴들은 팬데믹 종식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의 가치”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생명의 가치” 말이다.

글 장시정(독일모델연구소 소장. 전 함부르크 주재 총영사) 
 

 

필자 장시정은 1981년 외무고시를 거쳐 지난 36년 간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였으며, <독일과 한국 경제> 등을 주제로 다수 강연하였다. 카타르 주재 대사와 오스트리아 주재 차석대사, 함부르크 주재 총영사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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