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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사제와 독일의 공동결정제
  • 장시정
  • 승인 2022.01.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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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이사제 도입에 관한 전문가 인식 조사'© 뉴스1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이사제 도입에 관한 전문가 인식 조사'© 뉴스1

 

[푸드경제 장시정]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 이어 노동이사제를 지지하고 나서자, 더불어 민주당에서 이를 입법화 할 의향을 밝히면서 노동이사제 도입에 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우선은 공공부문에서 도입한다지만, 향후 민간 기업으로의 확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노동이사제란 이사회, 즉 경영진에 의결권을 가진 노동자 대표를 참여시켜 노동자의 목소리를 경영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이사제의 도입에 관한 논의는 독일,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공동결정제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공동결정제는 노사가 사회연대자로서 기업의 경영에 같이 참여하는 것으로, 노사 쌍방 간에 조화로운 협조를 통해 기업을 운영한다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철학이 녹아 있는 제도다. 공동결정제는 기업의 감독이사회와 사업장에서의 노동자평의회를 통한 두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노동이사제는 전자의 경우이다. 슈미트 총리 당시인 1976년에 법 제정으로 공식화 되었지만 2차 대전 직후 루르 지방의 석탄, 철강업체에서 연합국이 선임한 경영진에 노동자를 합류시켜 장기적 압류를 막아보고자 한 시도로부터 출발했다. 이 제도가 기업 현장에 도입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일에서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한국에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귤화위지라는 말대로 토양이 다른 곳의 제도나 관행을 이식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요소를 제시해 본다. 우선은 독일의 경영기구가 단일적 이사회를 갖는 영미식과는 달리 이중이사회dual board라는 점이다. 즉, 독일의 공동결정제에서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는 1차적 경영기구가 아니라 2차적 경영기구인 감독이사회를 통해서 행사하므로 기업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기보다는 중장기적인 방향에서 기업 정책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두 번째는 독일의 공동결정제가 독일기업 운영의 전형적인 형태인 것처럼 알려져 있음에도 실상은 매우 소수의 기업만이 이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말 현재 수십만 개의 기업 중 공동결정제를 수용하는 기업은 641개에 불과하다. 2천 명 이상의 고용 규모를 가지는 자본회사인 주식회사AG나 유한회사GmbH에서 주로 설치하는데, 숫자상으로 볼 때 99%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나 규모가 크더라도 인적회사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주방용품 전문 업체인 밀레Miele는 고용 규모가 약 2만 명 규모임에도 인적회사이므로 감독이사회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공동결정제도 볼 수 없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EU 차원의 “유럽회사Societas Europaea”가 도입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유럽회사’ 형태로 등록하는 신규 기업을 포함하여 기존의 주식회사들도 노사 합의가 있을 때는, 공동결정권이 적용되는 이중적 경영구조 대신 영미식 단일적 경영구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이에 따라 공동결정제가 향후 약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문화적 토양의 차이다. 독일에서 공동결정제가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제도 자체보다는 그 제도를 받치고 있는 문화적 배경과 인적 요소라 하겠다. 노동자들이 사주의 핵심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정도의 한계선에서 움직이면서, 기업 전체의 경영 이익과 함께 그들의 이익을 균형적으로 달성하는 노사 간 "이익의 균형" 기제가 주도면밀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면에 협력적 노사관계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노동이사제가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의 발전을 위한 순기능적 촉매제가 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더욱이 한국의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는 이념적이며 정치적이다. 실제로도 이들은 정치 현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치와는 거리를 두는 독일의 노조와는 다르다. 물론 많은 독일 노조원들도 정당 활동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것으로 이들의 노조 활동은 정당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산업별로 임금을 결정하는 임금협약이 결정되는 과정을 보더라도 노사 당사자를 제외한 일체의 정치 세력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이런 분위기를 보더라도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오직 기업과 노동자의 이익 제고라는 목적에만 기여하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들은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면 임금 삭감을 자청하는 노동자들이다. 우리의 노조와는 많이 대비될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글 장시정(독일모델연구소 소장. 전 함부르크 주재 총영사) 
 

 

필자 장시정은 1981년 외무고시를 거쳐 지난 36년 간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였으며, <독일과 한국 경제> 등을 주제로 다수 강연하였다. 카타르 주재 대사와 오스트리아 주재 차석대사, 함부르크 주재 총영사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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