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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고객과의 상생 외면하는 5대 은행의 공허한 ESG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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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고객과의 상생 외면하는 5대 은행의 공허한 ESG 외침
  • 유인근 기자
  • 승인 2021.12.22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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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스1
사진 뉴스1

[푸드경제 유인근 편집국장] 은행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거대한 은행 본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고객들에게 비와 더위를 피하고 때로 금전과 관련된 고민도 나누기도 했던 동네 사랑방 같았던 은행 지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10년 전만 해도 기자가 사는 집 근처에는 2000세대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이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 큰 길 건너에 신도시급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자 썰물 빠지듯 옮겨가고, 그 자리엔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인 점포만 덩그마니 남겨놨다. 월말이면 월급이 들어오는 집앞 모 은행을 향해 각종 고지서를 싸들고 찾아가던 아내는 “버스로 1~2 정거장을 가야 한다”며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동네 사랑방처럼 편안하고 친근했던 은행 지점이 갈수록 불편한 불만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에 은행 지점 약 1000개가 사라졌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국내 지점·점포는 303개나 줄었다. 2017년(312개)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국민은행은 79개, 하나은행 73개, 우리은행이 53개의 점포를 줄이며 지점과 점포 없애기에 앞장섰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1~11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이 폐쇄한 점포는 총 203개다. 연말까지 59개 점포가 추가로 사라져 총 262개 점포가 없어질 예정이다. 그 빈자리는 무인형 키오스크가 차지하고 있다. 비대면 화상창구인 '디지털데스크'를 늘리고 은행원 대신 로봇 AI은행원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지점의 소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는 것이다.

시대에 앞서가는 은행들의 발빠른 행보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속은 답답하다. 아무리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고 해도 은행원을 만나 물어도 보고 상품에도 가입하는 것들에 익숙한 세대라 솔직히 속이 끓는다. 대기손님이 많아 30분, 길면 1시간도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했던 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객들, 특히 은행들로부터 찬밥 신세가 된 노령층들의 불만은 더하다. 얼마전 기어코 일이 터졌다. 지난 11월 14일 신한은행 서울 월계동지점 앞에서 동네 주민 50여 명이 시위를 벌이는 일이 발생했다. 그들 대부분이 고령자들로, 35년간 이용해온 이 지점이 두 달 후에 폐점되고 무인형 점포로 바뀐다는 소식에 분노하며 시위까지 나섰다. 대체 점포인 장위동지점은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25분은 가야 한다니 모바일·온라인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들로서는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50대 중반의 한 고객은 “30년간 주민과 은행이 상생해왔는데 기업 이윤 측만 생각하는 결정이 아닌지 다시 한번 재고해달라"고 울분을 토했다.

과연 유행처럼 번지는 지점 없애기가 은행의 최선일까.

물론 은행의 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기술 발전과 산업구조 변화로 은행들은 창구에서 대면하는 기존 영업 방식을 고집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멈칫 하다가는 실물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 날렵하게 뛰는 인터넷은행이나 빅테크에 금세 추월당할 것이다. 하지만 고객의 입장은 생각 않고 무작정 지점부터 없애는 행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가 지나치다.

은행들이 아무리 미래의 고객이자 날 때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를 써도 현재의 주요 고객은 MZ세대가 아니다. 은행들은 듣기 싫어하겠지만, 국내 시중은행들은 단순한 이자 장사로 돈을 번다. 그리고 그 수익을 주로 키워주었던 주체는 바로 지점 창구를 찾아오는 중장년층들이다. 그런데 은행마다 앞다퉈 이들을 홀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들 중장년층들의 눈에는 은행들이 점포나 지점을 줄여 남는 직원들을 명예퇴직·희망퇴직으로 내보내는 행태가 곱게 보일리 없다. 점포를 획기적으로 줄인 덕분에 5대 은행 임직원 수는 지난해 1480명 감소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만 1449명 더 줄었다. 떠나는 직원들에게는 명퇴란 이름으로 수억원의 돈보따리를 챙겨주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그 행태가, 그 천문학적인 돈이 고객들로부터 얻은 수익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속이 쓰린 중장년층이 적지 않다.

주요 수입원인 고객이 원치 않는다면 고객에 맞추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어쩔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이라면 고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방법을 찾는 것이 은행이 가야할 길이 아닌가. 솔직히 디지털데스크니 로봇은행원은 아직까지는 첨단으로 포장한 빛좋은 개살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적응하기 어렵고 직원을 대면하는 것보다 훨씬 불편하니까.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은행을 중심으로 ESG 경영이 한창이다. ESG를 실천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기업으로 낙인찍힐 수 있어 저마다 앞장서 목이 터져라 ESG를 외치고 있다. 그 주요 덕목인 환경도 좋고 지배구조도 좋지만, 과연 인간과 기업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생’을 외면한 채 진정한 ESG를 실천할 수 있을까. 고객과의 상생은 지점 없애기에 열을 올리는 5대 은행들이 당장 고민해봐야할 우선의 덕목이다.

월계동 시위를 보면서 한 은행원은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주된 수익원인 나이 든 고객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찜찜하면,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이 불편하면 하루라도 빨리 방법을 찾아 개선하는 것이 ES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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