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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준비,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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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준비, 어디까지 왔나?
  • 장시정
  • 승인 2021.12.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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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장시정] 2016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말의 성찬이 지난 몇 년간 무성하더니 요즘에 와서야 좀 잦아진 듯하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4차 산업혁명은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어떤 성과가 있을까?

독일은 4차 산업혁명 상의 혁신과정을 일단 제조업에 집중하기로 하고, 2012년부터 "인더스트리 4.0"을 시작했다. 정부와 업계가 협력하여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여 제조, 유통의 스마트화로 고객 주문형 다품종 대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물론 농업이나 서비스업에서도 그런 혁신은 일어난다. 다만, 독일은 국가 차원의 자원과 역량을 제조업에 집중하여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성취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실제 추진 과정에서도 정부 부처는 물론, 디지털산업협회Bitkom와 SAP 사의 헤닝 카거만이 주도적으로 산업현장에 적용되는 다수의 연구, 개발 프로젝트들을 실행하고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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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프라운호퍼 시스템혁신연구소가 1256개의 독일 기업을 대상으로 2015년~2018년간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인 디지털화 추진 현황을 조사하였다. 첫째 디지털 경영시스템, 둘째 인간과 기계간 무선에 의한 상호 행동, 셋째 사이버물리시스템CPS 접근 프로세스 등 3개 분야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5년에 이미 인더스트리 4.0에 관심을 가졌던 기업들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졌으며, 인더스트리 4.0을 외면하고 있는 기업들의 비중이 23%에서 15%로 낮아졌다. 아울러 대기업부터 시작된 전환의 물결이 미텔슈탄트나 중견기업으로까지 확산되었으며 소규모 영세기업은 아직 전환이 일어나지 않고 있어 기업 규모 간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지금 독일에서는 산업의 디지털화에 따른 노동시장에의 영향을 연구하고 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동 4.0"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2013년 9월 메르켈 총리가 인더스트리 4.0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큰 자신감을 갖고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이긴 경주는 아니다”라고 언급했듯이 조심스럽지만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제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입장이며, 그 어느 나라보다도 선두적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의 출발 여건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제조업은 산업 비중 면에서 2000년부터 22% 선을 유지해오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은 제조업 비중이 11% 정도에 그친다. 산업로봇 설비 측면에서도, 2019년 국제로봇연맹 통계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노동자 1만 명당 346대의 로봇이 투입되고 있으나 중국은 187대에 불과하다. 결국 디지털 기술을 가진 자가 아니라 기계를 가진 자, 즉 제조업을 가진 자가 궁극적인 승자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정보통신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제조업이 강한 한국도 4차 산업혁명의 선두 대열에 설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산업로봇 설비율에서도 2019년 기준 노동자 1만 명 당 855대로서 세계 1위이다. 문제는 현실적인 준비에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독일만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AT&T, Cisco, GE, IBM, Intel 등이 참여한 가운데 2014년 출범한 "산업인터넷컨소시움IIC"을 중심으로 제조업에만 국한하지 않고 서비스업과 전체 가치창출 사슬의 모든 프로세스에 적용되는 인터넷 신기술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재벌 기업이 참여하는 "산업가치사슬이니시어티브IVI"를 운영 중이며 중국도 과거 저렴한 임금국가에서 세계적 산업국가로의 부상을 목표로 "중국제조 2025"를 지원하고 있다.

누가 이 혁명의 주역이 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을까? 대통령 직속이라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 홈피를 방문해 보았다. 3년 전 방문 시에 보았던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규제, 제도 혁신 헤커톤Hackathon"이라는 생소한 말은 아직 남아 있고, 위원회 활동이나 보도자료 등을 보면 주로 간담회, 콘퍼런스, 헤커톤 개최 그리고 제도 개선이나 활성화 방안 같은 소식이 올라와 있다. 이런 자료로 추정해 볼 때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의 추진 방향 설정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독일과 달리 산업현장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정책의 심의, 조정이나 규제, 제도 개선, 변화 참여 독려 같은 보조적이며 범용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을 매듭짓기 위한 빈 회의 시 "회의는 춤춘다"라는 말들을 했다. 구체적인 회의 성과나 진전 없이 외교관들이 먹고 마시며 회의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나 인더스트리 4.0이란 표현은 과거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을 전제로 한 것이다. 18세기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촉발된 1차 산업혁명, 19세기 말 전기의 산업화와 대량 생산의 등장으로 인한 2차 산업혁명 그리고 20세기 말 컴퓨터의 상용화로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은 사후에 그런 시기를 단계별로 정의하고 작명한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사건이며, 컴퓨터 시대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3차 산업혁명의 두 번째 단계 정도로 파악하는 것이 더 맞는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4차"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기존의 컴퓨터 시대를 완전히 넘어서는 산업과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적 융합 버전을 의미한다. 해커톤만 해서는 "4차"라는 차수를 달리한 그 이름값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의 모습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올지에 대해서는, 내가 만난 독일 브레멘의 야콥스 대학 크리스토프 라테만 교수가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로봇이 생산공정과 기계를 통제하고 제품들 간의 인터페이스가 직접 이루어지면서 의사 결정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설명이다.

"독일은 산업 간 의사소통과 인터페이스를 설정하는 표준을 만드는 데 앞서가고 있다. 생산체인이 완전히 디지털화된다면 모든 체인 고리에서 데이터를 송출하고 수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흔적을 찾고 추적하는tracing and tracking’ 시스템이 생기는 것이다. 유럽 전역에 걸쳐 냉장차로 수송되는 세라노 햄에는 송신기가 장착될 것이다. 이 송신기를 통해 사람들은 햄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고, 만약 운송 중 기온이 올라가서 햄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즉시 대처할 수 있다. 즉, 부패한 햄을 대체할 신선한 햄을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공장으로 이 정보가 확산되어 새로운 공급 경쟁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또 함부르크의 에어버스 공장에서는 비행기에 장착된 수십만 개의 나사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송신기가 모든 나사에 붙여진다. 이를 통해 나사가 제대로 조여져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모든 것이 이렇게 자동적으로 돌아간다면 사람들에게는 과연 어떤 역할이 남겨질지 의문이다.“

디지털화는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적 사안이다. SMAC(Social Media, Mobile, Analytics, Cloud)를 주축으로 하는 디지털 혁명의 향후 성장 잠재력이 큰 만큼 만만찮은 도전도 뒤따른다. 그 도전 과제는, 첫째 국제표준화에 관한 것으로, 제품 호환성을 위한 기준을 누가 제시할 것인가와 둘째 새로운 천연자원으로까지 불리는 데이터의 보안에 관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슈타지(동독의 국가보안부)의 감시 체제에서 청춘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유럽이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기준 제시에 앞장서야 하고, 미국과 중국 양쪽을 대체하는 대안으로서 글로벌 디지털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인 데이터는 국가나 기업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글 장시정(독일모델연구소 소장. 전 함부르크 주재 총영사)
 

필자 장시정은 1981년 외무고시를 거쳐 지난 36년 간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였으며, <독일과 한국 경제> 등을 주제로 다수 강연하였다. 카타르 주재 대사와 오스트리아 주재 차석대사, 함부르크 주재 총영사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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