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5:00 (월)
실시간뉴스
‘어묵’ 따뜻한 맛 이야기
상태바
‘어묵’ 따뜻한 맛 이야기
  • 손영한
  • 승인 2021.11.23 1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②

어머니는 김밥을 하시는 날이면 멸치 육수로 만든 구수한 어묵(오뎅 일본어)을 항상 함께 만드셨다. 그 당시 어묵은 멸치로 우린 육수에 작은 노트 크기의 납작한 어묵, 두툼한 나무판에 붙어 뽀얀 핑크 무늬가 있는 반달 모양의 어묵, 유부주머니, 그리고 무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푹 끓여서 먹으니 그 맛이란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오가는 행복하고 호사스러운 즐거움이었다. 특히 유부주머니는 손바닥 반만한 크기로 그 속에 각종 야채와 당면이 들어 있는데, 유부의 까슬까슬함과 고소함이 함께 어우러진 묘한 맛에 끌려 급하게 먹다가 입천장을 허구한 날 데이기도 했다. 입이 다 데여도 좋으련만 이제 어머니는 안 계시다.

고즈넉한 정종대포 집을 좋아한 필자는 대학 다닐 때나 여의도에 첫 직장을 다닐 때도 집(종로5가)으로 가기 전 무교동이나 청진동에 내려 근처 광교의 정종대포 집에 자주 들르곤 했다. 어묵, 닭똥집, 꼼장어, 대합구이, 참새구이, 메추리, 돼지고기에 정종 대포 한 잔을 앞에 두고 인생을 논하고 노곤한 일상을 위로하며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나누던 시절이 겨울이면 떠오른다.

그 시절과 달리 요즘엔 ‘오뎅집’(일명 이자카야)은 많아도 풍부한 맛을 내는 집은 찾기가 어렵다. 90년대까지는 종로 광교나 관철동에 있는 어묵(오뎅) 전문점의 질 좋은 어묵과 푹 삶은 무 한 조각이 미각을 즐겁게 했으나 이제는 만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 옛날 분위기와 주전부리를 내는 주점이 있어 단골이 된 ‘오뎅’ 집이 있었다. 청담역 인근에 위치한 ‘부산 오뎅’이다. 테이블 가운데는 어묵이 끓고 있었고, 그 주변에 빙 둘러앉으면(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 옆 손님과도 경계가 없는 그런 선술집으로, 가운데 탕 속에서는 각종 어묵, 스지, 계란, 곤약꼬치 등이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었다. 국자로 떠서 먹는 국물은 모나지 않은 맛을 내어 추억을 음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이곳의 메뉴 중 유부주머니, 가마보코와 가래떡 구이는 내 취향 최고의 주전부리다. 특히 내가 제일로 여기는 유부주머니는 어머니가 해주신 것과 거의 같은 맛이다. 아주 통통한 작은 복주머니처럼 생긴 것을 한입 물었을 때 입속에 닿는 겉의 까슬까슬한 느낌과 속의 탱글탱글함이 어우러진 깔끔한 맛이란! 특히 뜨거운 어묵 국물에 중탕을 하여 내놓으니 입 언저리에 기름기가 전혀 묻지 않아 개운한 식감을 더해준다. 크기가 작다고 우습게보고 한입에 먹었다가는 입천장이 데이는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다. 이곳의 유부주머니는 정말 순수하고 따뜻한 맛이고 4개만 들어있는 가마보코는 사치스러움(?)의 극치다. 하얗고 순수한 고급 어묵인데 어려서 먹던 나무판에 붙어 있는 상급 어묵 바로 그 맛을 선사한다. 이 가마보코는 특이한 향이나 맛은 없지만, 밍밍하면서도 혀에 감기는 맛이 일품으로 나는 술 한 잔에 반쪽씩 아껴(?) 먹곤 했다.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하고 포근한 마음이 무척 고마운 기억을 안고 최근 ‘부산오뎅’에 들렀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8월 30일 이후부터 영업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놀랐다. 짐작컨대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원인인 것 같다. 그래도 곧 재오픈 소식이 들려 반갑고 기다려진다. 부산 남포동 영화거리 뒤편 부평동 주변 ‘깡통시장’의 어묵, 당면국수 거리에도 똑같은 유부주머니가 있다. 출장 중에 가끔 포장해와 집에서 부산의 맛을 느껴본다. 물론 맛있다. 곧 딸과 아들(주연이와 준오)이 귀국하면 ‘부산오뎅’에서(재오픈하면) 가족들과 함께 정종 한 잔에 유부주머니, 가마보코를 곁들이며 호사스런 겨울밤을 지내는 꿈을 꾼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