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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시대의 종언을 예고한 글래스고 기후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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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시대의 종언을 예고한 글래스고 기후회의
  • 장시정
  • 승인 2021.11.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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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장시정] ”글래스고 기후회의가 1.5도를 살리고, 석탄 시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다“ 지난 11월 13일 종료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성과를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유엔기후회의는 매년 열리지만 이번 글래스고 기후회의는 첫째, 2015년 파리협정 채택 당시 기온 상승 억제 목표를 금세기까지 2도 이하로만 규정하면서 선택지로 남겨졌던 ‘1.5도’라는 최대치 목표를 채택하였고, 석탄발전과 석유, 가스에 대한 금융지원의 단계적 감축을 명문화함으로써 화석연료 시대의 종언을 예고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밖에도 탄소시장지침 타결로 투명하고 통일된 국제탄소배출권 거래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했고 개도국에 대한 매년 1,000억 달러 이상의 재정지원 서약 이행과 그 투명성 확대 등을 강조하였다. 인류의 기후 대응 노력은 1994년 유엔기후변화협약 체제 출범 이래 교토의정서, 파리협정을 거치면서 진화해 왔다. 이번 글래스고 회의는 화석연료인 석탄, 석유, 가스의 종말을 포함한 보다 빠른 속도의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국가들 간의 약속이 충분치 않고 구체적이지도 않지만, 큰 이정표는 그려졌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압력도 점증하고 있다. 녹색경영을 외면하는 기업들은 차세대를 배려치 않는다는 비난과 함께 신용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음미해 볼 만하다.

늘 그렇듯이 이번 기후회의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알록 샤르마 글래스고 기후회의 의장은 폐막 연설에서 “우리는 1.5도를 살려냈지만, 맥박이 약하다. 오직 우리가 약속을 지키고, 빠르게 행동으로 옮길 때에만 살려낼 수 있다”라고 말했고, 구테후스 유엔사무총장은 글래스고가 기후 위기를 막는 데 충분치 않았다며 기후 재앙이 문 앞으로 다가왔다고 혹평했다. 그린피스 등 많은 환경단체와 전문가들도 실망을 표출했다. 명확성과 속도가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석탄의 단계적 감축에 있어서도 매년 1프로밀레씩인지 아니면 5프로씩인지, 그리고 최종 퇴출시한이 2030년인지, 2050년인지 정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결국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스벤야 슐체 독일 환경장관은 글래스고에서 세계를 움직일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며, 석탄 퇴출을 기정 사실화 하고, 화석연료 보조를 끝장낸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실제 중요한 건 회의장 바깥에서 일어난다는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말대로 관건은 구체적인 ‘기후 행동’일 것이다. 만약 국가들이 신속한 ‘기후 행동’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금세기말 지구는 2도가 아니라 4도 이상 더워질 것이라고 한다. 더욱이 많은 정부들이 그들의 약속을 오직 부분적으로만 실행해 왔다는 관행을 고려한다면 문제는 이미 심각하다. 2021년에, 이미 초기 산업혁명 당시 대비 1.1도가 상승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금세기 내 1.5도 상승 목표는 매우 비관적으로 보인다.

”2도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고 외치는 작은 섬나라들의 입장을 볼 때, 기온 상승을 1.5도 내로 제한한 것은 매우 중요한 거시적 결단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인도가 이웃 몰디브를 사망시켰다는 말을 한다. 인도가 회의 막판에 중국과 함께 브레이크를 걸어 석탄발전의 ‘단계적 퇴출’이라고 되어 있던 최종 문안을 ‘단계적 감축’으로 수정하였기 때문이다. 술을 끊겠다는 것과 덜 마시겠다는 것은 천양지차다. 수몰되어 가고 있는 몰디브 같은 작은 섬나라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독일은 당장 지금 진행 중인 ‘신호등’ 연정협상에서 이번 글래스고 기후회의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기후 행동’은 국가나 정부 차원이 아닌 개인에게도 요망된다. 중요한 건 시민들이 그들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것이다. 환경보호론자들은 사람들이 연소기관 자동차 대신 비싸지만 전기차를 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연구개발 자금을 확보하여 나중에 더 저렴한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평균 시속 40~50 킬로미터 정도로밖에 달릴 수 없는 대도시에서 500마력의 SUV를 몰고 다니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저먼워치 등 세계 3대 환경단체와 400명 이상의 기후, 환경 전문가들은 매년 국가별 기후변화 방지 노력과 그 성과를 평가하여 ‘기후변화성취지수CCPI’를 산출한다. 평가 대상 분야는 온실가스 배출, 신재생에너지, 에너지 소비, 기후 정책 등 4개 분야이다. 2019년까지를 평가 대상으로 하는 2022년도 ‘기후변화성취지수’를 보면,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총 64개 조사 대상국 중 59위로 ‘매우 낮음’ 단계에 머물러 있다. 특히 개인별로 측정하는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소비에 있어 60위와 61위로서 거의 꼴찌다. 우리가 그저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분수에 맞지 않는 과잉 소비를 하는 건지 살펴볼 일이다.

탄소 배출과 기후 재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탄소 배출이 미세 먼지를 증가시켜 우리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깨끗한 공기가 생명을 구한다. 2019년 한 해 동안 유럽연합 내에서 적어도 30만 명 이상이 미세먼지로 조기에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발 미세먼지가 극심하지만 이런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 통계조차 없다. 이것은 기후 문제 이전에 인류 생존의 기초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년에 샤름엘셰이크에서 기후회의가 다시 열리면 더 많은 규칙이 쓰여지고 국가 목표는 더 강화될 것이다. 결국 석탄, 석유, 가스를 더 이상 쓰지 말자는 논의이지만 화석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는 주로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등 강대국에 맡겨져 있다. 그런 만큼 이들이 협조하지 않는 한 기후 대응도 순조로울 수 없다. 이번 글래스고 회의에서도 탄소 배출 비중이 전 세계의 40%에 육박하는 인도와 중국의 브레이크로 석탄의 영구 퇴출이 미루어졌다. 회의 중에 발표된 미국과 중국 간 기후행동협력프로그램도 세부규정 미비로 그 효과가 의심된다. 결국 마법을 행하는 해리 포터가 아닌 한 기후 대응도 현실의 높은 벽을 넘어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글 장시정(독일모델연구소 소장. 전 함부르크 주재 총영사)
 

 

필자 장시정은 1981년 외무고시를 거쳐 지난 36년 간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였으며, <독일과 한국 경제> 등을 주제로 다수 강연하였다. 카타르 주재 대사와 오스트리아 주재 차석대사, 함부르크 주재 총영사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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