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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인가, 사망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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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인가, 사망세인가?
  • 장시정
  • 승인 2021.09.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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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정의 독일모델 연구
기획재정부 전경 (기획재정부 제공)
기획재정부 전경 (기획재정부 제공)

 

[푸드경제 장시정] 작년 10월 타계한 이건희 회장의 소유 재산이 18조 원에 이르러 상속세만도 1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2019년 4월 한진 조양호 회장의 타계 시 상속세가 약 2,000억 원 규모였는데, 삼성은 자그마치 그 50배로 우리나라의 3년 치 전체 상속세액 규모이다. 이건희 회장은 2만여 점의 그림 등 소장품도 기증하였다.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이 포함된 '세기의 기증'이었다. 시가로 1조 원 정도라 하니, 만약 이 소장품을 상속하려 했다면 상속세 납부를 위한 현금 확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세기의 기증'은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밝힌 사재 출연을 통한 사회 환원 약속의 소산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지금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시행하고 있는 예술품 물납 제도의 도입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렇게 재벌이나 소수 부유층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던 상속세가 이제는 집 한 채 달랑 가진 일반 서민들에게도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서울의 30평 이하 아파트의 실거래 평균 가격만도 13억 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녀가 상속받으려면 상속세는 대략 1억 원대를 훌쩍 넘게 된다. 그렇다면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인 우리 가계의 실정을 감안할 때 이 상속세를 마련하려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 집을 팔아야 한다. 그러니 원래 사람이 죽어서 발생하는 세금 이라는 의미에서 상속세를 사망세로 부르기도 하지만, 기업이든 가계든 상속 대상 물건을 처분해야 한다면 이 경우 사망세는 상속세 부과 대상 물건의 사망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현행 상속세법상 상속세의 과세표준이 30억 원을 넘으면 최고 세율 50%가 적용되는데, 여기에 최대주주 할증이 적용되면 최고 65%까지 올라가서 우리나라의 실질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세율 55%인 일본보다 높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제 창업한 지 한두 세대가 지나면서 본격적인 상속 러시에 직면하고 있는데, 과중한 상속세 때문에 기업을 상속하기보다는 매각하거나 해외로 이전한다는 뉴스를 적잖이 접하곤 한다. 매년 상속세 부담 때문에 매물로 나오는 기업이 300~400곳에 이르며, 한때 높은 경쟁력을 자랑하던 중견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라 하니, 이런 현상은 분명 기업의 발전과, 더 나아가 우리 경제에 역행하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기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직접세는 법인세와 상속세 정도일 것이다. 최근 국제적인 추세는 이 세금 부담을 경감하는 쪽으로 가고 있고, 특히 법인세는 '바닥으로의 질주‘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 각국이 외국기업 유치와 투자 활성화를 위하여 그 인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조차도 법인세를 인하하고 상속세는 아예 폐지하고 있다. OECD 내에서도 상속세가 없는 나라가 15개국이다. 호주에 부자 이민이 많은 것도 상속세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만 '부의 대물림'이라는 편견에 갇혀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상속세에 관한 상반된 입장은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마찬가지다. 상속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을 강조하고, 반대하는 쪽은 높은 상속세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독일도 최고 세율 30%의 상속세를 갖고 있지만 특히 기업에 대한 상속세 감면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다. 임금의 총합이나 실제 생산 활동에 사용되는 영업자산이 일정 한도를 넘는 경우 상속재산의 85%까지 면세가 되고 심지어는 특별한 경우 100% 면세를 부여한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2014년까지 3번의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상속세 면세규정이 기업에 지나친 혜택을 주어 형평에 어긋난다는 위헌 판결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2016년에 상속법 개혁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기업의 특권적 상속세에 관한 핵심적인 면세 규정은 계속 존치되고 있다.

디차이트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기본 상속세율 30%가 적용되는 2,600만 유로 이상의 고액 상속에 대하여 평균 2.9%의 상속세가 과세된 반면, 11%가 적용되는 10만 유로에서 20만 유로까지의 소액 상속에 대하여는 평균 14.3%의 상속세가 부과되었다 한다. 누진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상속세가 현실에서는 역진적으로 과세되었다는 비판이지만, 그만큼 기업에 대한 감면제도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만약 상속되는 기업이 30%의 상속세를 내려면 그 정도의 고용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독일 사민당의 랄프 슈테그너는, 기업의 상속에 따른 세액만큼의 지분을 국가에 넘기고 국가는 이 지분을 갖고만 있다가 후일 해당 기업에 이 지분을 되파는 방법으로 상속세 현금 납부 부담을 덜어주자고 제안 하였다. 독일 경제의 중추인 가족기업, 미텔슈탄트의 대를 이은 기업 경쟁력 유지는 그만큼 독일 국가 경제에 사활적인 이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우리도 기업에 대한 상속세 감면 제도가 있지만 그 활용도가 미미하다. 무엇보다도 연 매출 3천억 원 이하의 기업에만 해당되어, 대기업은 물론 웬만한 중견기업도 이 감면 제도를 활용할 수 없으며, 최대 감면 한도도 500억 원에 불과하다. 이것은 기업의 크기에 따른 아무런 제한이 없는 독일과 대비되며 업종 변경 금지 기한이나 고용유지 등 사후 조건도 독일보다 훨씬 엄격하다. 당연한 귀결로서 우리 기업들의 감면 제도 활용도도 독일에 비하여 훨씬 떨어진다. 2011년부터 2015년 간 우리나라에서는 309개 기업만이, 독일에서는 88,226개 기업이 이 제도를 활용하였다니, 우리가 상속세 감면 제도를 운용한다고 하기에는 낯간지러울 정도다.

내가 만난 헤르만 지몬 회장도 상속세에 대하여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히든챔피언의 개념을 만든 사람이다. 높은 상속세가 중소기업의 창달에 유해하며, 부의 분배를 위한 적절한 수단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높은 상속세를 물리는 프랑스에서는 히든챔피언이 클 수 없었다며 차라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처럼 아예 상속세를 없애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가 되는 부의 대물림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인과응보 사상이나 불교철학에서의 카르마 Karma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인류의 역사는 물론, 한 가문이나 개인의 역사도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금수저가 되는 사람들, 그들 나름대로 선대의 카르마가 있지 않았겠나. 최재형 대선 후보의 상속세 폐지 주장을 계기로 현행 상속세제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기 바란다.

글 장시정(독일모델연구소 소장. 전 함부르크Hamburg 주재 총영사)

 

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소장
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소장

 

필자 장시정은 1981년 외무고시를 거쳐 지난 36년 간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였으며, <독일과 한국 경제> 등을 주제로 다수 강연하였다. 카타르Qatar 주재 대사와 오스트리아Austria 주재 차석대사, 함부르크Hamburg 주재 총영사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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