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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은 좋지만, 난민촌 이웃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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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은 좋지만, 난민촌 이웃은 싫다“
  • 장시정
  • 승인 2021.09.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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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정의 독일모델 연구

[푸드경제 장시정] 2014-2015년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 사태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독일에서는 2015년 한 해에만 공식 난민 신청자만 백만 명을 넘어섰으니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단기간 내에 들이닥쳤는지 짐작할 만하다. 독일 내로 들어온 난민들은 각 주와 도시의 경제력과 인구수에 따라 분산, 수용된다. 이른바 '쾨니히슈타이너 열쇠'라 불리는 이 원칙에 따르면 경제력이 크고 인구가 많은 대도시들이 대다수의 난민을 수용하게 된다. 하지만 실상은 이미 많은 인구를 가진 대도시보다는 중소 도시가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여력이 더 크다. 인구가 줄면서 생겨난 빈 집들도 있고, 사용하지 않는 군대 숙소나 공공기관 등 유휴 건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8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두 청원. 
지난 8월 28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두 청원. 

 

독일에서 "난민은 좋지만, 난민촌 이웃은 싫다."라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 전쟁과 기후변화로 증가하고 있는 난민을 누군가는 인도적 차원에서 도와주고, 수용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막상 자신의 일로 다가올 때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독일 기본법 제16 a조는 정치적 박해자에 대한 망명권을 보장하고 있다. 독일인들이 나치 시절 탄압받고 외국으로 망명해야 했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다. 2015년 8월 메르켈 총리가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슬로건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감당해야 한다고 독려하면서 독일 국경을 계속 열어 놓도록 포용적 결정을 포기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난민이 정치적 박해자인지 경제적 이민자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크게 보면 "난민은 좋다"라는 정신이리라.

그러나 이들의 수용 시설인 난민촌을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는 행정당국과 지역 주민들이 빈번이 대립하였다. 함부르크의 고급 주택가인 블랑켄네제 등 여러 곳에서 난민촌 건립을 저지하려는 행정소송이 제기되었는데, 결국 "난민촌 이웃은 싫다"라는 것이다. 드레스덴에서는 이슬람 난민을 반대하는 시위가 정기적으로 열렸다. '페기다'로 불리는 이 시위는 매주 또는 격주로 열렸고, 2015년 1월에는 최대 규모인 2만 5천 명이 모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5년 연말 쾰른과 함부르크 등 대도시 불꽃놀이 행사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난민들에 의한 집단 성추행 사건과 이듬해 베를린 '기억의 교회' 앞 성탄절 야시장에서 발생한 트럭 돌진 테러 사건은 급기야 메르켈 총리로 하여금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고 한층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게 하였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건 정부 당국자에게나 일반 시민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8월 15일 카불이 함락되고 미군이 철수하면서 아프간 인들의 긴 탈출 행렬이 시작되었다. 미군 비행기에 오르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된 카불 공항의 사진들이 시시각각 세계로 전달되었다. 이 와중에 우리 정부는 '미라클'이란 작전명의 소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소개된 390명의 아프간 인들이 지금 진천 숙소에 수용되어 있다. 정부는 이들을 '특별 기여자'라는 지위까지 부여한다고 한다. 아프간 난민 수용 문제를 놓고서 시민들의 의견은 갈린다. 그들이 우리의 아프간 재건협력 사업 등 정부 활동에 도움을 주었고, 또 그들이 탈출하지 못하면 탈레반에 의하여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으니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나라의 인구밀도 등 현실이나 종교 등 세계관의 차이를 감안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결국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난민은 좋지만, 난민촌 이웃은 싫다'라는 의견의 표출로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난민 문제가 제기된 것은 해방 후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후 6.25 전쟁이 기폭제가 되어 3백만여 명의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왔다. 이들이 사실상 대한민국 최초의 난민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이며 또한 당시 북한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는 지식인이나 전문 기술자들로서 전후 남한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것은 1685년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낭트칙령을 폐지하여 신교도를 탄압하자 이들 위그노들이 프로이센의 종교 관용책에 따라 대거 프로이센으로 망명하여 프로이센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역사적 사실과 비교할 만하다. 이렇게 월남하거나 탈북한 북한 주민들과 프랑스 위그노들이야말로 진정한 '특별 기여자'일 것이다.

2016년 여름 필자가 만났던 틸로 자라친은 독일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논객이다. 사민당 출신으로서 연방은행 임원과 베를린 주정부의 재무장관을 지냈다. 이민자 사회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조명한 베스트셀러 <독일이 없어져 간다>로 유명세를 치렀다. 2010년에 발간된 이 책은 150만 권이 팔렸다 한다. 이 책에서 그는 독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그들만의 성역을 쌓고 독일 사회와 통합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독일 사회 내 늘어나고 있는 이슬람 이민자들의 교육 상태, 사회적 관계, 범죄성, 근본주의적 사상에의 함몰 가능성 등으로 볼 때, 그들이 장래 독일 사회에 통합될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방치한다면 원래의 "독일은 사라지게 된다"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는 이민 국가가 아닌 만큼 제도적인 이민을 통하여 외국인이 한국에서 살게 되는 경우는 없지만, 위장 유학생이나 노동자들의 꾸준한 유입으로 사실상의 이민 국가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규모가 2007년 100만 명을 돌파한 이후 2016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섰고 다시 3년 만인 2019년에 250만 명을 넘어서서 총인구의 5%가 외국인이다. 문제는 그 증가세가 너무 가파르고, 중국인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인데, 중국인은 70만 명의 조선족을 포함하여 110만 명에 이른다.

자라친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인종적 요소와 문화적 요소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선천적으로 누구인지가 나의 문화도 결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속한 문화는 내가 무엇이 될지, 또는 내가 무엇이 되려고 할지를 결정한다." 상당히 운명론적인 견해이지만, 이것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민이든 난민이든 일단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경제적 부담과 함께 사회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다. 이것은 21세기 들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심각한 국가도전 과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글 장시정(독일모델연구소 소장. 전 함부르크Hamburg 주재 총영사)
 

 

필자 장시정은 1981년 외무고시를 거쳐 지난 36년 간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였으며, <독일과 한국 경제> 등을 주제로 다수 강연하였다. 카타르Qatar 주재 대사와 오스트리아Austria 주재 차석대사, 함부르크Hamburg 주재 총영사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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