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6:10 (일)
실시간뉴스
'기본소득제'는 과연 세계적 추세인가?
상태바
'기본소득제'는 과연 세계적 추세인가?
  • 장시정
  • 승인 2021.08.28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시정의 독일모델 연구

[푸드경제 장시정] 내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형적인 기본소득의 정의는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매월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권리로서 간주되며 자유권과 같은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박탈당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적격 심사를 거쳐 선별된 사회적 약자에게만 제공되는 사회부조나 사회보장과는 구별된다. 기본소득은 시민소득이나 사회배당 또는 국가 보너스 같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번 대선에서 기본소득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후보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도이다. 야당 후보들이나 여당 내 다른 후보들은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핀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파일럿 프로젝트 실험을 하고 스위스에서는 주민투표도 했지만 결과는 부정적이다. 즉, 이 실험들이 기본소득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였으며, 실제로 기본소득제를 국가 단위에서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아직까지 단 한곳도 없다.

 

pixabay
pixabay

 

이런 가운데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자영업자 등 많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계를 위협하면서 기본소득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유엔은 저개발국 주민들에게 매일 5.5 달러의 글로벌 기본소득을 제안하였고, 독일에서는 18만 명의 시민들이 연방의회에 '팬데믹 기본소득'을 청원하였다. 독일 베를린경제연구소DIW의 마르셀 프라셔 소장은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에게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며 한계에 부딪힌 기존 사회보장제의 근본적 개혁 필요성을 제기하고, 올 초부터 122명의 장기 실업자들에게 월 1,200유로의 기본소득을 3년간 지급하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였다.

함부르크 대학의 토마스 슈트라웁하르 교수는 연령이나 소득에 무관하게 지급하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제’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수령자는 심리적으로 좀 더 떳떳해지고 행정적인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며 국가는 행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래서 건강보험이나 개인 보험 정도만 남기고 여타의 사회보장은 평생 기본소득제로 대체하자는 것인데, 어차피 로봇이 일하고 3‑D 프린터가 집도 찍어내는 시대에 우리 삶의 방정식도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튀링겐주의 알트하우스 주총리는 '연대적 시민급부'란 이름으로 그의 모델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근거는 기본소득이 무엇보다도 인간의 자아실현과 개인적 자유를 위한 전제 조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말하는 '차등 원칙' 상 가장 불리한 사람들의 지위를 개선하므로 정의롭기도 하다. 기본소득의 구조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누군가가 돈을 벌고, 국가가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결국은 부자들의 돈이 빈자에게로 옮겨 가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무차별, 무조건적인 성격은 "사람 중심"의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런 무조건적인 재정 이전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국가가 무슨 권리로 기본소득이란 제도를 만들어 추가적인 부담을 강요할 수 있는가이다.

이 같은 철학적 빈곤 외에도 기본소득이 노동시장 효과가 없다는 치명적 약점이 드러났다. 핀란드에서 실시한 파일럿 프로젝트의 결과, 연간 6일을 더 일한 것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특히 허드렛일을 하는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경향으로 임금 인상과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더욱 촉진한다. 기본소득이 있는 한 최저임금을 올려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재정 여력이다. 현실적으로 기본소득제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함부르크 주총리 출신으로 연방재무장관인 올라프 숄츠는 백번 양보해서 기본소득을 ‘공정하고 옳은 것’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재정적인 감당을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기본소득제가 지금까지 집적해 온 사회보장제의 성과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 했다. 차라리 가능한 범위에서 최저임금의 인상을 선호한다. 독일에서 성인에게 월 1,000 유로, 미성년자에게 월 500유로의 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재원은 매년 9천억 유로이다. 그런데 2019년 독일의 전체 세수는 8,000억 유로였다. 기본소득제는 개념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불가능한’ 것이다.

독일 내 각 정당이나 경제, 노동계도 기본소득에 대하여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메르켈 총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 사회가 연대적으로 도와준다"라는 사회국가의 원칙에서 벗어난다고 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근로 정지에 대한 휴업 프리미엄"으로, 가족기업협회는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살아가는 혁신 적대적인 연금 멘탈리테트"로 비판한다. 녹색당과 좌파당Linke은 기본소득 또는 최소보장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1797년 토머스 페인은 50세 이상의 노령층에 대한 기본소득을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21세로 성년이 되는 청년들에게 일 회에 한해 일정 금액을 지급하되, 그 재원은 토지의 기초 지대로부터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는 토지 자체는 원래 사회의 공동재산이며, 그것에 추가적으로 투입된 부가가치만을 개인의 소유로 보았기 때문에 토지의 원 가치로부터 나오는 기초 지대는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보았다. 페인의 이러한 입장이 오늘날 '토지공개념'의 이론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소유권의 기초를 노동에서 찾고 개인의 노동이 투입된 토지는 전부가 그 개인의 배타적 소유물이 된다는 존 로크의 자연법적 소유권 주장과 대비된다. 이재명 지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토지세(국토보유세)의 근거가 아마도 토마스 페인의 기초 지대가 아닌가 싶다.

오늘날 걸프 연안의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같은 국가들에서 기본소득의 맹아를 볼 수 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게으름’에 대한 대가로 국가로부터 넉넉한 돈을 받는다. 노동은 외국인들의 몫이다. 관건은 석유나 가스에서 나오는 수입금이다. 그들의 석유나 가스를 쓰고 있는 우리 국민들도 그들의 기본소득을 금전적으로 받쳐 준다. 하지만 우리가 기본소득제를 한다면 누가 돈을 댈 것인가?

더욱이 우리나라의 재정적 환경도 크게 열악해지고 있다. 상술하지는 않겠지만 국가부채의 급증으로 국제 신용 평가기관의 경고까지 받았다. 세계 어떤 나라도 시행하고 있지 않는 생소한 제도를 어느 날 갑자기 선택할 수는 없다. 기본소득제가 나름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첫째 충분한 국민 공감대를 모으고, 둘째 설득력 있는 파일럿 실험에 의한 검증을 거치고, 셋째 기존의 사회보장제를 점차로 대체해 나가는 방향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재정적 여력이 비축된 다음에나 그 도입 여부를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장시정(독일모델연구소 소장. 전 함부르크Hamburg 주재 총영사)

 

 

필자 장시정은 1981년 외무고시를 거쳐 지난 36년 간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였으며, <독일과 한국 경제> 등을 주제로 다수 강연하였다. 카타르Qatar 주재 대사와 오스트리아Austria 주재 차석대사, 함부르크Hamburg 주재 총영사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이 있다.

#푸드경제신문 #장시정 #기본소득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