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6:35 (일)
실시간뉴스
교통사고 후진국 유감
상태바
교통사고 후진국 유감
  • 장시정
  • 승인 2021.08.10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푸드경제 장시정] 하루가 멀다 하고 치명적인 교통사고 뉴스를 접한다. 최근 여수에서 트레일러가 횡단보도를 덮쳐 십 수 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는 특히 충격적이다. 지난 5월에는 택배차가 인근 상가 건물로 돌진, 도시가스 배관을 건드려 폭발을 일으키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화물차에서 대형 강판 코일이 떨어지기도 했다.

​후진국에서 제일 무서운 건 풍토병이 아니라 교통사고라고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은 영락없는 후진국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하는 인구 10만 명당 연간 교통사고 사망률을 보면 대륙별로는 아프리카, 중동, 남미, 동남아시아 순이다. 중동에는 부자들이 많아 좋은 차로 엄청난 속도를 낸다. 왕족에 속하는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은 교통 범칙금을 내지 않을뿐더러 사고를 내도 돈으로 보상하면 끝이다. 중동 지역이 아프리카 못지않게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이유이다.

​한, 일, 중을 비교해 보면, 10만 명당 도로 교통 사망자가 2017년의 경우 일본은 2.37 명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안전한 나라이고, 한국은 그보다 3.4 배가 넘는 7.98명, 중국은 그보다 7.5배가 많은 17.73 명이다. 그러니 우리가 일본에 “범 내려온다”라고 허풍 칠 일도 아니고, 중국이 ‘중국몽’이라는 그릇된 자부심을 가질 일도 아니다.
 

 

여수 한재사거리 사고 현장. 7월20일 오전 8시56분쯤 전남 여수 한 사거리에서 탁송차량이 다수의 주변 차량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 차량 운전자와 보행자 등 15명 중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여수시 제공)
여수 한재사거리 사고 현장. 7월20일 오전 8시56분쯤 전남 여수 한 사거리에서 탁송차량이 다수의 주변 차량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 차량 운전자와 보행자 등 15명 중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여수시 제공)

 

OECD 국가들끼리 비교해 보면 일본이나 서유럽 국가들이 제일 안전한 나라들이고 한국은 멕시코, 터키, 그리스, 루마니아, 폴란드와 같은 나라들과 함께 OECD 내 교통사고 후진국 그룹에 속해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국민소득에 따른 선진국과 후진국 구분이 교통사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인데, 한국은 그 예외다. 즉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국민소득에 비해 교통사고는 여전히 후진국 형이다. 왜 그럴까? 우리도 중동처럼 졸부 국가라서 그럴까?

내가 수년 전 오랫동안의 해외 생활 후 국내에 돌아와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우리의 일상에서 교통 규칙을 위반하는 구태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보행자에게 차를 들이대고,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들이 오히려 많아진 느낌이다. 여기에 많은 배달 오토바이나 전동 킥보드까지 합세하여 교통질서가 더욱 문란해졌다.

​왜 우리는 높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통사고 후진국일까. '빨리빨리' 문화 때문일까, 사실 서울과 같은 대도시 생활에서는 지하철을 타지 않는 한, 도로 위 교통사정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정확한 교통 소요시간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우선은 약간 느긋한 마음이 필요할 터이고 또 약속시간을 지키려면 예상보다 훨씬 일찍 출발해야 한다.

내가 유럽에 있으면서 그들에게 배운 것은 바로 약속시간보다 훨씬 먼저 가있는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늘 늦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필시 매우 이기적인 사람일 것이다. 상대방의 시간보다는 자신의 시간만이 아깝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의 약속시간 기준은 우리와 다르다. 예를 들어 운동장에 모여서 축구를 하기로 했다면 그들은 약속 시간 전에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그 약속 시간에 운동장에 나와서 공을 찰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도로 사정이나 교통안전 설비의 수준은 나무랄 데 없다. 안전 운전을 위하여 도로 상에 비치된 여러 표지판이나 장치들은 오히려 번거로울 정도다. 하지만 사고는 이런 게 부족해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음주 운전이라든가 거친 운전 같은 운전자의 부주의에 의한 사고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운전자의 안전 의식이 문제다. 독일에서 면허를 딸 때, 예를 들어 도로주행 시험을 보면 시험관이 옆에 동승을 한다. 지정된 코스를 제대로 운전하고 마지막에 하차할 때 좌측 사이드 미러를 보지 않고 내리면 불합격된다. 차 문을 열면서 따라오는 자전거를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내가 캐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우연히 보게 된 도로변 전광판에 쓰인 글귀 하나가 지금껏 나의 운전 지침이 되고 있다. "운전은 가장 높은 주의력을 필요로 한다"라는 경구였는데, 이것이 나로 하여금 운전대를 잡는 순간, 최고의 주의력을 발동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였다. 우리 운전자들의 보다 높은 안전 의식을 재삼 기대해 본다.
 

​글 장시정(독일모델연구소 소장. 전 함부르크Hamburg 주재 총영사)
 

필자 장시정은 서울대학교 학사, 석사를 마치고 1981년 외무고시를 거쳐 지난 36년 간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였으며, <독일과 한국 경제> 등을 주제로 다수 강연하였다. 카타르Qatar 주재 대사와 오스트리아Austria 주재 차석대사, 함부르크Hamburg 주재 총영사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