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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일기-혜윰뜰에서 온 편지 8 '공연이 끝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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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일기-혜윰뜰에서 온 편지 8 '공연이 끝난 뒤'
  • 이연숙 기자
  • 승인 2021.02.24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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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가 열렸다. 혜윰뜰 텃밭에서. 올봄에 콘서트 이야기할 때만 해도 농담이나 희망 사항 같은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그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난 4월에 콘서트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텃밭에서 콘서트라니, 게다가 이 시국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할 수 있다면 재미있겠다 느낀 것도 사실이다. 혜윰뜰 텃밭 콘서트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게 봄, 여름이 지나고 혜윰뜰 텃밭에서의 콘서트는 모두의 마음에서 잊혀진 듯했지만, 오판이었다. 가을이 오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정착되자, 해볼 수 있다는 생각들이 커져갔다. 그렇게 콘서트의 준비는 시작되었다. 마침 좋았던 것은 평소 마을에서 많이 의지하는 활동가 분의 소개로 같은 마을주민인 공연기획 PD님과 만남이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출연진 구하지 못하면 마이크에 스피커 하나 두고 나라도 나가서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콘서트의 그림이 한순간에 작은 방송 수준 공연으로 피어났다.

공연기획 PD님과의 첫 만남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처음 만남 자리에서 출연진 이야기부터 꺼냈다. 어느 정도 섭외가 가능하겠냐는 나의 물음에 “어느 정도까지 필요하신데요”라는 자신감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처음 논의 자리에서 정해진 출연진이 50·60세대의 유명가수, 테너 류정필 님, 그리고 사회는 KBS 유명 프로그램의 성우인 송연희 님으로 정해졌다. 한 시간 정도의 회의가 끝나고 내려오면서 든 솔직한 마음은 이랬다.

‘아니, 동네 텃밭 무대 배추 앞에서 50·60세대의 유명가수와 테너 류정필 님이 공연한다고? KBS 성우님이 사회를 보고, 공연기획 PD님은 보상도 없이 재능기부로 공연을 준비하신다고?’ 비현실적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 회의 논의가 너무 순조로운 탓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난관이 찾아왔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에 콘서트를 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일어났다. 그래서 방역 기초부터 다시 논의하였다. 때마침 서울시 도시농업과에서 있었던 도시농업 네트워크 데이라는 행사 2부 토크쇼에 패널로 초대받았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서울시 행사의 방역에 관한 조치들을 보며, 같은 수준의 방역으로 행사를 준비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을 찾은 것이다.
 

 

그와 함께 주변의 도움이 이어졌다. 공동주택의 입주자대표회의는 텃밭 이용에 대한 조건 없는 기회를 제공해주었고, 혜윰뜰 공동체 회원들은 각자 스태프를 자처하며 공연 참여의 뜻을 밝혔다. 언젠가는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리라는 희망으로 시작된 텃밭 콘서트의 의지가 꺾여 스러지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텃밭 콘서트는 내일에 대한 작은 희망의 전환점처럼 자리를 잡아갔다. 공연의 날이 그렇게 하루하루 찾아왔다.
 

혜윰뜰 회원 중 스태프를 정하여 누군가는 출연진 응대를 담당하고, 또 누군가는 공연장 꾸밈을 맡았다. 나는 여러 업무 중에서 출연진의 식사와 커피를 담당했다. 모두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공연 당일이 되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온택트 공연이 되다 보니 종로TV에서 실황중계까지 하게 되었다.

자 손볼 일이 한둘이 아니다. 식사는 제때 준비가 될지, 커피는 어떻게 하면 찬바람에 따뜻한 커피를 제공해야 하는지, 공연장이 될 혜윰뜰 텃밭 입구를 꾸미는 작업은 언제까지 마무리가 되어야 할지, 시시각각 다가오는 작은 과제들이 쌓이고 해결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공연의 시간이 다가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온택트 공연이 되다 보니 종로TV에서 실황중계까지 하게 되었다. 혜윰뜰 텃밭의 가을 농사 결실이 방송까지 나가는 상황이라, 배추 잎 하나하나에도 마음이 쓰인다. 거리두기를 위해서 객석을 넓게 배치했다. 누군가는 배추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야 하는 상황도 연출이 되었다.

혜윰뜰 텃밭의 가을 농사 결실이 방송까지 나가는 상황이라, 배추 잎 하나하나에도 마음이 쓰인다. 거리두기를 위해서 객석을 넓게 배치했다. 누군가는 배추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야 하는 상황도 연출이 되었다.

 

 

황금빛 햇살이 공연장에 쏟아진다. 마치 공연 시작을 알리는 조명처럼 부드러운 빛의 물결이 텃밭 작물 사이사이를 채우기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천막에서는 총감독과 음향 팀이 리허설에 맞춰 장비를 조정하고 있다.
 

 

공연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아니 어쩌면 어딘가 부족한 것이 있었거나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공연이 시작된 순간부터 나는 스태프라거나, 관계자가 아닌 관객으로 몰입해서 알 수 없었다. 공연을 시작하는 열정적 탱고 무대에 빠져든 순간부터 온전히 관객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마법 같은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하여 나 자신조차도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경험은 새롭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무대가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테너 류정필 님의 때로는 강렬하거나 애절함이, 여전히 소년 같은 감미로운 50·60세대의 유명 가수의 부드러움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재능기부를 해 주신 PD님, 구청 관계자, 스태프 모두의 눈빛에 안도의 기운이 감돌았다. 날이 너무 추워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구름과 햇살이 시시각각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텃밭의 음영과 황금빛이 무대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었다. 공연 현장에서 함께한 이웃 분들의 인심 좋은 덕담 같은 격려의 말씀에 그제야 긴장한 마음이 평상심을 찾아가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행사였고, 각자 해야 할 몫의 일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도, 형언하기 힘든 공허함이 문득 피부를 파고 스며든다. 시간을 재촉하는 스산한 겨울비가 마침 내린 탓일까,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그 날이 벌써 그리운 이유 때문일까.
 

 

글·사진 채동균(혜윰뜰도시농업공동체 대표)
영국의 시인 William Wordsworth를 동경하여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으나, 사회 생활을 IT 기업에서 시작하는 비운을 겪으며, 평생 생업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로 활동해오고 있다. 마을에서 우연한 계기로 주민대표를 4년간 맡은 인연으로 혜윰뜰 도시농업공동체 대표가 되었다. 생업과는 별개로 마을에서는 주민공동체 활동, 문화강좌 프로그램 기획 등으로 이웃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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