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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일기] 함께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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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일기] 함께 부르는 노래
  • 채동균
  • 승인 2020.07.31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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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뜰 텃밭에서 온 편지 1
무단 점유로 인해 쓰레기 더미가 방치되어있던 공유지의 모습.
무단 점유로 인해 쓰레기 더미가 방치되어있던 공유지의 모습.

[푸드경제 채동균] “와, 심하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86번지는 무악현대아파트의 공유지다. 필자가 처음 입주자대표가 되고 주민의 제보로 방문한 그곳은 그야말로 난장판 그 자체였다. 약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공유지를 무단 점유하고 있던 이들은 이곳을 온갖 쓰레기의 무덤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거에는 무단점유한 주민이 공유지에서 쓰레기를 태우다가 화재로 번져서 소방차가 출동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무악동 86번지는 말 그대로 공유지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이 공유지의 비극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공유지, 그것도 생명을 키우는 공동체의 텃밭으로 바꾸기까지의 이야기이다.

2018년 8월 무더위가 한참이 그날 사람의 끝없는 이기심을 보았다. 공유지인 무악동 86번지를 무단점유 하던 주민에게 점유행위 정리를 요구하자 오히려 공유지의 수목을 꺾어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말았다.

오랫동안 원만하게 상황 해결을 위해서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날 입구를 막아 놓은 공유지를 보고서 스스로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공유지를 복구하겠다는 그동안의 희망을 내려 놓고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날, 생각하지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무단점유를 하고 있던 주민이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궁금함에 사무실 업무를 던져 놓고 한걸음에 현장에 왔다. 

그리고 공동체의 이야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는 기억에 남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무단점유 주민과 긴 시간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사과도 받았다. 그동안 대화를 시도했던 필자가 무악현대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장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사과였다. 회장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이 중요하지는 않았지만, 회장이 요구하여서 물러설 때라고 느꼈다는 말에 처음으로 회장이라는 역할을 맡은 보람을 느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당 주민도 과거 공유지를 노숙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나섰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을 지키다 보니 땅에 대한 애착이 생겼고, 그 애착이 점유로 이어진 것이었다. 일년을 넘는 시간 동안 무단점유를 해소할 생각만 했지만, 왜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는 들어볼
생각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쓰레기를 치우자 서서히 공유지의 원래 모습이 드러났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쓰레기를 치우자 서서히 공유지의 원래 모습이 드러났다.

 

무단점유를 해결하고 난 뒤 6개월 동안은 이웃과 함께 청소만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선 공간을 비워내야 한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반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공유지는 가능성과 함께 어려운 과제도 함께 안겨주었다.

공동체를 위한 텃밭이나 생태정원으로 가꾸겠다는 열의와 희망으로 노력했지만, 막상 청소를 하고 보니 공유지 공간은 온통 콘크리트의 산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달 동안 구청을 다닌 것 같다. 주민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행정에 도움을 구한 것이다. 혼자서는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어서, 당장 경작할 수 있는 텃밭도 없는 상태에서 주민과 함께 도시농업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공동체가 혜윰뜰 도시농업공동체의 시작이다.

도시농업공동체로 모여서 행정에 도움을 구하니 행정에서도 주민의 진심을 봐주기 시작했다. 2019년 3월 어느 날 행정에서 중장비를 이끌고 현장을 찾아왔다. 주민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던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새싹 같은 도시농업공동체가 새 잎을 세상에 내밀기 위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시작 되는 순간이었다.

글·사진 채동균(혜윰뜰도시농업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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