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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일의 즐거움
  • 이상미 박사
  • 승인 2019.04.2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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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닉라이프신문 이상미박사] 만물이 생동하는 따사로운 봄날. 한해농사를 시작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그런데, 농촌농부 못지않게 도시농부들의 손길 또한 바빠집니다. 도시농업을 아시나요? 이달엔 텃밭 일의 즐거움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글 이상미 박사(농촌진흥청 도시농업과)

도시농업은 도시지역에 있는 토지, 건출물 또는 다양한 생활공간을 활용하여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나무, 꽃 등을 재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도시농업에 대한 높은 관심과 참여로, 2010년에 비해 도시텃밭 면적과 참여자수는 약 10배가량 증가하였습니다.

도시농업은 아름다운 도시경관 조성, 운동, 정서적 안정, 지식과 기술의 습득, 사회적 유대관계 증진과 같은 다양한 효과를 가집니다. 특히 도시농업의 대표적 공간인 텃밭에서는 다양한 생태와 환경도 즐기며 맛있는 부식거리도 생산할 수 있어 아주 인기가 높습니다.

그러나 텃밭 일을 시작할 때에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기대와 희망을 안고 시작한 텃밭농사를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텃밭에 무엇을 심으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고는 합니다. 그때 저는 질문을 조금 바꾸어 “텃밭에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요?”라고 여쭤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상추, 치커리, 당귀, 토마토, 고추, 콩, 고구마뿐만 아니라, 벌레들이 좋아하는 겨자채, 다채도 심어 벌레들에게 양보해 보세요.

남아서 옆집에 인심 쓸 상추 대신, 옆집 어르신이 좋아하는 채소는 무엇인지 미리 넌즈시 여쭙고 심어보는 건 어떨까요? 텃밭을 오가는 나를 향기롭게 맞이하는 허브!, 뙤약볕에서 땀 뻘뻘 흘리고 고생한 나의 눈과 입을 호강시켜주는 예쁘고 맛있는 꽃들까지... 또한 내가 초대하지 않은 나비와 벌, 따스한 햇살과 땅을 적시는 촉촉한 비까지 텃밭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잘 가꾼 내 텃밭을 보여줄 친구와 가족도 함께라면 좋겠습니다.
 

탄생, 성장, 수확! 이러한 사건과 함께하는 기쁨, 환희, 즐거움!
우리는 텃밭에서 이런 사건들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세상일이 내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초대하지 않은 벌레과 병, 과한 바람과 비, 가뭄뿐만 아니라, 누군지 모를 큼지막한 발자국도 불청객으로 찾아오고, 병들고 시들고 죽고, 거기에 잡초까지..... 어쩌면 텃밭은 분노와 슬픔,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기대와 희망, 분노와 좌절이 공존하는 텃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텃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수용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혼선언문에 맹세라도 하듯,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화나는 일도 함께 하겠다고 굳게 맹세합니까?’

하지만 결혼생활이 꽃길만은 아닌 것처럼, 그렇게 텃밭에서의 한해살이는 우리의 인생을 미리 한 바퀴 살아본 것만 같은 깨달음을 가져다줍니다.

텃밭은 식물을 기르면서 내 마음을 함께 기르는 곳. 씨앗을 뿌리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떤 씨앗을 뿌리며 살아왔나?’ 질문도 해보고, 이사한 다음 날 욱신거리는 몸과 낮선 이웃을 보면서, 옮겨심기 한 모종이 낯선 환경에서 몸살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해보구요.

오이의 덩굴손이 잡을 수 있는 망을 설치하고, 토마토가 기댈 수 있는 지주대를 꽂아주면서, 나는 과연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고,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준적이 있는지 되묻기도 하고, 순을 지르고(적아), 꽃도 따주고(적화), 열매도 따주면서(적과) 이 예쁜 것들을 잘라야하다니... ‘자를까말까’라는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의 소용돌이에서, 다음 과정에서 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하는 삶이란 무언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도 던져봅시다.

전투적으로 뽑아냈던 잡초가 이듬해 다른 식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할 퇴비가 되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단다~’라는 애니매이션 대사를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텃밭은 그렇게 고스란히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흥망성쇠(興亡盛衰)’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모두 경험하는 곳인 것입니다.

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을 의미하는 ‘텃밭’은 노동을 하는 ‘일터’ 가 아닌, 도시농부들에게 있어 ‘쉼터’요, ‘놀이터’요, ‘배움터’이며, 더 나아가 위안과 치유를 위한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텃밭농사가 망칠 일이 없고 즐거움이 됩니다.

사진 농촌진흥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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