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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시작’ 춘분…농업의 가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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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시작’ 춘분…농업의 가치를 생각한다
  • 김종면 논설주간
  • 승인 2018.03.2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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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주간]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도, 얼음이 녹고 싹이 트는 우수도,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도 지났다. 그러면 이제 춘분인가. 24절기 중 네 번째인 춘분은 경칩과 청명 사이에 있다. 24절기는 음력이 아니라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다. 춘분은 태양이 춘분점에 이르렀을 때, 다시 말해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출 때를 말한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黃道)와 적도가 일치하는 날이다. 보통 3월 21일 전후가 춘분이다,

춘분 때는 음양이 반으로 나뉘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추위와 더위 또한 같아진다. 일 년 중 춘분 시작일부터 약 20일 동안은 기온이 가장 크게 오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날씨는 쌀쌀하다. ‘춘분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다. 이는 필경 춘삼월 꽃 피고 잎 돋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아니 잎샘추위다. 그러나 ‘덥고 추운 것도 춘분과 추분까지다’라는 말도 있다. 이 철지난 추위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계절의 운행은 정직하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은 자연의 이법을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이 말을 안 해도 사계절은 움직이고 땅이 말을 안 해도 만물은 생겨난다”

춘분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농부들이 일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이 풀리면서 농부의 손길은 더없이 분주해진다. 이 무렵 우리 조상들은 ‘하루 밭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고 믿어 춘분날을 ‘농경일’로 삼아 씨를 뿌렸다. 춘분 때면 파종할 씨앗을 이웃끼리 서로 바꾸어 종자를 가려냈고, 연약해진 논두렁에는 말뚝을 박아 힘을 북돋웠다. 천수답에서는 귀한 물을 받기 위해 물꼬를 손질했다. 그야말로 고양이 손도 빌리고, 부지깽이도 나와서 도와야 할 만큼 바빴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춘분 풍경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농사가 주업인 전형적인 농촌이 많이 사라진 지금, 춘분의 의미는 사뭇 퇴색했다. 농번기 농촌의 일이란 예나 지금이나 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농촌의 노동력 부족은 만성적이고 고질적이다. 애써 재배한 농작물을 거두지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탈농촌·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농촌의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나 혼자 부지런해서, 혹은 이웃끼리 품앗이를 하며 농번기를 헤쳐 나가는 것은 한낱 허구적 낭만에 불과하다.

마침내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까지 불러들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른바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다. 계절근로자제도는 파종이나 수확 등 특히 일손이 많이 필요한 농번기에 한시적으로 외국인 인력을 투입하는 ‘농부수혈’ 창구다.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인원을 법무부에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90일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체류 가능한 단기 취업(C-4) 비자를 발급하고, 지자체가 외국인을 농가에 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는 2015년 충북 괴산군에서 처음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최근에는 지자체들이 앞 다퉈 도입해 올해는 31개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들여오는 국가도 기존의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국가에 올해부터 라오스가 추가돼 모두 16개국으로 늘었다. 외국인 근로자는 이제 농촌에 없어서는 안 될 ‘효자손’ 같은 존재가 됐다.

하지만 이 같은 외국인 계절노동 사업이 당장은 일손 부족 현상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농촌의 미래를 담보할 항구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들 국외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나 노동법 사각지대화를 우려하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농업가치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은 새삼 이야기할 것도 없다. 환경과 생태 보전, 전통문화와 농촌경관 유지, 국토의 균형발전 등 농업의 다원적 공익 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농정이념과 정신을 헌법에 담을 필요가 있다.

21일은 춘분, 농사를 시작하는 절기다. 봄나물에 볶은 콩, 나이떡, 머슴떡을 함께 나눠 먹으려 농사를 짓던 목가적인 춘분 분위기는 이제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시대가 바뀌면 풍습도 풍경도 바뀐다. 그러나 농업의 가치는 영원하다. 농촌이 신음하는 나라는 병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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