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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난시대, ‘풍년송’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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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난시대, ‘풍년송’이 그립다
  • 김종면 논설위원
  • 승인 2017.12.0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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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위원] 한국이 내년부터 개발도상국에 쌀을 지원한다. 정부가 제출한 '식량원조협약(Food Assistance Convention·FAC) 가입 동의안'이 지난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식량공여국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국제 식량원조 정책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식량원조국이 됨으로써 우리의 국격 또한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식량원조협약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14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개도국을 대상으로 인도적 목적의 식량을 지원하는 국제 협약이다. 회원국들은 연간 총 30억달러(2017년 기준) 규모를 약정하고 이에 따른 식량 원조를 이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년 개도국에 460억원(약 4000만달러)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약정 이행 방법으로 내년에 국산 쌀 5만t을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중동, 아프리카 등에 원조할 예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외교부 등 관계기관과 수원국 선정, 구체적인 지원 방식 등을 협의하고 원조 실행 단계에서는 국제 전문원조기구인 UN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을 활용할 방침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5만t을 원조하면 1만헥타르(ha)의 농지를 휴경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매년 과잉 생산과 소비 감소로 20만∼30만t의 쌀이 남아도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여력이 있어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최근 WFP 한국사무소가 서울에서 개최한 ‘제로 헝거(Zero Hunger)를 위한 동행’ 행사에서 데이비드 비슬리 WFP 사무총장은 “한국은 식량 원조를 받던 수원국에서 원조를 주는 공여국으로 전환한 WFP의 예외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라며 “2030년까지 ‘기아 없는 세상’ 달성에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1964년부터 20년간 WFP로부터 식량 원조를 받아왔다.

우리가 자랑스러운 ‘가난극복’의 역사를 말할 때 으레 언급하는 것이 있다. 한국은 지난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이후 순수 수원국에서 순수 공여국으로 전환한 세계 ‘유일’ 국가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하게 개발도상국들의 롤 모델로 공적개발원조(ODA)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면 물론 평가할 만한 일이다.

개도국에 쌀을 지원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우리의 ‘남아도는 쌀’ 문제를 생각하면 마냥 뿌듯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넘쳐나는 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절대농지를 해제했다. 쌀 수급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벼 재배면적을 줄이기 위해 ‘농업진흥지역’으로 묶여있는 절대농지를 푼 것이다. 절대농지를 해제해 ‘농업보호구역’으로 용도를 변경한 뒤 6차산업 또는 뉴스테이 부지 등으로 활용했다.

정부가 절대농지 감축에 매달리는 것은 쌀이 남아돌아 값이 계속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쌀값이 하락하면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그만큼 세금을 쏟아 부어야 한다. 정부가 매입하는 쌀 직불금은 연간 1조 4000억 원에 이른다. 연간 지급할 수 있는 총액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보조총액(AMS) 한도인 1조 4900억 원으로 제한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논 타작물재배지원(쌀 생산조정제) 사업을 한시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공급 과잉 상태인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벼를 경작하던 농지에 콩 등 다른 작품을 재배하는 농가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쌀 생산조정제는 2011~2013년에도 시행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벼를 재배할 경우 직불금 등 정부 보조가 적지 않은 만큼 쌀 농가가 얼마나 벼를 다른 작물로 바꿀지는 의문이다. ‘흙’을 사랑하지만 또한 증오할 수밖에 없는 허탈한 농심을 헤아린다면 정부는 직불금을 넘어 특단의 ‘유인책’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쌀 수입 개방이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수급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공급을 줄이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정부가 정한 의무 휴경면적을 준수할 경우에만 직불금을 지급하는 ‘생산조정형 변동직불제’를 도입해 쌀 생산농가가 수급 조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쌀 생산조정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산 이슈가 걸려 있어 지자체로서는 부담이 되겠지만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가 처한 심각한 쌀 문제의 딜레마는 지방정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최근 5년간 쌀 재배면적은 감소 추세다. 올해는 쌀 생산량이 37년 만에 처음으로 400만t 이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에 비해 5.8% 줄었다. 하지만 식생활의 서구화 등으로 1인당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쌀 재고는 올해 2월 역대 최고치인 351만t을 기록했다.

삼사월 단비에 종자를 뿌려서 육칠월 햇빛에 오곡이 익었다는 흥겨운 ‘풍년송(豐年頌)’은 이제 꿈같은 고릿적 노래가 됐다. 풍년이 와도 반갑지 않은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농업의 가치, 헌법에 담다’ 토론회에서는 앞으로 헌법 개정이 이뤄지면 4차 산업혁명 시대 농업의 역할과 국가의 지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어느 시절 어느 하늘 아래서도 농사는 천하의 근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진 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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