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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된 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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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된 미세먼지
  • 김종면 논설위원
  • 승인 2017.11.1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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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위원] 25년 만에 한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안개와 미세먼지 때문에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취소했다.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중대한 국가 대사마저 치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안개야 걷히면 그만이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차원이 다르다. 이 자연재해이자 ‘인공재해’인 미세먼지는 그야말로 ‘고질’이다. 여간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봄철 불청객이라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됐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엄습한다.

미세먼지는 흔히 황사와 함께 찾아온다. 미세먼지의 원인을 제공하는 황사가 올가을 들어 벌써 두 차례나 나타났다. 황사의 발원지인 내몽골과 중국 북부의 가뭄과 사막화가 심각해지면서 ‘가을황사’가 잦아지고 있다. 가을 황사는 최근 들어 부쩍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1960년부터 1999년까지 서울에 황사가 나타난 건 총 159회로, 이 중 가을(9∼11월) 황사는 3회(1.9%)에 불과했다. 반면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에 나타난 총 177회의 황사 가운데 가을 황사는 11회(6.2%)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지구 온난화로 황사 발원지의 가뭄이 빈발하고 사막화가 가속화되면서 황사가 봄뿐만 아니라 가을과 겨울에도 미운 손님이 된 것이다. 이제 날씨를 확인할 때 비가 오는지보다 미세먼지 농도에 더 관심을 갖는 세상이 됐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중국내륙에서 한반도 방향으로 부는 편서풍이 강해지고 날씨가 추워져 난방을 시작하면 한반도로 날아오는 미세먼지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미세먼지 하면 일단 ‘중국발(發)’부터 의심하지만 우리에게도 만만찮은 귀책사유가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총생산량 중 화력발전의 비율은 66%(천연가스, 석유, 석탄 포함. 2015년 기준)에 이른다. 이 중 화석연료인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은 전체의 42%를 차지한다. 발전 연료로 사용되는 석탄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석탄 발전은 액화천연가스(LNG)보다 미세먼지를 최대 1682배나 더 많이 배출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최고 수준의 석탄발전소 밀집 국가다. 무려 59기의 석탄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이 중 절반이 충남 당진을 중심으로 서해안에 몰려 있다. 지난 ​3월 세계 최대 석탄발전소가 위치한 당진에서는 전 세계 40여 개 국의 시민단체 등이 연대해 신규 석탄발전소 계획 철회와 석탄 사용 중지를 촉구하는 ‘브레이크 프리(Break Free)’ 캠페인이 열리기도 했다. 이제 석탄으로부터 떠나라는 외침이다. 국민의 65.6%가 화력발전소 신설에 반대한다는 최근 여론조사도 있다. 언제까지 석탄 소비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것인가.

석탄화력발전은 입지선정이 용이하고 건설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세먼지나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은 이제 세계적으로 퇴출 대상 신세가 됐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석탄 퇴출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 박는 국가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2015년 발표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석탄화력발전소 20기가 추가로 건설될 예정이어서 논란을 낳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석탄 발전에 세금을 매겨 원가를 높이거나 환경오염에 따른 비용을 원가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조처는 전체적인 발전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만큼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 또한 신고리 원전 5, 6호기의 경우처럼 사회적 공론화라는 숙의(熟議)민주주의적 해결방식이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미세먼지 감축은 정부의 핵심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충남 태안에서 열린 ‘서해안 유류피해 극복 10주년 행사’에 참석해 “국내 미세먼지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우리의 에너지를 깨끗하고 안전한 미래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수도권으로 한정된 대기관리권역 지정을 충남권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국 미세먼지 배출량의 38%, 충남에선 35%의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장 미세먼지에 대한 총량관리제를 도입하겠다는 구체적인 정책의 일단도 밝혔다. 정부가 이런 문제의식 하에 기존의 석탄친화적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 보다 안전한 미래 에너지로 전환을 모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정부가 국회에 요구한 2018 신재생에너지 예산도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사업 편성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도 없지 않지만 ‘탈원전, 탈석탄’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미세먼지는 이미 ‘환경괴물’이 됐다. 머리 하나를 자르면 금방 다시 그 자리에 두 개의 머리가 생겨나는 그리스 신화 속 히드라 같다. 미세먼지는 그만큼 근절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히드라를 물리친 헤라클레스 같은 존재는 없다. 정부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 5천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의 활동이 눈길을 끈다. 더 이상 미세먼지 문제를 정부에만 맡겨둘 수 없다며 인터넷 카페를 기반으로 모인 이들은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25만 서명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푸른하늘 3법’의 실질적 입안자이자 배후다. 이들이 목표로 삼은 25만 명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초미세먼지 ‘보통’ 기준인 25㎍/㎥과 같은 숫자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미세먼지 환경기준을 강화하고 어린이집이나 학교 같은 ‘민감집단’의 활동 공간에는 차별화된 보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과 수도권만 강력 규제하는 기존 대기환경관리법의 맹점을 보완하고 미세먼지 배출 자체를 줄이기 위한 ‘수도권 등 권역별 대기개선법’, 그리고 자동차 제조·판매사에 저공해차 의무 판매비율을 지정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유도하는 ‘저공해차 확대법’(대기환경보전법 일부개정 법률안). 이 세 가지 법만 제대로 지켜도 우리는 푸른 하늘을 이고 살 수 있을 듯하다. 적어도 ‘보통’ 수준의 대기 질은 되어야 숨이라도 크게 쉬며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사진 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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