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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안 먹이고 키워 안심, ‘이연원의 유기농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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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안 먹이고 키워 안심, ‘이연원의 유기농 돼지’
  • 박현희 기자
  • 승인 2017.10.0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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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박현희 기자] 국내 최초로 유기농 돼지 인증을 받은 가나안농장은 최고 수준의 돼지 사육장이다. 돼지우리에 갇혀 단순히 ‘사육’되는 것이 아닌 넓은 축사에서 유기농 사료를 먹으며 자란 돼지들은 육질이나 영양학적인 측면에서 일반 돼지고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

돼지 축사를 생각하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충남 예산의 가나안농장은 그러한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푹신한 톱밥이 깔린 약 10,000m²(약 3천 평)의 넓은 축사를 자유롭게 뛰노는 돼지들은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가나안농장 4개의 분원에선 약 4천500마리의 돼지가 자라고 있다. 매달 420~450마리의 돼지를 육용으로 출하하는 대규모 돼지 사육 농장이다.

동물 복지에 신경쓰는 농장

가나안농장은 큼직한 창문에 슬라이드 개폐 방식의 지붕으로 되어 있어 맑은 날이면 지붕을 열어 돼지들이 햇볕을 쬘 수 있도록 해두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햇볕을 많이 쫴주어야 건강하게 자란다”는 가나안농장 이연원 대표의 축산 철학 때문이다.

축사에 들어서면 돼지 귀에 붙은 노란색 ‘인식표’가 눈에 띄는데, 이는 농장에 있는 400여 마리의 어미 돼지를 각각 구분해주는 전자태그(RFID)다. 이 칩에는 돼지가 하루에 먹어야 할 사료의 양이 입력되어 있다. 사료를 먹을 때가 되면 돼지가 사료통 근처로 가는데 이때 전자태그를 인식한 제어장치가 일정량의 사료를 자동으로 배급한다. 돼지가 조금 더 먹고 싶어도 이미 사료를 다 먹었다고 인식이 되면 사료를 더 이상 지급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2억원을 들여 도입한 이 방식은 돼지의 과식을 방지하고 포만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가나안농장이 다른 돼지 농장과 다른 점은 이러한 시설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다. 2006년 국내 돼지 사육장으로는 최초로 유기농 인증을 받은 이 농장은 모든 사료가 유기농산물이다. 이연원 대표는 친환경 축산전문기업인 씨알살림축산(주)과 함께 2004년 9월부터 돼지 사육 전 과정에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등의 동물용 의약품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돼지의 면역력과 자생력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며 사육했다. 이렇게 길러진 돼지는 씨알살림축산을 통해 가공돼 ‘이연원의 유기농 돼지’라는 상표를 달고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면역력 높여 구제역을 이겨내다

“구제역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 어미 돼지에서 시작됩니다. 구제역은 감기와 똑같아요. 돼지가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면역력이 떨어지고 병에 쉽게 걸리는 거죠. 돼지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항생제를 사용하는 대신 사육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사육장 바닥에 톱밥, 볏짚, 왕겨, 가랑잎 등을 깔아 폭신폭신하게 해둡니다. 발굽을 가진 짐승들은 본래 딱딱한 바닥을 싫어하는데, 그러한 돼지의 특성을 배려한 거죠. 이렇게 키우다 보니 일반 돼지보다 발육 속도가 늦어 한 달 늦게 출하하지만 조금 늦더라도 제값을 받는 고품질의 돼지를 생산해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연원 대표와 씨알살림축산이 이러한 시도를 하기 전까지 당시 돼지 농장을 하는 농민들은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돼지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대표 역시 돼지에게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자 폐사율이 전에 비해 60%로 급격히 늘어났다.

처음에는 사료에 항생제만 제거하고 단백질 함량은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단백질 함량이 높은 사료는 돼지의 장에 있는 미생물이 분해를 잘 시키지 못했다. 특히 새끼 돼지들은 설사를 하다 죽는 경우가 많았다. 배설물이 잘 썩지 않고 유해균이 번식하는 것도 모두 고단백 사료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 이 대표가 내린 최종 결론
은 개량종 돼지를 재래종으로 ‘퇴화’시키는 것이었다.

“일반 돼지의 사료에는 항생제와 성장촉진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단백질 함량도 높고요. 이러한 사료를 먹은 돼지는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생겨 질병에 취약합니다. 전국의 돼지 중 30%가 질병으로 폐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러나 우리 농장의 돼지에게는 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돼지가 병에 걸려도 스스로 치료하게끔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죠. 처음에 무항생제 사료를 먹이자 기르는 돼지 중 60%가 폐사했습니다. 사료의 단백질 함량을 낮추고 탄수화물 비중을 높이자 항생제가 없는 사료를 먹여도 돼지들이 죽어나가지 않았어요. 배설물로 인한 유해균이 창궐하지 않아 축사에 냄새도 없고 질병도 없어졌습니다.”

현재 가나안농장의 유기농 돼지들은 수입산 Non-GMO 유기농 원료로 만든 사료를 먹이고 있다. 또 유기농으로 길러진 사과를 파쇄해 쌀겨, 김치추출 유산균, 유기농 볏짚, 현미식초 등을 섞은 뒤 토착 미생물로 발효시킨 것도 먹인다.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불포화지방이 높아

현재 가나안농장의 유기농 돼지는 일반 돼지고기보다 2배 정도 비싸지만 건강한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알고 있는 모든 마트의 유통 업체들이 찾아와 고기를 납품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생산이 모자라 일부에만 납품하고 있는 실정이죠. 아마 요구하는 양을 모두 맞추려면 한 달에 1만마리는 생산해야 할 겁니다(웃음).”

일반 돼지고기와 이곳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돼지고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는 냄새 때문인데, 구이를 해도 집 안에 냄새 베일 걱정이 적다고.

“우리 사육장 시설은 ‘불포화지방돼지고기 사육시설’로 특허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기농 돼지고기에는 일반 돼지고기보다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습니다. 일반 돼지고기는 구이를 한 후 불판에 기름이 하얗게 굳는데 유기농 돼지고기는 그렇지 않죠. 씨알살림축산에서 테스트를 한 결과 유기농 돼지고기는 아주 추운 날씨(0℃ 전후)가 아닌 경우를 빼놓고는 지방이 잘 굳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육질도 일반 돼지고기보다 부드럽고 식감도 뛰어납니다.”

이연원 대표는 마지막으로 “무항생제 사육은 앞으로 모든 양돈인이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유기농 축산으로 농업과 상생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앞으로의 바람이다.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해서는 축산 본래의 뜻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축 축(畜)자는 검을 현(玄)에 밭 전(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밭을 검게 한다’는 뜻이지요. 즉 고기나 우유, 계란 생산이 아닌 퇴비 생산을 위하는 게 축산의 올바른 의미입니다. 퇴비를 위한 축산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가축에 항생제나 소독제, 호르몬제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항생제나 소독제, 호르몬제 등을 사용하면 유해균뿐만 아니라 유익균까지 살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 발효가 아닌 부패가 이뤄지는 거죠. 이는 유해균 증식과 악취, 면역력 저하를 가져와 결국 더 많은 항생제 투여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축산을 단순히 고기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식량을 지속 가능하게 생산해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재정립한다면 올바른 농업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사진 | 양우영 기자, 씨알살림축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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