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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물건' 석면, 이제 영원히 결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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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물건' 석면, 이제 영원히 결별해야 한다
  • 김종면 논설위원
  • 승인 2017.09.0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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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면 논설위원]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질병이라면 우리는 먼저 고혈압을 떠올린다. 혈압이 높더라도 뚜렷한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방치하기 쉽지만 종국에는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또 다른 침묵의 살인자가 있다. 석면 질환이다. 피해자의 상당수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석면 질환에 걸렸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석면에 노출될 경우 원발성 폐암, 미만성 흉막비후, 석면폐증, 악성중피종(석면암) 등에 걸린다. 대표적인 석면 칠환으로 꼽히는 악성중피종은 석면에 일시적으로 노출되거나 간접적으로 접촉해도 생길 수 있다. 석면은 굵기가 머리카락의 5,000분의 1에 불과해 호흡기를 타고 인체로 쉽게 유입되기 때문이다. 석면이 사용된 현장에서 일한 가족의 작업복을 세탁하다가, 또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살다가 석면암에 걸린 환자도 수두룩하다, 석면은 잠복기가 10~50년에 이른다. 잠복기가 긴 만큼 피해 규모도 크다. 그야말로 ‘조용한 시한폭탄’이다.

석면은 열과 불에 잘 견딘다는 이유로 단열재나 자동차·선박 부품 등 산업용 재료로 널리 쓰여 왔다. 하지만 이것은 ‘죽음의 섬유’다. 우리는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석면을 사용해 오면서도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무지한 나머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의 1급 발암물질로 규정돼 2009년부터 국내 생산과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단순히 생산과 사용을 금지한다고 가공할 석면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근로복지공단이 석면노출원 주변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환경적 석면노출로 인한 석면 건강영향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공단은 우선 환경부의 위탁을 받아 미조사된 석면노출원 중 우선순위가 높은 인천광역시 일부지역과 슬레이트 공장 지붕이 방치돼 석면피해 위험에 노출된 전남 목포시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문제는 아무리 대책을 내놓아도 피해가 근절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석면 사용량은 건축자재와 자동차 부품 등 3,000여종에 200만t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미 유통된 석면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건설·철거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경우는 늘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면 피해의 심각성과 추후 발생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정부의 대책은 한층 강화돼야 한다. 석면 광산이나 석면 제품 생산 공장은 물론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생활 영역 전반으로 대상을 확대해야 마땅하다. 석면 관련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불안을 줄이는 길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석면피해구제제도에 대한 홍보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는 현재 ‘석면피해구제법(석면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석면함유제품을 사용한 건축물 밀집지역 거주자나 작업자에 대해서도 환경부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이 건강영향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석면의 위험성을 감안하면 현행법의 미비점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는 진작에 나왔어야 했다. 개정 법률안이 조속히 통과돼 소재 불명의 석면 피해자와 피해 의심자를 빠짐없이 찾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석면 공포는 가히 전방위적이다. 석면을 건축마감재로 사용한 학교도 부지기수다. ‘석면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생각해 보라.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석면(asbestos)은 그리스어로 ‘불멸의 물건’을 뜻한다. 100만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유서 깊은 물건, 이제 우리는 이 잿빛 물질을 서둘러 장송(葬送)해야 한다. 

사진 [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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